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디오게네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 중에 계단 위에 널부러져 있는 괴상한 인물이 있다. 바로 디오게네스다. 사실 이 그림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엇갈리는 손의 제스처가 아니다. 외려 이 두 고매한 철학자와 개처럼 계단에 널부러져 있는 저 기인 사이의 대립이다. 라파엘은 이 작품으로써 철학과 자연과학의 조화로운 발전을 얘기하려 했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디오게네스는 이 조화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조화? 당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미 지식권력이 되어 있었다. 디오게네스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과의 조화가 아니었다. 외려 이들과의 창조적 불화였다. 그리하여 권력으로 화한 이고매하고영원한 진리에 그는마구 냉소와 독설을퍼부어댔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흔히 견유주의(犬儒主義)라 부른다. 글자 안에 들어 있는 ‘개’(犬)라는 말은 디오게네스가 자기를 ‘개’라 부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날 알렉산더가 그를 찾아와 말하기를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디오게네스 왈, “나는 디오게네스, 개다.” 왜 자기를 ‘개’라 부르느냐 묻자, “내게 뭔가를 주는 자는 꼬리를 치며 반기고,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자에게는 시끄럽게 짖어대고, 내게 나쁜 짓을 하는 자는 물어버리기 때문이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철학자들의 삶과 가르침』제6권 「디오게네스」 60) [그림]Jean-Leon Gerome (1824-1904) ◈ Diogenes 창조적 개새끼 정말로 그는 개였다. 일정한 거처 없이 통 속에서 살며 주인 잃은 개처럼 남의 것을 얻어 먹으며 살았으니까. 어느 날 그가 아고라 광장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에워쌌다. 개처럼 공공장소에서 밥을 먹는 그를 향해 사람들은 개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대꾸하기를 "식탁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너희야말로 개다.” 어느 날 누군가 그에게 마치 개에게 던져 주듯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고 갔다. 사내가 사라지자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거기에 오줌을 쌌다. 어느 날 아고라 광장에서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자위를 하며 “배고픔도 이처럼 손으로 배를 만져 가라앉힐 수 있다면….” “쾌락의 경멸이 외려 가장 큰 쾌락을 가져다 준다”(71)는 이 모순적 깨달음을, 그는 생쥐에게서 배웠다. 아무 데서나 자고, 어두움도 싫어하지 않고맛있는 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는 생쥐를 보고, 자기의 실존적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았다.(22) [그림]Nicolas Poussin (1593 ~ 1665 ) ◈ Landscape with Diogenes(1647) 그리하여 이날부터 그는 외투를 두 배로 늘려 입고 다니며 이불을 삼았고, 가재도구가 담긴 골망태를 메고 다녔다. 어느 날 한 소년이 두 손에 물을 담아 마시는 것을 보고, 그 골망태 속의 물잔마저 집어던져 버렸다. “분수를 안다는 점에서 저 꼬마가 나를 능가하였노라.”(37) 그는 정말 개새끼였다. 철학을 배우겠다고 찾아 온 젊은이에게 그는 소금에 절인 생선을 한 마리 주며 그걸 들고 자기를 따라 다니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생선을 슬그머니 땅에 내려 놓고 도망쳤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를 다시 만난 디오게네스, 빙그레 웃으며 “겨우 생선 한 마리 때문에 우정이 깨지다니….”(36) 그에게 친구가 뭐냐고 물으면, “돈주머니 같은 거라고 할까? 가득 차 있으면 달고 다니다가, 텅 비면 내던져 버리는….”(50) 언젠가 그가 플라톤에게 포도주와 말린 무화과를 좀 달라고 부탁했다. 통이 큰 플라톤은 부탁 받은 물건을 항아리에 차고 넘치도록 채워 그에게 보냈다. 그러자 얻어먹는 주제에 한다는 소리, “너는 ‘2+2는 얼마냐’고 물으면, 20이라고 대답하냐?”(26) 불편한 개 ‘견유주의.’ 사전을 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신랄한 조소, 야비하도록 솔직함, 철면피, 기성도덕이나 관습에 대한 경멸적 태도.’ 물론 이런 태도를 갖고 원만한 사회생활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저 그림 속에 들어 있으면서도 거기에 속하지 않듯이, 그는 사회 안에서 살면서 동시에 사회 밖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몸에다 멍석과식기를 달고다니며. 신성한 제우스 신전에앉아 밥을 먹으며, “이 집은 아테네 시민이 특별히 나를 위해 지어준 것 같애…”(22) [그림]Castiglione, Giovanni Benedetto (1609 ~ 1664 ) ◈ The Fable of Diogenes 그는 가끔씩 대낮에 램프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나는 지금 정직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중이라오. 대낮인데도 도무지 잘 보이지 않기에 이렇게 램프라도 들고 다니면 보일까 싶어서요." 그는 개였다. 굳이 어떤 종자냐고 물으면, “사람들이 칭찬을 하나 사냥을 갈 때는 불편하다고 데려가지 않는 몰로스종(種). 