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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두번째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9. 09:45


[그림]Frederick Arthur Bridgman(美,1847-1928)◈Cleopatra on the Terraces of Philae(1896)  
 




그림을 클릭하면 큰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삼두 정치인 중 한 사람인 안토니우스가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 사령관에
    오른 후 동방 원정길에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만한 인물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안토니우스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려고 작정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 스물넷, 카이사르는 쉰두살의 아버지같은 사람이었지만
    안토니우스는 현재 마흔이 되었을까말까하는 나이였다.
    수많은 전쟁을 체험하여 기력이 넘치는 남자로서 한창 때였다.



[그림]Claude Lorrain(佛,1602-1682)◈The Disembarkation of Cleopatra at Tarsus(1642)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첫 만남을 가진 장소를 타르수스다.
    오늘날에는 터키의 한 지망 도시에 불과하지만
    고대의 타르수스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그림]Sir Lawrence Alma-Tadema(英,1836-1912) ◈ Antony and Cleopatra(1883)  





    위의 그림에서 앨마 테디마는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을 묘사한 글을 토대로 이 그림을 그렸다.

    시가지는 강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안토니우스를 만났다.

    선체는 황금빛이요, 바람을 받아 크게 부풀어 오른 돛은
    가장 값비싼 색깔인 자주색이었으며, 갑판 중앙에는
    금실로 수놓은 장막이 좌우로 열려 있고,
    그 아래 옥좌에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클레오파트라가 앉았다.



[그림]Frederick Arthur Bridgman(美,1847-1928) ◈Cleopatra's Barge





    노예들은 은으로 만든 노를 저으며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배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진동했다.
    이 화려한 첫만남에 안토니우스는 그만 혼을 뺏기고 말았다.



[그림]George Owen Wynne Apperley(英,1884-1960) ◈ A Dancer of Ancient Egypt  





    정신이 나간 안토니우스가 벌떡 일어서서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가득 찬
    눈길로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본다. 클레오파트라는 금으로 장식된 이동 닫집 아래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 요염한 눈초리로 안토니우스를 탐색한다.



[그림]Giovanni Battista Tiepolo(伊,1696-1770)◈The Banquet of Cleopatra(1743-44)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방법 또한 기상천외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전갈을 보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자기가 베푸는 선상의 파티에 와 달라고 청했다.
    그날 저녁, 클레오파트라의 배에 오른 안토니우스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배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바닥에는 온통 꽃이 깔려 있었으며
    금 접시와 보석 박힌 금 술잔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런 파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겠군요."


    넋이 나간 안토니우스가 말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이 정도는 제게 아주 적은 비용이랍니다. 정말 사치스런 파티를 원하신다면
    1만 세스텔치아가 드는 파티를 열어 드리지요."


    1만 세스텔치아는 오늘 날의 화폐로 환산하면 약 20만 파운드,
    2억 4천만원 정도의 큰돈을 한번의 파티에 쓸 수 있겠느냐는 안토니우스의  말에
    클레오파트라는 내기를 하자고 했고  안토니우스는 좋다고 하고는
    부하 중 한 사람을 심판으로 정했다



[그림]Gerard Hoet (獨,1648-1733 ) ◈The Banquet of Cleopatra (early 1700s)  





    연회가 열리는 날 안토니우스는 연회 장소인 선박으로 건너갔다.
    처음 얼마 동안의 연회는 여느 평범한 연회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이 내기에서 이겼다고 의기양양하게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바로 그때 클레오파트라는 술잔을 내오도록 시종에게 명령했다.
    그녀는 온몸을 보석으로 장식한 차림이었는데, 특히 양쪽 귀에는
    거대한 진주가 매달려 있었다. 시종이 잔을 가져오자
    그녀는 재빨리 한쪽 귀에서 진주를 떼어내 그 속에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림]J. Jordaems  ◈The Banquet of Cleopatra  




    뜻밖의 상황에 모두들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클레오파트라는
    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잇달아 다른 귀에서 진주를 떼어내려고 했다.
    클레오파트라의 행동을 보고 당황한 내기의 심판은 그녀를 가로막으며
    ‘여왕이 내기에서 이겼다’고 선언했다.

    이 대담한 여왕에게 안토니우스가 푹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안토니우스와 극적인 첫만남을 가진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행여 안토니우스가
    권태를 느낄세라 늘 새로운 쾌락을 개발했고 날마다 산해진미에
    악사와 무희를 동원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림]Jan de Bray(獨,1627-1697)◈The Banquet of Antony and Cleopatra(1669)  





    이런 생활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자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을 자신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안토니우스의 사랑이
    순간적인 열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인종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이국의 여왕과 혼인식을
    올릴만큼 안토니우스는 철저하게 여왕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는 결혼 선물로 여왕에게 엄청난 이권이 걸린
    오리엔트 지방의 통치권을 주었다.

    로마의 권력자를 애인으로둔 덕분에 그녀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물과 권력을 소유한 여왕이 되었다.



[그림]Giovanni Battista Tiepolo(伊,1696-1770)◈The Meeting of Anthony and Cleopatra(1746-47)  




    사랑에 눈이 먼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고 또 다른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의 지배권을 동서로 양분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자 로마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사를 돌보기는 커녕 힘들게 정복한 식민지에서 나온 귀한 수입을
    이집트 여인에게 몸땅 안겨주는 사령관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특히 카이사르의 상속자요,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여왕의 노예로 전락한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수치로 생각했다.



[Coin]Antony and Cleopatra





    그는 두 남녀를 국가의 명예를 더럽힌 탕아와 국제적인 창녀의 야합으로
    매도한 후 안토니우스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기원전 31년 클레오파트라와 적대하던 로마의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을 앞두고 이렇게 외친다.  

    "역사상 가장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호령해온 우리 로마인이
    한낱 이집트 여인에게 짓밟히고 멸시당한다면 조상을 뵐 낯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인의 수중에서 농락당한다면 어찌 우리의 위대한 영웅들이
    원한에 사무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의 승자가 되었고,
    패전 사령관이 되어 벼랑 끝에 몰린 안토니우스는 자결하였다.




"계속"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