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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인생멘토장인규 2007. 5. 30. 16:18
여행지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여행기간
200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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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스토리

오전에 비를 맞으며 앙코르톰을 관광한 후, 중식을 먹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앙코르 와트를 찾았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이젠 쨍쨍하다.입구에서 부터 수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 앙코르와트[Angkor Wat]

[개요]

세기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캄보디아 앙코르지역의 유적을 더듬어 보고는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이곳에서 이 경이로운 유적과 더불어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는 앙코르유적지.

 이처럼 방대한 앙코르 유적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히는 것이 바로 앙코르와트유적지다.

‘도읍’이라는 뜻의 앙코르(Angkor)와 ‘사원’을 의미하는 태국어 와트(Wat)의 조합인 앙코르와트는 1860년 프랑스의 동식물 학자 앙리 무오(Henri Mouhot)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서, 또한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적 유산의 하나로서 인류의 값진 재산이다.1999년 트레블러지가선정한 여행자들이 살아생전 가봐야 할 50군데 중 유적 부분에도 기재되었을 만큼 앙코르 왓이 주는 감명은 세계 그 어떤 곳 보다  뛰어나다고 할 만 하다. 

특히 사원 안 벽면 전체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정교하게 새겨진 거대한 부조는 전쟁과 왕국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대서사시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엄청난 규모와 함께 벽면에 새겨진 부조의 정교함은 로마나 이집트의 유적지와 앙코르와트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앙코르와트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게 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원이 동쪽을 향해있는데 반하여, 앙코르 왓 사원은 서쪽을 향해 있고

초기 학자들은 그래서 앙코르 왓 사원을 죽음의 사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과학적으로 하나 둘씩 앙코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사원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한 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천문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113년부터 1148년 사이에 통치자였던 수리야 바르만2세에 의해 건설 되었던 이 사원은 약 20만 명의 노예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쉽게 믿지 않는다. 캄보디아에는 앙코르 왓을 인드라 신이 하루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고, 1296년에 이곳을 다녀갔던 주 달관이라는 중국의 사신도 이것을 루판의 묘라고 묘사하면서,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록하고 있다.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많은 신비함 들이 앙코르를 더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징]

중앙 입구에서부터 사원 내까지 355m의 긴 보도와 중앙 탑까지 세 겹으로 둘러싸인 회랑은 해자와 더불어 앙코르 왓이 사원이라기보다는 동양의 왕성(王城)을 연상케 한다. 긴 보도와 세 개의 회랑을 통과하면 4개의 탑으로 둘러싸여 있는 65m의 중앙 탑에 도착한다.
세계적인 석조 건물인 앙코르 왓은 그 웅대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않게 세부적 조각의 아름다움이 전체를 엮어 나갔다는 느낌이 들게한다. 힌두 전설인 라마야나,마하바라타,우유의 바다 젖기,마나수라,신들과 악마의 전쟁,그리고 건립자이던 수리야바르만 2세의 출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각 회랑별로 나뉘어져있고,그 부조물들의 정교함과 현란함으로 그 당시 예술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세 번째 회랑은 이 사원의 주신인 비쉬누 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신화와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교훈적인 사항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는데 그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말과 역동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 드넓은 앙코르 제국을 이끄는 코끼리 위의 수리야 바르만 2세, 전체적 균형을 가지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사의 노동을 하는 신과 악마들... 이러한 부조물의 정교함과 현란함 그리고 조화된 균형이 당시의 화려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앙코르왓 관광 Tip]

 

앙코르왓은 해자(垓字)의 길이가 5.4㎞, 너비가 190m, 사원의 서쪽 진입로가 540m이고, 3중회랑, 본전의 높이가 65m나 되는 중앙사당을 중심으로 둘러싼 5기(基)의 탑당(塔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원의 규모가 매우 크고, 크메르건축의 정연한 기하학적 평면과 탑당이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조화와 원숙미를 보여주는 웅대한 사원이다.

서쪽 진입로에는 포석이 깔려 있고 양쪽에 나가(큰 뱀)의 난간이 있으며, 진입로의 좌우에 경장(經藏)과 성지(聖池)가 있다.(성지에 비친 탑봉을 합치면 앙코르왓의 탑봉은 열개가 된다)

동쪽 진입로는 흙으로 쌓은 성채 그대로 남아 있고, 남북 진입로 자취도 남아 있다.

 

사원건립의 사상적 배경은 크메르적 신의 세계(우주관)를 지상에 구현한 것이다.