너희들은 나와 함께 살 수가 없지. 그 불편함이 무서워서.”(55) 개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재미에 살았다. 어느 날 올림픽 경기를 보고 나오는 길에 누군가 ‘사람들이 많았냐’고 묻자 “떼거지는 있는데 사람은 없더군.”(60) 목욕탕에서 나오는 길에 ‘그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냐’고 묻자, “사람은 없고 천민들만 있던데.”(40) 광장에서 ‘어이, 사람들’이라 소리치자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그에게 우루루 몰려 왔다. 그러자 이들을 막대기로 마구 내려치면서 “난 사람을 불렀지, 속물을 부른 게 아니라니까.” 옷을 훔치려는 도둑을 향해 “여기서 뭐하는 거야? 전쟁터의 시체들을 털려고?” 한마디로 동료인간들이 시체라는 얘기. 나무에 교수형을 당한 여인들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모든 나무가 저런 열매를 맺었으면…”(52) 인간혐오증에가까운 고약한 유머로 사람들의약을 올리는재미에살다가, 결국 고향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된다. 시노페의 시민들이 그에게 ‘추방령’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태연하게 대꾸하기를 ‘그럼 나는 그들에게 체류령을 내리노라.’(49) 누군가 자기 집의 문에 “나쁜 놈 출입금지”라 써붙이자, 그럼 “집주인은 그 안에 어떻게 들어가려고?”(39) 누군가 성수(聖水)를 뿌리자 “이 돌대가리야, 성수가 너의 논리적 오류나 도덕적 오류를 고쳐 줄까 봐?”(42) 꿈의 해몽에 골몰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깨어 있는 상태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기껏 꿈 속의 환영에만 골몰하다니….”(43) 누군가 그에게 “대체 너는 신을 믿고 있느냐”고 물었다. 대꾸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그대가 지금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음을 내 어떻게 알겠느뇨?”(42) 언젠가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필립 대왕의 앞에 끌려나갔다. 대왕이 “그대는 누구뇨?”라 묻자, “그대의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의 관찰자.”(43) 이 말 한 마디로 그는 석방이 된다. [그림]Gerome, Jean-Leon (1824∼1904) ◈ Slave Auction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항해를 하다가 해적선에 걸려 크레타의 노예시장에 팔려 나간 적도 있었다. 노예 상인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묻자, 태연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라 대답했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 보며 “혹시 이 중에 주인을 살 사람이 있는지 물어 보시요.”(29) 그러더니 한 사람을 가리키며 “나를 이 자에게 파시오. 이 자에게는 주인이 필요한 것 같소.”(74) 노예를 사러 왔다가 졸지에 주인을 사게 된 크세니아데스. 그에게 디오게네스는 자기 말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주객이 전도된 이 황당한 요구에 크세니아데스가 “강이 근원을 향해 거꾸로 흐르는 격”이라는 옛 속담을 인용하자, 디오게네스는 그를 마구 나무랐다. “병에 걸려 의사를 샀을 때에도 너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또 ‘강이 거꾸로 흐른다’는 둥 엉뚱한 소리 할 거냐?”(36) 이렇게 그의 집에 들어온 디오게네스는 아이들의 교육은 물론이고 집안의 습속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크세니아데스는 후에 “훌륭한 정신이 우리 집에 들어 왔다”(74)고 말했다. 노예로 팔려 가는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그가 노예시장에 상품으로 전시되었을 때,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의 몸값을 치르고 그를 다시 자유민으로 만들려고 했다 한다. 그는 이들의 행위를 “순진하다”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사자는 사육사의 노예가 아니다. 진리는 그 반대다.”(75) 그리하여 그는 자유의지로 기꺼이 “사자”로 팔려갈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 진정한 노예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노예가 주인의 시종이라면, 저속한 사람은 자기의 욕망의 시종….”(66) [그림]CRAYER, Gaspard de (1584-1669) ◈ Alexander and Diogenes 왕과 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방문하러 왔을 때, 디오게네스는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세계를 정복한사람과 자신의 마음을 정복한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질 참이다. "폐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고 계십니까?" "그리스를 정복하길 바라네." 그리스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는 또 무엇을 가장 바라시겠습니까?"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길 바라겠지." "그 다음은 또 무엇을 가장 바라시겠습니까?" "아마도 온 세상을 모두 정복하길 바라겠지". "그러면 그 다음은 또 무엇을?" "그렇게 하고 나면 아마도 좀 쉬면서 즐겨야 하겠지."