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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카라바조-두번째

인생멘토장인규 2009. 7. 22. 08:53

 

[그림]Caravaggio (伊,1573 - 1610)
◈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1601-2)



그림을 클릭하면 큰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살인의 미학


    제자 세 사람이 예수를 쳐다보고 있고 그 중 도마가
    손가락으로 예수의 옆구리 상처를 찔러 보고 있다.
    "당신이 진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인가요? 어디 봅시다."
    그러면서 예수의 제자 도마는 예수의 상처에 눈을 바짝 갖다 대고 집게손가락을 밀어넣고 있다.

    '아-아!' 그 순간 예수는 고통스러운 듯 도마의 팔을 붙잡는다. 이처럼 촉촉한 눈동자의 실감으로 그린 그림이 있었던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이다.

    대단히 파격적인 이러한 그림이 당시 신앙심 깊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사도들은 이전의 아름답고 위엄있는 모습이 아닌 풍상을 겪은 얼굴과 이마의 깊은 주름의 노동자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부활한 예수를 의심하는 성 도마의 동작 또한 너무 불경스럽게 느껴진다.하지만 성경에 아주 분명히 적혀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

    (요한복음 20장 27절)

[그림]◈ Judith Beheading Holofernes(1598) ◈


    카라바조의 그림은 '죽음'이 넘치는 살인 미학의 작품이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598년)에서 유대 여인 유디트는
    찡그린 표정이지만 칼은 이미 절규하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에 가 있고,적장의 떨어지는 목에서는 피가 분출하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노파의 희번덕이는 눈동자….

[그림]◈ Salome with the Head of the Baptist (1609) ◈

    두 점의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들고 있는 살로메'에서도
    세례 요한의 나뒹구는 머리가 참혹하다.
    왜 카라바조는 죽음의 미학에 집중했을까.
    그의 당대는 종교개혁으로 들끓던 시대였다.
    카라바조는 16세기 가톨릭교회가 요구하던 반종교개혁의 정신을 담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성서와 성자의 위대한 순간을 실감있게 표현해 확고한 믿음,순교의 진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림]◈ Salome with the Head of the Baptist (1610) ◈

    그러나 카라바조의 그림이 거기에 머물렀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인 1610년에 그린 '세례 요한의…'와
    '골리앗의 머리를…'에는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은 묵상이 있다.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내려다 보는 노파에게는
    죽음을 묵상하는 웅숭깊은 시선이 있고,
    승리자 다윗의 시선에도 의기양양함보다는 강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슬프고 공허한 빛이 스치고 있다.

    노파의 얼굴에,다윗의 시선에 그의 얼굴과 시선을 겹쳐 놓았다.그것이 카라바조의 그림이 품었던 깊이였다. 그는 많은 그림을 그런 식으로 그렸다.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자의식의 표현이었다
[그림]◈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7) ◈

    목이 잘린 골리앗의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윗 작품속에서
    어린 다윗은 자신보다 훨씬 큰 거인의 목을 베어 들고 얼굴을 찡그린채 서있다.
    목에서는 아직 붉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이 그림속에서
    우리는 잘린 골리앗 얼굴에서 카라바조의 자화상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후 계속된 도피 생활의 피곤함과 극도의 불안함을 그림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잡히면 언제라도 처형될 수 있는 탈옥수로써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서 그를 괴롭혔다.

[그림]◈ St Jerome (1607) ◈

    그렇게 앞서 있어서일까.
    카라바조의 삶은 광기어린 것이었다.
    그의 삶은 폭행 결투 도피 살인 투옥 등으로 점철됐다.
    15번 가량 수사 기록 문서에 이름이 오려내렸고,7번 가량 투옥됐다.

    1606년 사소한 싸움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각 지역을 떠돌며 도피 생활을 한다.
    도피 생활을 하던 곳곳에 명작을 남겼고,또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저기,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카라바조가 그린 실감은 죽음의 실감이자,삶의 실감이었다.
    그는 성(聖)을 속(俗)으로 끌어내렸다.

    혼돈과 폭력이 난무하던 16세기 말,
    그는 로마의 뒷골목을 오가는 거지 불량배 매춘부 집시 협잡꾼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예수로,성자로,막달라 마리아로,성모 마리아로 둔갑시켰다.

[그림]◈ The Death of the Virgin (1606) ◈

    이 그림은 교회의 요청으로 그렸다가 모델이 임신한 창녀로 밝혀져 교회에서 거부 당했다고 알려졌다
    "누가 날 창녀라 하는가? 나,어엿한 성녀 카타리나라고."
    당대의 로마 매춘부 필라데는 유디트,막달라 마리아,성 카타리나의 모델이 되었다.

    카라바조 예술의 위대한 점은 속에서 진정한 성을 발견하고,
    성을 우리가 사는 세속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