5기의 탑당이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 메루산)을, 주위의 벽이 히말라야의 영봉을 모방하였고, 해자는 깊고 무한한 대양을 상징한 것이다. 이 사원의 주신은 비슈누신이며, 왕과 비슈누신을 합체(合體)한 특별한 신상(비슈누신왕)이 안치되어 있다. 그 당시 왕은 생전에 시호(諡號)를 가졌으며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이 사원은 신의 현재(顯在)의 의미를 지닌 왕이 죽은 뒤의 무덤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분묘사원설'로 추측되고 있는 근거는 제 3 회랑이 장례의 순례용으로 보인다는 점. 중국인 주달관(周達觀)의 <노반(魯般;앙코르와트)의 무덤(眞臘風土記)>의 기록, 그리고 진입로가 서향으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의미하는 점 등이다.

 

제 1회랑(200m×180m)에는 띠모양 내벽에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입체적인 두루마리 그림과 같다. 제재는 주신 비슈누와 그의 화신 크리슈나, 라마왕자, 신과 합체한 수리야바르만 2세 등이다. 부조의 화면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취재한 대전쟁그림(서면 남측),

-크리슈나가 폭풍우에서 목자와 가축을 지키는 장면(南西隅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위업을 칭송한 역사이야기(남면 서측),

-천국과 지옥의 장면과 죽음과 재판을 다루는 신 염마천(閻魔天, 남면 동측),

-천지창조에 관한 유해교반(乳海攪拌)의 그림(동면 남측),

-가루다(독수리신)의 어깨에 타고 적을 공격하는 비슈누신(동면 북측),

-크리슈나와 괴물 바나의 전투(북면 동측),

-라마야나에서 채화(採話)한 라마군과 악마 라바나군의 치열한 전투장면(서면 북측) 등이 볼 만하다.

 

이 회랑부조는 구도·묘사·도상 등에서 솜씨의 차이는 있지만 역동적인 묘사와 파도치는 표현으로 서면과 남면의 회랑이 미술적으로 특히 우수하다. 먼 곳을 화면 상부에 겹치는 방법을 썼고,

2중·3중으로 그려서 입체감을 주는 기법 등으로 수㎞에 달하는 회랑의 벽에 조금의 빈틈도 없이 새겼으며 전체적으로 웅장·절묘하다.

3층으로 쌓은 흙 위에 제 1 회랑이 세워져 있고, 십자형 중회랑(프리아 포앙;千體佛)의 계단을 올라가면 약간 높아진 제 2 회랑이 나타난다. 안뜰을 빠져나가면 급경사의 큰 계단이 나오는데 높이 솟은 5기의 탑당과 제 3 회랑으로 연결된다.

앙코르와트의 조영에 이르기까지는 약 10차례에 걸친 건축양식의 변천이 있었는데, 건축기술의 개량과 경험을 축적하여 미술양식이 발전하면서 이 대사원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건물벽의 공간을 메운 아름다운 모습의 네바타(여신)상 및 문미·합각(合閣) 등의 아름다운 조각, 줄지어 늘어선 기둥과 네모기둥에 새긴 정교한 장식무늬, 원주창(圓柱窓)과 포탄형(砲彈形)의 탑당 등 독창적인 조형과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방대한 석재(회색사암)는 북동쪽 약 40㎞ 떨어진 푸논쿠렌구릉의 채석장에서 채취한 것으로 보여지며. 이 사원의 건축에는 수십만 명의 인부와 포로가 동원되었고, 또한 수천 명의 석공과 불사(佛師)·대경사(大經師) 등 기능인들이 동원된 것으로 추측된다. 1432년 앙코르왕도가 다른 곳으로 천도된 뒤 상좌부(上座部;소승)불교의 사원이 되었고, 중앙사당에는 5m 크기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앙코르와트는 1908년부터 프랑스의 극동학원에 의해 보수가 시작되었으나 71년부터의 내전으로 중지되었으며, 이 내전으로 회랑벽에 총탄흔이 생겼고 일부가 파괴되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유적 가운데에서 단연 백미를 이루는 사원이다.

 

이 거대한 사원을 둘러 보기엔 오후 반나절이란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그러나 어쩌랴  패키지투어이다 보니 다음코스로 이동할 수 밖에...

씨엠립으로 들어 올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로 캄보디아 국경인 포이펫으로 이동하는 데 또다시

비가 쏟아 지기 시작한다. 카지노가 있는 트로피칼호텔에 도착하니 도로의 일부는 비로 인해

침수된 곳도 있다.

오늘 하루는 종일 앙코르유적지의 돌에 파묻혀 있었다고나 할까

새벽부터 내린 비가 원망스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