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 좀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 그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적합한 것만 취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기성 도덕과 관습을 우습게 보았던 디오게네스. 그의 태도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영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모든 이의 부러움을 받는 자기의 부와 권력.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 존재한다니,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는가? 그래서 그 유명한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 날 대왕이 통 속에 들어 있는 개를 찾아가 말한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줄 테니, 말해 보라.” “좀 비켜 줘. 햇빛 좀 쬐게.”(38) 이 말 한 마디에 대왕이 일생의 목표로 추구해 온 것이 졸지에 허망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얼마나 허탈했겠는가. ‘부’가 통하지 않자 ‘권력’을 가지고 은근히 협박을 하기도 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냐?” 좋은 질문. 만약 ‘무섭다’고 하면, 천하의 디오게네스는 체면을 잃게 되고, 반면 ‘ 무섭지 않다’고 하면 대왕에 대한 모독이 되니까. 이 곤란한 상황을 디오게네스는 교묘하게 헤쳐나간다. 대왕에게 디오게네스가 되묻는다. “네가 뭔데? 뭔가 좋은 것, 아니면 나쁜 것?” 대왕이 생각하기에 당연히 자기는 선인이다. “물론 좋은 것이지.” 그러자 디오게네스, “세상에,좋은 것을 왜 무서워 해?” 이로써 대왕의 권위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대왕과 개. 대왕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개는 그 어느 것도 갖기를 거부했다. 대왕은 다른 이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개는 권력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휘두른다. 그러나 부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대왕의 위력도 개에게는 아무 감명을 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는 후에 말하기를 “내가 알렉산더만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대왕이 되고 싶지 않은 개. 그러나 개가 되고 싶은 대왕. 여기서 우리는 대왕의 것보다 더 컸던 개의 ‘영혼의 크기’를 볼 수 있다. [그림]Restout Jean Bernard(1732-1797) ◈ Diogenes Asking the Statues for Alms(1765) 우연과 필연 그는 거리에 서 있는 대리석상을 향해 구걸하기도 했다. 그 이상한 행동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지금 돌의 마음과 만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오.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만나기 힘드니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디오게네스는 구걸이 신통치 않으면 굶주리게 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개와 철학자야말로 가장 큰 선을 행하는 존재지. 바라는 것도 가장 적고, 실제로 얻는 것도 가장 적으니 말이야." 그가 철학을 하는 방식 역시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는 학파도 세우지 않고, 후계자를 남기지도 않았고, 변변히 읽을 만한 글도 남기지 않고, 그럴싸한 이론의 체계도 세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기행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비웃어 버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의 가치관을 한번 의심해 보게 만들 뿐이었다. 하긴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때로는진지한 숙고보다 횡경막의 발작이 우리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는 법”이다. 누군가 디오게네스를 빗대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철학을 한다고 비꼬자, 그는 “내가 지(知)를 추구한다면, 그게 곧 철학”(64)이라 대꾸했다. 누군가 “사람들은 왜 거지에겐 돈을 주는데 철학자에게는 돈을 주지 않는가” 하고 은근히 철학자를 거지에 빗대어 그를 모욕하자,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건 사람들이 언젠가 자신이 마비되거나 눈을 멀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반면, 철학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지.”(56) 그가 논증을 하는 방식 역시 예술적이다. 그는 결코 쓸데없이 복잡한 증명이나 추론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고상한 논리를 단 한 수에 날려버리는 독설, 말놀이, 행위예술을 선호한다. 가령 언젠가 플라톤이 “인간이란 깃털이 없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라는 정의를 내려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자리에 나타난 디오게네스, 깃털 뽑은 닭을 들이대며 외치기를 “여기에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 정의에 한 가지 규정을 더 첨가해야 했다. “넓은 발톱을 가진.”