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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경북봉화 청량산/청량사 가을로

인생멘토장인규 2006. 11. 8. 17:29

여행지

경북 봉화 청량산/청량사

여행일

2006.11.7

나의 여행 스토리

진즉 갈려고 여행정보수집을 하였으나, 다른 일정으로 가을끝무렵이 되어서야 청량산을 찾았다. 동서네가 일년간 미국에 나가는 지라 잠시나마의 이별/환송여행(?) ㅋㅋㅋ

봉화를 상징하는 청량산은 예로부터 소금강이라고 일컫고 퇴계 선생이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라고 감탄할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 곳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갈려고 하루 휴가를 내어 동서네랑 오전9시에 해운대를 출발.

부산-대구 민자고속도로를 지나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를 빠져나와 청량산도립공원에 도착하니 점심때다. '선학정'에 주차를 하고 '입석' 으로 해서 산행을 하였다.

▶코스 : 선학정-->입석-->응진전-->김생굴-->청량사-->선학정

▶도립공원입장료는 대인 1,000원이고 주차료는 없다.

▣ 경북 봉화 청량산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떨어진 청량산(870m)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
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 청량산과 현재의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에서 "청량산6.6
봉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 뿐이며 어부가 알까 하노라"하고 노래했다. 청량산은 퇴계
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
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선학봉,자란봉,자소
봉,탁필봉,연적봉,연화봉,향로봉,경일봉,금탑봉,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
풍을 두른 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또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
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 굴이 있다.
특히 김생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 동안 서도를 닦
은 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
신도 9년 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
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다.

이 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어풍대,풍혈대 등의 12대가 있고, 최
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
했다하나 지금은 자취만 남아 있다. 또 역사적 유물로 청량사와 응진전, 오산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오산당은 김생굴 앞에 있는데,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곳에 후학들이 세웠

다고 한다.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옛 산성터가 남아 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 있다.

청량산은 12개의 기암봉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 암봉마다에는 하나씩의 대가 자리잡고 있다.
청량산을 들어서면서 그들의 행적을 차례대로 접해보는 것도 재미거리 중 하나일 성 싶다. 입석에서 산을 오르면 우선은 작은 오솔길이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군과 낙동강의 지류가 그림같다. 바위길을 지나면 작은 삼거리. 이정표에는 바로 가면 청량사.오른쪽 언덕길을 오르면 응진전이라고 되어있다.
먼저 응진전으로 올라야 청량사를 돌아나올 때 까지 힘들지 않으면서 청량산의 진미를 고루 맛볼 수 있다.

응진전 이정표를 따라 오르막을 힘들여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멀리로 9개의 탑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구탑봉아래 막 날아 오르려는 기러기 마냥 응진전(외 청량사)이 앉아있다. 이름난 동양화폭에서 한번정도는 보았음직한 모습. 바로 그거다.

그저 자연에다 먹으로 바위며 암자를 그려놓은 동양화에 다름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절묘한 자연의 배치에 놀랍기까지 하다.

뒤로는 깍아지른 절벽. 절 마당앞으로는 아래가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다. 설악산 봉정암이나 오세암에 버금가는 절경이자 은신처다. 응진전 옆에는 고려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공주가 이곳에서 16나한을 모셨다는 글귀가 남아있다.응진전을 돌아 김생굴로 향하는 길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첫눈이 내렸는지 낙엽위에 잔설이 남아 있었다.

일찍 저무는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응진전을 지나가고 있을 무렵의 모습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붉은 기가 도는 가을 햇살에 절 앞의 고냉지 채소밭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응진전을 끼고 절벽을 돌아나가면 엄청나게 큰 바위 중간에 샘이 고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이한 현상이라 여기고 자세히 보면, 옆에 총명수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신라의 명문가였던 최치원이 어릴적 이 물을 먹고 총명기가 밝아져서 남들 보다 빨리 문장을 터득하고 수련이 빨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명수다. 지금은 더럽혀져 한 모금 마실 수 없음이 안타깝다. 총명수를 지나면 청량산의 진수를 보게 된다.

어풍대라는 바위위에서 바라 보는 청량사가 청량산 구경의 최고라 할 만 하다. 작은 산사를 중심으로 빙둘러 기암봉우리들이 꽃잎을 피우듯 자리잡은 모습이 풍수지리에 문외한일지라도 절로 '아하! 명당이구나' 라는 탄성이 난다. 청량산이라는 지명이 그럴싸하게 와 닿는 것 도 이 순간이다

▣ 청량산 청량사

청량사는 전설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법당인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와서 머무를 때에 쓴 친필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동방유리광 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고 안에는 닥종이로 만들어 금칠을 한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다.

유리보전 범종각 바로 아래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전통잣집이 한 채 있어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여행자들에게 따끈한 차 한 잔으로 몸이나 녹이라고 권한다.명함 대용으로 쓰이는 책갈피 뒷면에 추사의 글 한 조각이 이렇게 적혀 있다.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과 갈고 묘용의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도다’

청량사는 매년 가을이면 "하나되는 세상"을 주제로 산사음악회를 연다.올해로 3회째인 청량사 음악회에서는 서울팝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정수라 신효범권인하 등의 가수와 도신스님 등이 다녀갔다 한다.

시간이 넉넉하면 안동 도산서원을 지나 봉화로 가는 길에 이육사기념관과 안동권씨 집성촌인 닭실마을에서 양반집구경을 하고 입구의 전통한과제조장도 둘러봄 직하다.

[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