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그림]이중섭(1916-1956) ◈부부 (1953) 날갯죽지 부리 묻고암수 서로 정답구나 이중섭의 작품 '부부'를 보고 있으니 첫 유럽 여행 때의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이 떠오른다. 마중나온 젊은 남성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온 여성이 한껏 부등켜안으며 농도 짙은 입맞춤을 나누던 장면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젊은 부부로 보이던 그들의 꺼리낌없는 사랑의 표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서나 보아온 광경을 눈앞의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낯선 문화에 대한 체험이랄까. 그림의 경우에도 우리들의 문화에서는 인간의 사랑에 관한 적나라한 작품을 좀처럼 찾기 힘들고 비유법으로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중섭의 '부부' 역시 우리의 오랜 문화적 전통에 익숙한 '사랑의 표현법'을 보여주고 있다. 한 쌍의 '남녀'가 있어야할 자리에 상상적인 '새'가 대신해 열정적인 포옹과 입맞춤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림]이중섭(1916-1956) ◈도원 (1953) 도원 65 x 76cm, 1953년 무렵 종이에 유채 물이 있고 크고 작은 봉오리들이 있는 곳에 서 있는 천도복숭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남자아이가 노는 광경을 통하여 낙원의 느낌을 나타냈다. 통영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최재덕과 8,15 직후 서울에서 그렸던 벽화도 이런 소재였다고 한다 사랑의 행위란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지닌 본원적인 생명력의 자연스러운 발로라고 할 때, 한 쌍의 '새'를 빌려서 만유의 사랑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부'의 소재가 된 한 쌍의 새는 '봉황'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원래 봉황은 상상의 새로서,'봉'은 수컷을 '황'은 암컷을 뜻하며, 상서로움과 경사로움을 표상한다. 특히 자웅이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사랑하는 남녀의 천생연분을 가리켜 '봉이 나니 황이 난다'고 말해 왔다. 우리 전통미술의 미감이나 미의식을 남달리 아꼈던 이중섭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전해오는 비유법을 빌려 사랑을 표현한 셈이다. '부부'(종이에 유채,51.5×35.5cm)는 이중섭이 나이 37세이던 1953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40세란 짧은 생애 중에 특히 고독과 좌절,방황,가난 등 온통 비극적인 사정으로 점철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은 시정의 생기 넘치는 필치와 서정성을 머금고 있는 걸작이다. [그림]이중섭(1916-1956)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은지화) (1950년대) 1950년대 은박지에 선묘, 유채 1953년의 역사적 상황은 온 강토가 전쟁터로 변하여 아비규환이던 시절이었다. 연고 없는 피난지 부산에서 생활을 견디다 못한 그는 정처없이 제주도 서귀포를 찾아갔고,거기서도 안착하지 못해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던 나머지 생활의 궁핍을 면하고자 두 아이와 일본인 아내 이남덕(본명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은 일본인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송환선을 타고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그림]이중섭(1916-1956)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 섶섬이 보이는 풍경 41 x 71cm, 1951년나무판에 유채 이 그림은 전생시 월남해 서귀포에서 주민의 도움으로 살던 집에서 그린 것으로 지붕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섬이 있는 바다의 고요하고 깨끗한 느낌을 그린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여 일본에서의 삶을 접고 오로지 이중섭만 믿고 찾아왔던 마사코와 생이별한 후 그 참담한 마음의 절망감에서 이루어진 작품이 '부부'이다. 먹는 것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가까스로 구한 그림재료로 슬픔을 딛고 역설적으로 재회를 갈망하는 심경으로 그려진 '비감어린 순애보'라고 하겠다. [그림]이중섭(1916-1956)◈달과 까마귀 (1954) 달과 까마귀 29 x 41.5cm, 1954년종이에 유채, 보름달이 뜬 맑고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게 세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앉아 친구를 찾아 모여드는 까마귀를 검은 물감을 묻힌 붓으로 간단히 그렸다. 몸 전체가 까맣다는 점 때문에 먹만으로 그리는 문인화의 소재로 어울리는 소재여서 자주 그려지기도 했다. 1953년 7월 말,보다 못한 주위 지우들의 주선으로 일시 체류의 선원증을 지니고 이중섭은 일본에 가게 된다. 꿈에 그리던 아내와 두 아이를 만났으나 신원보증 문제로 일주일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만다. 