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 Self Portrait (1889)
1874년 1월
네 편지를 보니 미술에 큰 흥미가 있는 것 같구나. 좋은 일이다. 네가 밀레, 자크, 슈레이어, 랑비네, 프란스 할스 같은 화가들을 좋아한다니 나도 기분이 좋다. 모베가 말했듯 '바로 그거다'.
밀레의 그림 <저녁 기도>, 정말이지 '바로 그거'라니까. 장엄하고 한마디로 시 그 자체인 작품이지. 너와 그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Angelus(1857 - 1859)
지금은 편지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지. 될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그림]Gogh, Vincent van ◈ Two Peasant Women in the Peat Fields (1883)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
1881년 10월
예술가는 초기에는 자연의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대립으로 기가 꺾이기는커녕 자연을 자기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자연과 정직한 데생화가는 하나다.
자연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연을 움켜쥐어야 하며 그것도 두손으로 힘껏 붙잡아야 한다. 자연과 자주 씨름해온 나의 눈에는 자연이 유연하고 순종적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지금 그 문제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자연과의 씨름은,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이 말은 싫든 좋든 대립을 조금씩 완화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 많은 분야에서 공통된 말이겠지만, 특히 데생에서는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Peasant Burning Weeds (1883)
1882년 3월 3일
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것 솔직히 인정한다.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한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한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지.
[그림]Gogh, Vincent van ◈ Portrait of Boekverkoper Blok (1882)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1882년 7월 21일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더 흡족할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교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겠다. 옛것을 모방하는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
밀레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리 수도 있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림]Gogh, Vincent van ◈ Beach at Scheveningenin Stormy Weather(1882)
1882년 10월 22일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State Lottery Office (1882)
1883년 3월 21~28일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더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집시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에 잼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림]Gogh, Vincent van ◈ Road with Cypress and Star (1890)
1883년 7월 11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황야의 오솔길에 서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 일이다. 히이드로 뒤덥힌 갈색의 황야를 좁고 하얀 모래길이 가르지르고, 그 위에 엄격하게 보이는 개성있는 인물이 서 있는 모습으로.
하늘은 조화롭고 열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을 풍경 속에 서로 팔을 끼고 있는 그림도 그리고 싶다.
[그림]Gogh, Vincent van ◈ Peasant Woman Digging (1885)
1885년 4월13일
밀레가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 한 말을 상시에의 책에서 읽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말 모두를 기억하지는 못하고 골자만 기억하고 있다.
" 그것은(사람들의 무관심) 내가 값비싼 구두를 신고 신사의 생활을 원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막신을 신고 나갈 것니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그렇게 되었지.
[그림]Gogh, Vincent van ◈ Still Life of Shoes (1886)
내가 잊을 수 없는건 "문제는 거기에 나막신을 신고 가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다시말해, 농부들이 만족하는 종류의 음식,옷.숙소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지. 밀레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다른화가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인 것이지.......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프랑스 화가>자연주의 기법으로 농촌풍경과 농부들의 삶을 그렸다.인상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림]Gogh, Vincent van ◈ ◈ The Potato Eaters (1885)
1885년 4월 30일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Good Samaritan (version of Delacroix painting,1890)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885년
테오에게 사람들은 기술을 형식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부적절하고 공허한 용어를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냥 내부려두자.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Sower with Setting Sun (1888)
씨뿌리는사람..낡은달력 속의 소박한 그림
1888년 6월
베르나르에게 <씨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라빛을 띠고 있네. 잘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네. 하늘은 황색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Sower(1850)
이 두그림을 보면 밀레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고흐에 있어서 밀레는 정신적,작품적으로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그의 모든작업의 배경은 밀레의 영혼과 같이 살아 숨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바탕은 밀레의 모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의 편지 내용에 많이 언급된다.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는 프랑스의 화가로서, 고흐,고갱,세잔과 교류하며, 서로 자화상을 교환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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