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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청도 운문산 사리암 / 포항 운제산 오어사

인생멘토장인규 2006. 10. 11. 16:40
여행지
청도 운문산 사리암 / 포항 운제산 오어사
여행기간
2006.10.2  / 10.7
나의 평가
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
나의 여행 스토리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지난번 운문사를 들렀을 때, 오고자 했던 사리암을 찾았다.

이번 연휴는 길어 그동안 갈려고 했으나 못갔던 사찰순례를 하기로 하고 1차로 사리암을

2차로 동서부부와 함께 포항 운제산에 있는 오어사를 기행하였다.

▣ 청도 운문산 사리암

    

삿된 것을 여읜다는 뜻인 사리암. 세상에 묻혀 살며 물들여진 온갖 때묻은 것을 떨쳐버리고

일심으로 기도한다면 기도의 감응으로 나반존자님이 던져주는 돌을 받아 쥘 수 있다고

예부터 전해오는 절이다.

 

사리암(邪離庵)이 창건된 것은 937년(고려 태조 20)이다. 당시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후삼국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국사가 절을 지은 것이 사리암의 시초라고

한다. 이후 세인의 이목에서 멀어져 고고한 산중 암자로만 남아 있던 사리암은 1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뒤 1845년(조선 헌종 11) 효원대사가 중건하고 신파스님이 천태각(天台覺)을

건립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1851년(철종 2) 현재의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후

사리암은 영험있는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다.

 

 운문사에서 동남향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운문사 위쪽은 자연 휴식년제로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다만 사리암신도나 기도하는 불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통행을 허락

하고 있다. 운문사를 지나 사리암 주차장 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고, 사리암으로 오르는 길

입구의 가게에서 공양미 한봉지를 싸 배낭에 넣고, 860여 돌계단을 오르면 사리암 관음전이

나온다. 사리암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공양을 할 수 있으니 공양미 한 봉지는 아깝지 않다.

 

 사리암은 몇 차례 중수를 거쳐 1977년 비구니 혜은스님이 원주로 부임하여, 1978년 전기 불사

를 시작으로 1980년, 前부산 거사림회 회장 이인희 거사의 후원으로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현재의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새로 신축한 법당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고 천태각에는 나반존자님, 그리고 산신각에는

산신님이 각각 모셔져 있다. 일년 내내 날씨와는 상관없이 기도하시는 분들이 끊이지 않는다.

운문사 사교과와 사집과에서 다섯 명의 스님이 올라가 기도를 한다. 사분정근 기도를 혼신껏

하고 나오면 마주보이는 학산이 두 날개쭉지를 너르게 편 채 하나로 뭉쳐져 마음을 푸근히

감싸주니 이 어찌 기도성취를 못하고 힘들여 올라온 아득한 저 길을 차마 내려갈 수 있으리요.


보살들이 치성을 드리기위해 사림암을 찾는 주 이유는 천태각에 모신 나반존자때문이리라. 

나반존자는 일명 빈두로존자라 한다. 16아라한 중의 한 분이시다. 흰머리칼과 길다란 눈썹을

하고 계시며,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부처님 열반

후에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말세 중생을 제도하려는 대원력을 세우신 존자님이다.

 

구전해 오는 전설로는 현재 굴법당의 안쪽 바위 구멍에서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이 먹을 쌀이

나오고, 백 사람이 살면 백 사람이 먹을 양의 쌀이 나왔는데, 어느 날 많은 쌀을 나오게 하려는

욕심으로 구멍을 넓힌 후부터 쌀 대신 물이 나오게 되었다 한다.

또한 조선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중에 청우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였는

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니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져

온다. 중생들에게 괴로움이 많아서인지 소원이 많아서인지 기도를 하기 위하여 곳곳에서 찾아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추석연휴에 세차례 사리암을 찾아 매번 집사람을 따라 108배를 하였으니

운동도 꽤 한셈이다 ^^

삿된 것을 여읜다는 뜻인 사리암. 세상에 묻혀 살며 물들여진 온갖 때묻은 것을 떨쳐버리고

일심으로 기도한다면 기도의 감응으로 나반존자님이 던져주는 돌을 받아 쥘 수 있다고

예부터 전해오는 절이다.

 

사리암(邪離庵)이 창건된 것은 937년(고려 태조 20)이다. 당시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후삼국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국사가 절을 지은 것이 사리암의 시초라고

한다. 이후 세인의 이목에서 멀어져 고고한 산중 암자로만 남아 있던 사리암은 1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뒤 1845년(조선 헌종 11) 효원대사가 중건하고 신파스님이 천태각(天台覺)을

건립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1851년(철종 2) 현재의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후

사리암은 영험있는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다.