만약 이 작품 '부부'가 감격적인 재회 이후 돌아와 그린 것이라면,그 눈물겨운 재회의 기쁨을 추억하며 간직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이중섭(1916-1956)◈길 떠나는 가족 (1954) 길 떠나는 가족 29.5 x 64.5cm,1954년종이에 유채 헤어져 있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로 자신은 황소를 끌고 따뜻하여 평화와 행복이 있을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 건널 수 없는 비탄의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정성을 다해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보내고,답장이 오길 기다리고 기다린 세월 속에서 그의 많은 가족그림들은 그려졌다. 1955년초 부인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차라리 애절한 '사랑의 송가'에 다름없다. '…어떠한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젊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재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열렬한 애정만한 애정이 또 없을 것이오. 일찍이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대향(이중섭의 호),남덕이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참된 애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게요….'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에 충만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 아니겠소? 다른 사람은 무엇을 사랑해도 상관이 없소. 힘껏 사랑하고 한없이 사랑하면 되오. 나는 한없이 사랑해야 할,현재 무한히 사랑하는 남덕의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하늘이 점지해주셨소. 다만 더욱 더 깊고 두텁고 열렬하게, 무한히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애하고,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모든 것을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그림]이중섭(1916-1956)◈해변의 가족 (1953) 해변의 가족 41cm X 28.5cm 유채 그의 간절한소망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다시 만나지도 못한 채 1956년 9월 6일 11시 45분,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그는 쓸쓸하게 지상의 삶을 마친다 옥영식 미술평론가 [그림]이중섭(1916-1956)◈흰소 (1953) 흰소 합판에 유채 41.7cm X 20cm
날갯죽지 부리 묻고암수 서로 정답구나 이중섭의 작품 '부부'를 보고 있으니 첫 유럽 여행 때의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이 떠오른다. 마중나온 젊은 남성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온 여성이 한껏 부등켜안으며 농도 짙은 입맞춤을 나누던 장면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젊은 부부로 보이던 그들의 꺼리낌없는 사랑의 표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서나 보아온 광경을 눈앞의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낯선 문화에 대한 체험이랄까. 그림의 경우에도 우리들의 문화에서는 인간의 사랑에 관한 적나라한 작품을 좀처럼 찾기 힘들고 비유법으로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중섭의 '부부' 역시 우리의 오랜 문화적 전통에 익숙한 '사랑의 표현법'을 보여주고 있다. 한 쌍의 '남녀'가 있어야할 자리에 상상적인 '새'가 대신해 열정적인 포옹과 입맞춤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림]이중섭(1916-1956) ◈도원 (1953) 도원 65 x 76cm, 1953년 무렵 종이에 유채 물이 있고 크고 작은 봉오리들이 있는 곳에 서 있는 천도복숭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남자아이가 노는 광경을 통하여 낙원의 느낌을 나타냈다. 통영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최재덕과 8,15 직후 서울에서 그렸던 벽화도 이런 소재였다고 한다 사랑의 행위란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지닌 본원적인 생명력의 자연스러운 발로라고 할 때, 한 쌍의 '새'를 빌려서 만유의 사랑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부'의 소재가 된 한 쌍의 새는 '봉황'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원래 봉황은 상상의 새로서,'봉'은 수컷을 '황'은 암컷을 뜻하며, 상서로움과 경사로움을 표상한다. 특히 자웅이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사랑하는 남녀의 천생연분을 가리켜 '봉이 나니 황이 난다'고 말해 왔다. 우리 전통미술의 미감이나 미의식을 남달리 아꼈던 이중섭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전해오는 비유법을 빌려 사랑을 표현한 셈이다. '부부'(종이에 유채,51.5×35.5cm)는 이중섭이 나이 37세이던 1953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40세란 짧은 생애 중에 특히 고독과 좌절,방황,가난 등 온통 비극적인 사정으로 점철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은 시정의 생기 넘치는 필치와 서정성을 머금고 있는 걸작이다. [그림]이중섭(1916-1956)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은지화) (1950년대) 1950년대 은박지에 선묘, 유채 1953년의 역사적 상황은 온 강토가 전쟁터로 변하여 아비규환이던 시절이었다. 