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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카라바조- 1

인생멘토장인규 2009. 7. 20. 09:15

 

[그림]Michelangelo da Caravaggio (伊,1573 - 1610)
◈ David(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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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이 그림에서 다윗이 들고 있는 골리앗의 머리는 다름아닌
    카라바조 자신의 초상이다. 당대의 문제아이자 이단아로 취급 받아온 자기 자신을 표현 한 것일까?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인 본명이 Michelangelo Merisi인 카라바조는 1584년 밀라노의 화가 시모네 페테르차노에게 사사하고 그 후 로마로 가서 처음에는 빈곤과 병고로 비참한 생활을 하였으나, 뒤에 추기경 델 몬테의 후원으로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그림]◈ Still Life with Flowers and Fruit (1590) ◈

    초기에는 정물과 초상을 치밀한 사실기법으로 묘사하여
    바로크미술양식을 확립하였는데, 우파치미술관의 <바쿠스>,
    루브르미술관의 <여자 점쟁이> <성모의 죽음>,
    로마에 있는 산루이지 데이 프란체시성당의 <성마태오의 순교>, 바티칸궁전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 <로사리오의 성모> <나자로의 부활> 등 성모와 성자를 모델로 로마에 사는 빈민의 모습을 등장시킨 그림들을 보면 그는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고, 형상을 힘차게 조소적(彫塑的)으로 묘사함으로써, 근대사실(近代寫實)의 길을 개척하였다.

[그림]◈ Bacchus (1596) ◈
    카라바조는 불같은 성격으로 많은 사건을 일으켰는데
    1606년 어느날 내기 테니스를 치다가 심한 말다툼 끝에 상대를 살해하고 로마로 도망친 후 나폴리(1606~7), 말타(1607~8), 시실리(1609)를 전전하다가 1608년 10월에 시라쿠사에 도착했으나 추격받을 것이 두려워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그림]◈ Burial of St Lucy (1608) ◈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명성이 따랐으며,
    그리하여 시라쿠사에서 그는 산타루치아 교회를 위하여
    후기의 비극적인 걸작인 〈성녀 루치아의 매장 The Burial of St. Lucy〉을 그렸다.

[그림]◈ Adoration of the Shepherds (1609) ◈


    1609년초에 그는 메시나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나사로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Lazarus〉·
    〈목자들의 경배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를 그렸으며, 그뒤에는 팔레르모로 피신하여 그곳의 산로렌초 예배당을 위하여〈성 프란체스코와 성 라우렌티우스의 경배 Adoration with St.Francis and St. Lawrence〉를 그렸다.

[그림]◈ Nativity with St. Francis and St. Lawrence (1609) ◈


    카라바조가 도망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역경에서 그린 작품들 중에는 그의 전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구도의 작품들이 몇 점 들어 있다. 구도는 예전보다도 더욱 웅장하지만, 이 작품들은 예전의 그림들에서볼 수 있는 직접적인 묘사보다 미묘한 감정 표현과 부드러운 색조로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를 괴롭혔을 것임이 틀림없는 산란한 정신상태를 고려할 때 이 차분하고 강렬한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뛰어난 작품성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의 필사적인 도주는 오직 교황의 사면으로만 끝날 수 있었는데, 카라바조는 1609년 10월 그가 다시 북쪽의 나폴리로 거처를 옮겼을 때 로마에서 그를 위하여 중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림]◈The Tooth Drawer (1609) ◈

    그러나 불운이 그를 덮쳐 그가 어떤 여관 문앞에서 공격을 받아 심한 부상을 입고 죽었다는 소문이 로마에 퍼졌다.
    회복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1610년 7월 배를 타고 교황령 안의 스페인 속령인 포르테르콜레로 갔으나
    잘못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가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는
    이미 자기를 로마에 데려다줄 배가 자신의 물건을 싣고 이미 떠난 뒤였다.

    불행과 극도의 피로가 겹친 데다가 열병이 재발해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떠나가는 배를 보며
    바닷가에 쓰러진 후 며칠 뒤 37세도 안 된 나이로 죽고 말았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