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 Self Portrait (1889)
1888년 6월
펜과 종이를 대할 때처럼 물감을 사용할 때도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색을 망칠까 싶어 두려워하다 보면 꼭 그림을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부자였다면 지금보다 물감을 덜 썼을 것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Starry Night (1889)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그럴 때묻곤 하지.
프랑스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그림]Gogh, Vincent van ◈ The Postman: Joseph Roulin (1888)
1888년 9월 8일
우체국에서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을 부치면서,
새 그림 <밤의 카페>의 스케치도 함께 넣었다.
이제 일본판화의 성격을 약간 가미하면 완성될 것이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Night Cafe(1888)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함으로써,
부드러운 녹색과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함으로써,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그림]Gogh, Vincent van ◈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1888)
1888년 9월
이번 주에 그린 두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림]Gogh, Vincent van ◈ Self-Portrait as an Artist(1887-8)
세 번째 그림은 흐릿한 베로네즈 녹색 바탕에 잿빛 톤으로 그린,
퇴색한 느낌을 주는 자화상이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이번 주에는 그림 그리고, 잠자고, 먹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6시간씩 총 12시간의 작업을 했고,
단번에 12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Langlois Bridge at Arles with Women Washing (1888)
1888년 10월 24일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그림]Gogh, Vincent van ◈ Van Gogh's Room at Arles (1888)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두 사람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가 이곳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 그걸 찾게 될까?
묵묵히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다.
[그림]Gogh, Vincent van ◈ 고갱의 의자(左,1888)와 고흐의 의자(右,1888)
내 영혼을 주겠다
1889.1
아직 한겨울이니 제발 조용히 작업할 수 있게 내 버려다오.
그 결과가 미친사람이 그린 그림에 불과해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 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Courtyard of the Hospital in Arles (1889)
1889년 4월 30일
아무 대가없이 나를 받아들여줄 병원은 없다는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너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런 가책없이
나를 자살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테지.
비겁한 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테니까.
우리가 계속 사회에 대항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할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Gogh, Vincent van ◈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1889년 9월
테오에게...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 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 져갈 수 있을까
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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