연고 없는 피난지 부산에서 생활을 견디다 못한 그는 정처없이 제주도 서귀포를 찾아갔고,거기서도 안착하지 못해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던 나머지 생활의 궁핍을 면하고자 두 아이와 일본인 아내 이남덕(본명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은 일본인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송환선을 타고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그림]이중섭(1916-1956)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 섶섬이 보이는 풍경 41 x 71cm, 1951년나무판에 유채 이 그림은 전생시 월남해 서귀포에서 주민의 도움으로 살던 집에서 그린 것으로 지붕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섬이 있는 바다의 고요하고 깨끗한 느낌을 그린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여 일본에서의 삶을 접고 오로지 이중섭만 믿고 찾아왔던 마사코와 생이별한 후 그 참담한 마음의 절망감에서 이루어진 작품이 '부부'이다. 먹는 것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가까스로 구한 그림재료로 슬픔을 딛고 역설적으로 재회를 갈망하는 심경으로 그려진 '비감어린 순애보'라고 하겠다. [그림]이중섭(1916-1956)◈달과 까마귀 (1954) 달과 까마귀 29 x 41.5cm, 1954년종이에 유채, 보름달이 뜬 맑고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게 세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앉아 친구를 찾아 모여드는 까마귀를 검은 물감을 묻힌 붓으로 간단히 그렸다. 몸 전체가 까맣다는 점 때문에 먹만으로 그리는 문인화의 소재로 어울리는 소재여서 자주 그려지기도 했다. 1953년 7월 말,보다 못한 주위 지우들의 주선으로 일시 체류의 선원증을 지니고 이중섭은 일본에 가게 된다. 꿈에 그리던 아내와 두 아이를 만났으나 신원보증 문제로 일주일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만다. 만약 이 작품 '부부'가 감격적인 재회 이후 돌아와 그린 것이라면,그 눈물겨운 재회의 기쁨을 추억하며 간직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이중섭(1916-1956)◈길 떠나는 가족 (1954) 길 떠나는 가족 29.5 x 64.5cm,1954년종이에 유채 헤어져 있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로 자신은 황소를 끌고 따뜻하여 평화와 행복이 있을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 건널 수 없는 비탄의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정성을 다해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보내고,답장이 오길 기다리고 기다린 세월 속에서 그의 많은 가족그림들은 그려졌다. 1955년초 부인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차라리 애절한 '사랑의 송가'에 다름없다. '…어떠한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젊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재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열렬한 애정만한 애정이 또 없을 것이오. 일찍이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대향(이중섭의 호),남덕이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참된 애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게요….'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에 충만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 아니겠소? 다른 사람은 무엇을 사랑해도 상관이 없소. 힘껏 사랑하고 한없이 사랑하면 되오. 나는 한없이 사랑해야 할,현재 무한히 사랑하는 남덕의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하늘이 점지해주셨소. 다만 더욱 더 깊고 두텁고 열렬하게, 무한히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애하고,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모든 것을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그림]이중섭(1916-1956)◈해변의 가족 (1953) 해변의 가족 41cm X 28.5cm 유채 그의 간절한소망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다시 만나지도 못한 채 1956년 9월 6일 11시 45분,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그는 쓸쓸하게 지상의 삶을 마친다 옥영식 미술평론가 [그림]이중섭(1916-1956)◈흰소 (1953) 흰소 합판에 유채 41.7cm X 20cm
200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