 

 운문사에서 동남향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운문사 위쪽은 자연 휴식년제로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다만 사리암신도나 기도하는 불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통행을 허락

하고 있다. 운문사를 지나 사리암 주차장 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고, 사리암으로 오르는 길

입구의 가게에서 공양미 한봉지를 싸 배낭에 넣고, 860여 돌계단을 오르면 사리암 관음전이

나온다. 사리암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공양을 할 수 있으니 공양미 한 봉지는 아깝지 않다.

 

 사리암은 몇 차례 중수를 거쳐 1977년 비구니 혜은스님이 원주로 부임하여, 1978년 전기 불사

를 시작으로 1980년, 前부산 거사림회 회장 이인희 거사의 후원으로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현재의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새로 신축한 법당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고 천태각에는 나반존자님, 그리고 산신각에는

산신님이 각각 모셔져 있다. 일년 내내 날씨와는 상관없이 기도하시는 분들이 끊이지 않는다.

운문사 사교과와 사집과에서 다섯 명의 스님이 올라가 기도를 한다. 사분정근 기도를 혼신껏

하고 나오면 마주보이는 학산이 두 날개쭉지를 너르게 편 채 하나로 뭉쳐져 마음을 푸근히

감싸주니 이 어찌 기도성취를 못하고 힘들여 올라온 아득한 저 길을 차마 내려갈 수 있으리요.


보살들이 치성을 드리기위해 사림암을 찾는 주 이유는 천태각에 모신 나반존자때문이리라. 

나반존자는 일명 빈두로존자라 한다. 16아라한 중의 한 분이시다. 흰머리칼과 길다란 눈썹을

하고 계시며,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부처님 열반

후에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말세 중생을 제도하려는 대원력을 세우신 존자님이다.

 

구전해 오는 전설로는 현재 굴법당의 안쪽 바위 구멍에서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이 먹을 쌀이

나오고, 백 사람이 살면 백 사람이 먹을 양의 쌀이 나왔는데, 어느 날 많은 쌀을 나오게 하려는

욕심으로 구멍을 넓힌 후부터 쌀 대신 물이 나오게 되었다 한다.

또한 조선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중에 청우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였는

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니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져

온다. 중생들에게 괴로움이 많아서인지 소원이 많아서인지 기도를 하기 위하여 곳곳에서 찾아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추석연휴에 세차례 사리암을 찾아 매번 집사람을 따라 108배를 하였으니

운동도 꽤 한셈이다 ^^

 

운동도 꽤 한셈이다 ^^

 

 

▣ 포항 운제산 오어사

오어사(吾魚寺)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번지 운제산(雲梯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가는 길은 포항 시내에서 포항제철을 지나 929번 지방도로로 오천과 문충리 방면으로 24㎞ 정도 가면 오어사에 닿는다. 주변에는 1964년에 완공된 만수면적 12만 평에 수량도 500만 톤에 이르는 넓은 오어지의 초록빛 물이 눈길을 끌며, 운제산의 아름다운 산세가 어우러져 승경을 빚는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하였다. 그리고 창건이후 혜공(惠空)·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등이 주석하여 '신라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특히 혜공과 원효 스님에 대해서는 절 이름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옛날 오어사에서 원효 대사와 혜공 대사가 수도하고 있었다. 이곳의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방변(放便)하였더니 고기 두마리가 나와서 함 마리는 죽고, 한마리는 물을 거슬러올라가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였다는 설화에 의하여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기를 놔준 곳이 지금 오어사 앞에 있는 오어지(吾魚池)이다. 이 이야기는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일연 스님은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문 적이 있었으므로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하였던 모양이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유물전시관은 13평 규모의 단층 한옥으로 원효대사 삿갓과 수저를 비롯해 법화경 4점, 오어사 사적지 2점, 대웅전 상량문 등 모두 20여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가는 길은 포항 시내에서 해변을 따라 경주의 감포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이 국도를 따라가다가 포항제철 부근에서 오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오천을 지나면 14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이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오어사 이정표가 나오고 이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오어사 앞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돌아올 때는 포항으로 가지않고, 감포방향으로 하여 나오니 바로 기림사주차장이다.

 

          ▲ 오어사 부도              ▲ 오어사에서 본 자장암              ▲ 자장암 오르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