(40) 누군가가 그의 앞에서 ‘운동’을 부정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움직이는 듯이 보이나 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제논의 역리?).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폴짝폴짝 뛰며 그 말을 한 자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데에 정신을 팔려 땅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에게는 ‘제 발밑도 모르는 주제에 하늘을 연구하냐’며 비꼬았다. 언젠가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설파하며 책상성(性)과 물잔성(性)에 대해 얘기하자, “헤이, 플라톤. 내 눈에 책상과 물잔은 보이지만, 책상성과 물잔성은 전혀 안 보이는데?” 언뜻 보면 장난처럼 보이지만, 이 장난 속엔 실은 적확한 논증이 들어 있다. 가령 ‘운동’을부정하며 세계를 고정시키려는 보수주의에 대한 논박, 현실을 보지 못하고 눈을 천상으로 돌리는 형이상학에 대한 반박, 개별적 사물의 다양성을 개념의 서랍에 집어 넣어버리는 관념론적 폭력에 대한 반박.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연적인 것 속에서 필연적인 것을 찾아내려 했다면, 디오게네스에게 중요한 건 우연성 그 자체였다. ‘ 너의 철학이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적어도 나는 모든 우연에 준비가 되어 있지.”(63)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 속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우연에 맞서는 재치와 기지, 그리고 용기. “우연에는 용기를.”(37) 그는 결코 조화를 바라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그저 확립된 모든 권위와의 창조적 불화였다. 개처럼 물어 뜯는 ‘한 줌의 부도덕’을 가지고 이미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은 낡은 권위와 관습과 도덕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그 결과 지성계에서는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냐’고 그를 비난하자, “이 돌대가리, 바로 그걸 통해서 난 철학을 시작했는데.”(49) 그는 자기를 모든 것에 대립시키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추방당함으로써 철학을 시작했다. 다른 철학자들이 ‘본질’, ‘불변자’, ‘영원한 진리’를 위해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것을 지워버리는 동일성의 폭력을 저지를 때, 이렇게 그는 ‘차이’의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림]Jacques-Louis David(1748-1825) ◈ The Death of Socrates(1787) 미친 소크라테스 “미친 소크라테스.”(54) 플라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맞다. 디오게네스 역시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다. 하지만 “미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가 겸손함의 미덕과 합리적 논증으로 사람을 설득시켰다면, 디오게네스는 오만함의 악덕과 가시 돋힌 행위예술로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소크라테스가 영원한 진리의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면, 디오게네스는 결코 거기에 포섭되지 않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우연의 놀이를 즐겼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하는 데에 정신적 수단을 사용했다면, 디오게네스는 철학을 위해 몸을 사용했다. 그의 수단은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논리가 아니었다. 뭔가 혼탁하고 끈적끈적한 것이었다. 똥, 오줌, 정액…. “미친 소크라테스.” 다른 말로 하면 광기의 지혜. 예로부터 광기는 예술가의 기질로 알려져 왔다. 광대는 광인, 그 광기의 힘으로 진리를 말하는 예술가. 디오게네스는 이런 의미에서 최초의 광대였다. 요즘의 표현을 빌면 최초의 행위예술가였다. 그가 동료인간들에게 독설을 퍼부을 때, 정말로 인간을 혐오했다고 보면 착각이다. 그의 반사회적 행동과 그 가시돋힌 공격성에 쓸데없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우리는 그의 행위를 일종의 예술로, 즉 퍼포먼스로 보아야 한다. 그의 건방짐을 비난하는 대신, 위선적 귄위를 단 한 칼에 날려 버리는, 그 퍼포먼스의 미학성에 주목해야 한다. “미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합리적 이성이라면, 디오게네스의 그것은 냉소적 이성이다. 소크라테스가 입으로 논증을 했다면, 디오게네스는 몸으로 논증을 했다. 그는 이론과 실천의 구별을 몰랐다. 그리하여 그의 이론을 우리는 그가 저지른 행동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칸트는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나누고 미학이 이 두 왕국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의 몸 속에서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은 애초에 하나였고, 이 하나는 동시에 미학이었다. 