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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 화가 '샤반느'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8. 19:31


[그림]Chavannes, Puvis de (佛,1824-1898) ◈ The Poor Fisherman(1881)







그림을 클릭하면 큰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찾아 무작정 떠나는 것


    요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사람이 떠난다고 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있던 곳에서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의 의미는 그보다 먼저 그의 땅을 떠났다
    해야 할 것이다. 그 실종된 의미를 어떻게 찾나?

    일단 이곳에 없으니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의미를 찾아 무작정 떠나는 것,
    그것이 상징주의 예술의 첫 걸음이다.

    상징주의는 내적 의미(inner meaning)를 추구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들은 곧잘 사람을 속인다.
    그러니 진실을 찾으려면 대상의 껍질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안의 끝이 어디냐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갈 데까지 가 보는 수밖에.
    파랑새처럼 잡히지 않고 끝없는 추구만이 당면한 현실이 된다.
    이렇게 한 번 자신의 땅을 떠난 사람은 영원한 방랑자가 된다.



[그림]Chavannes, Puvis de (佛,1824-1898) ◈ Young Girls at the Seaside,(1879)  





    이 작품은 상징주의 화가 샤반느의 고전적이며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신화적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차분한 배경 속 인물들의 몸짓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조화를 연상시키는 느낌을 준다.
    해변의 여인들은 이렇듯 정착하지 못하는 영혼의
    부유하는 시선을 표현한 작품이다. 아스라한 바다가 보이고
    꿈같은 여인들이 둘러 있다.

    이곳은 어디이며 이 여인들은 누구인가?
    화가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옛 그림의 상징들은 객관적인 것이었다.
    큐피드가 등장하면 그것은 사랑을 의미했다.

    그러나 상징주의 미술은 객관적인 상징을 꺼려한다. 객관적인 상징을
    쓰면 의미가 다 파악이 되고 파악된 의미는 수면 위로 떠올라
    껍데기가 되고 만다. 그것은 내적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상징주의자들의 그림은 막연히 상징적일 뿐이다.
    의미의 종착을 피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샤반의 바다와 여인들은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고대, 혹은 무의식의 느낌을 주는 장막 뒤로 사라진다.
    그림의 미적 형식도 그만큼 끝없이미의 머릿결만을 따라 흐르는
    탐미적인 것이 된다.



[그림]Chavannes, Puvis de  ◈ Hope(1872)  





    왜 이런 미술이 나왔는가? 그것은 19세기 말 유럽의 정치, 종교,
    학문, 사회관계 그 어느 것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기말의 데카당스는 그런 믿음의 붕괴 위에서 활짝 피어났다.
    오늘의 한국인들도 그동안 그들이 지키고 애써 일궈온
    믿음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림]Chavannes, Puvis de  ◈ Hope(1872)  





    그러나 생각해 볼 일이다. 의미라는 것이 계속 나를 피한다면,
    내가 그것을 찾기 위해 이땅을 떠나는 순간 가장 먼저
    이곳으로 돌아와있는 것도 바로 의미가 아닐까 말이다.



[그림]Chavannes, Puvis de ◈ The Childhood of Saint Genevieve(1878)  





    이 작품은 파리의 성 쥬느비에브 교회 (현재의 팡테옹) 벽화 장식의
    일환으로서 그려진 벽화의 에스키스이다.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성 게르마니우스가 장차 파리의 성인이 될
    소녀 쥬느비에브를 발견하고 성인으로서의 생애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알리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 고지에 놀란 양친을 비롯하여 실려 나오는 병자,
    기슭에 대려고 하는 배, 젖을 짜던 손을 멈추고 성인들을 바라보는
    농가의 아낙네 등 모든 시선과 동선을 중심이 되는두 명의
    성인의 만남에 집중하도록 교묘하게 배치하고 있다.

    또한 군상 구성은 마잣치오의「 헌금」에서 보이는 이소케파리 수법을
    사용하여 머리의 높이를 가지런히 맞추어 정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인물군을 둘러싸듯이 배경에는 고대의 산맥이,
    또 전방에는 세느강의 흐름이 그려져 있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받은 하늘은 맑고 상쾌한 공기감으로
    가득 차 성 쥬느비에브의 무구한 순수함을 상징하는
    청신한 모습을 잡아내고 있다.

    이 벽화는 19 세기 프랑스 최대의 벽화가로서 알려진 샤반느의
    대표작이며 1878년에 팡테옹에서 공개되자 큰 반향을 불렀다.


[그림]Chavannes, Puvis de  ◈ The Dream(1883)  





    샤반느는 1824년 리옹에서 출생했으며 189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피에르 퓌비 드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이다.
    23세 무렵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화가가 되고자 결심하고
    앙리 셰페르(Henry Scheffer)의 화실에서 1년 정도 공부한 뒤에
    들라크루아와 쿠튀르의 화실에서 일했다.

    측면의 표정, 딱딱하게 경직된 자세, 그리고 백악 같은 흰색과
    분석적인 구도력을 발휘한 샤반느의 화풍은 당시 파리의
    젊은 화가들에게 뿐만 아니라, 르느와르, 고갱, 마티스, 모리스 드리,
    그리고 청색시대의 피카소까지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2007-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