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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슬픔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21. 16:53

 

[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 Sorrow  (1882)






향기를 잃어버린그대 가련한 장미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살지 않을 것이고,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고흐가 1881년 12월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지요.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하숙집 딸과 사촌 케이를 차례로 사랑했지만
그녀들의 단호한 거절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한 여자의 침대에서 깨어나지요.
낮에는 청소부 일을 하고 밤에는 몸을 파는 여자였지요.
그는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고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그보다 세 살 위인 시엔이라는 여자였는데 세파에 시달려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지요. 그녀는 다섯 살 난 딸과 함께
아이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은 데다 또다시 임신을 한 상태였답니다.
고흐는 그녀의 불행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아파했지요.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지요.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동거에들어갑니다.
그는비참한 상황의 시엔을 구해 주었고 그녀는 그 보답으로
기꺼이 모델을 서 주었지요. 그녀는 그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녀에게서 옮은 성병 때문에 그가 입원한 사이에 시엔은
아들을 출산했는데 그는 너무나 기뻐했답니다.

'햇빛이 환히 비치는 창가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자
아주 행복한 기분이 들더라.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아이가 누워 있는 요람 옆에 앉아 있을 때
깊고 강렬한 감동에 사로잡힌다'


라고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을 정도지요.
그러나,이 불행한 사내 고흐에게 그녀의 아이들과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박한 소망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양가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와 궁핍 때문에 결혼은 좌절되고
그는 그녀와 헤어지게 됩니다.
그녀는 이후 1904년,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지요.

1882년에 그린 이 그림 '슬픔'의 모델은 바로 그녀 시엔이랍니다.
그는 그녀를 모델로 60여 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이
그 중 가장 유명하지요. 알코올중독에 거칠고 불행한 매춘부인 그녀가
그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순한 비둘기처럼 길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은 아름답기는커녕
추한 누드입니다. 단호한 사실주의에 기초하고,
에로틱한 요소와는 전혀 거리가 먼 누드화지요.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숱없는 머리칼과 축 처진 가슴을
가진 볼품없이 불쌍한 여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고흐는 '슬픔'을 '자신의 심장에서 바로 튀어나온
무언가가 들어 있는 그림'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슬픔'은 그의 목표를 훌륭히 성취하고 있지요.
그가 이 인물화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였습니다.
자신의 그림에서 화가가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 한 거지요.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어쩌면 그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이 전달되는 것이겠지요.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라고 말한
그의 바람대로 말입니다.

다시 고흐를마주하는 일은제게 있어서 묵은 고통을
들추는 일이었습니다. 화집을 뒤지는 날들 내내,
나는 애써 고흐를 외면하고 있었더군요.
어쩐 일인지 저는 그를 마주하는 일을 한사코 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고흐의 생애가 오버랩되어
달려드는 그의 그림을 예전에도 결코 편안한 기분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Wheat Field Under Threatening Skies (1890)





1890년에 그는 생에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렸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슬픔과 극단적인 고독을 표현하였다'라고
말했다지요. 그는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슬픔은 이후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라고 했으니까요.
그의 그림이 드리우고 있는 이 슬픔의 그림자를
맞닥뜨리는 것은 편안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Self-Portrait (1889)





고흐는 누구보다도 사람들과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37년이란 짧은 생애를 누구보다 고독하고 불행하게 살다 갔습니다.
이 그림 '슬픔'도 그의 연인 시엔이 모델이지만
결국은 고흐 자신의 슬픈 자화상이겠지요


정우련 / 소설가


 

200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