그의 기행은 그가 자기의 존재를 예술적으로 양식화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적 개새끼가 실존하던 방식,그의 존재미학이다. “미친 소크라테스.” 다시 앞의 그림으로.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 있었다. 두 손의 엇갈리는 방향은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의 대립을 의미한다. 이 둘의 조화로운(?) 대립이 이 그림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림의 소실점도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에 비하면 디오게네스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제까지의 서구의 철학사는 이런 식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이 철학사의 두 기둥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의 상징. 하지만 진정한 대립은 이 두 소크라테스의 후계자들과 계단에 널부러져 있는 저 “미친 소크라테스.” 사이에 있었다. 논증적 이성 대(對) 냉소적 이성. 정신, 신성, 보편자, 필연성 대(對) 광기, 육체, 동물성, 개별자, 우연성. [그림]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 ◈ Diogenes,(1882) 자유로운 세계시민 누군가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뭐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말의 자유!”(69) 누군가 그의 출신을 묻자 “나는 세계시민이다.”(63) 이 세계시민에게 “원시부족들이 보여 주듯이 인간의 고기를 먹는 것도 신성모독이 아니었다.”(72) 그는 “모든 것은 신에게 속하며, 신은 현자의 친구이며, 친구는 모든 것을 나눠 갖는다”(72)고 믿었다. 또 “가치 있는 것은 값이 싸고, 가치 없는 것은 값이 많이 나간다”고 투덜거렸다. “동상은 3천 드라크멘이나 하는데, 밀가루 한 부대는 동전 두 개의 값밖에 안 되는”(35) 현상을, 그는 이해할 수가없었다. 지금 그는 맑스가 얘기한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을 얘기하고 있는 거다. 그는 “결혼이란 쓸데없는 것이며, 따라서 여자들도 자기들의 공동체를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들과 상호동의하에 교제를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어린이 공동체”(72)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각]PUGET, Pierre (1620-1694) ◈ The Meeting of Alexander the Great and Diogenes(1692> 그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왔을 뿐 아니라 또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왔다. 그는 귀족이나 작위, 훈장 따위의 장난을 조롱하며 “유일하게 옳은 법은 우주”(72)라고 말했다. 누군가 알렉산더 대왕의 녹을 먹게 되었다고 자기의 권력을 자랑하자, 그에게 “알렉산더 눈치를 보아 가면서 아침을 먹거나 점심을 먹어야 하는 불쌍한 돼지”(44)라 말해 주었다. 그는 권력이란 남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에게 행사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노예로 팔려 가는 순간에조차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진정한 의미의 주인임을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이 된 노예. 어차피 자본주의하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자본의 노예. 이 노예들이 주인이 되는 길은 없을까? 지난번에 우리는 숭고에 대해 얘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가 연출하던 비장한 숭고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평민 디오게네스의 웃는 진리는? 그는 우리에게 골계미(희극성)와 결합된 가벼운 숭고도 있을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희극적 숭고함으로써 제 몸을 팔아 사는 노예들 역시 자기 주권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디오게네스의 유물론. 그것은학설이 아니라 존재미학이었다. 그는 관념론에 반대하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 반대하여 ‘살았다’. 후에 플라톤에 반역을 한 니체가 하게 될 일을, 2천년 전에 먼저 했던 사람. 최초의 자유사상가, 최초의 세계시민, 최초의 변증법적 유물론자, 최초의 사회주의자, 최초의 실존주의자, 최초의 행위예술가. 대왕이 부러워한 개새끼, 디오게네스. 위대한 영혼(메갈로프쉬키아, megalopsychia). 진중권의 글을 중심으로... 전설에 따르면 그는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저승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강에서 만났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알렉산더 대왕이 말했다. "다시 만났군. 정복자와 노예가 말이야."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다시 만났군요. 정복자 디오게네스와 노예 알렉산더가 말입니다. 정복을 향한 열정의 노예였던 당신과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한 정복자 이 디오게네스가 말입니다." 대화를 마친 그들은 강을 건너 불사의 신들이 사는 땅에 도착했다. 도착하기까지 길을 이끈 것은 물론 디오게네스였다.
[Apr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