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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겔- 장님의 우화 1/2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7. 14:09


[그림]Bruegel the Elder, Pieter(Flemish,1525-69)◈The Parable of the Blind Leading the Blind(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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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15장


      
      

      그 때에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대로 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길잡이들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진다." 15


      베드로가 나서서 "그 비유의 뜻을 풀이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자 16
      예수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너희도 아직 알아 듣지 못하였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나 뱃속에 들어갔다가 뒤로 나가지 않느냐? 18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21



      이 작품은 신화 이카루스(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1558)에서 소개한바 있는
      16세기 가장 위대한 플랑드르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브뤼겔이 만년에 그린 작품으로, 종교적·정치적으로 광적인 믿음이
      팽배해 있던 사회를 향한 분노와 조소가 잘 담겨 있다.

      이 그림은 신약성서에 담긴 이야기를 소재로 전개되는데,
      마태복음 15장 1절에서 9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예로 든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게 되면 구렁에 빠진다"
      구절에 얽힌 그림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무슨 일일까?
      한 무리 거지 떼가 겨울 스산한 들녘을 가로지른다.
      모두 앞 못보는 소경들이다.
      전부 여섯. 이 세상의 노동과 수고를 요구하는 날수와 같다.
      이들은 마을을 뒤로하고 떠난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술 얻어먹었을까?

      날을 도와 이웃 마을로 옮겨가는 길이다.
      버젓한 큰길은 갈 수 없는 신세다.
      마을 사람들 눈에 띄었다간 재수 옴 붙었다고 돌팔매를 맞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는 불구자들이 천대를 면치 못하던 시대였다.
      발길 드문 뒷길이 오히려 속 편하다.
      그러나 뒷길이 노상 그렇듯이 눈 밝은 사람도 마달 위험이 도사렸다.
      좁기도 좁지만 가파른 둑방길 좌우로 얼음처럼 차가운 도랑이 흐른다.
      자칫 헛발질하는 날엔 영락없이 서리 맞은 배추꼴이 되고 만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속담을 좋아했다.
      지금도 세상에서 속담이 제일 흔한 나라다.
      브뤼겔은 속담을 붓끝에다 묻혀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다.
      글과 그림의 구별이 따로 없던 때였다. 브뤼겔은 붓으로
      어처구니없는 세태를 비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사상을 말했다.

      섭정 시대 네덜란드 사회는 자못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솔직하게 속을 터놓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말 한마디에 진실이 뒤집히고
      이웃이 원수가 되기도 했다. 이럴 때 속담 한 마디는
      한 잔 술처럼 아픈 생채기를 아물리는 처세였다.
      속담은 아킬레스의 창날처럼 상처를 내기도 하고 아물게도 하는 힘이 있었다.
      따끔한 교훈과 따뜻한 격려를 한꺼번에 담는 재치가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앓듯이 내뱉는 속담 한 마디에
      부끄러운 역사와 말 못할 진실을 담았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다.
      주린 이가 주린 이를 채우거나, 병든 이가 병든 이를 낫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불의가 정의를 일으키지 못하고, 거짓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미움이 사랑을 피워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다.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건 그림에나 있는 일이다.
      전도된 세상, 바보 배를 타고 가는 바보 세상에나 있는 일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15장을 보자. 눈먼 길잡이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알고 이렇게 비유를 던진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진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다.”


      브뤼겔의 그림은 성서 이야기를 베꼈다. 교회 뾰족탑이 그림 복판에 솟아 있다.
      성서의 관점에서 소경은 죄인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으뜸 덕목이 밝은 눈을 가진 ‘슬기’(prudentia)라면,
      그 반대말 ‘맹목’은 어리석음(imprudentia)의 표본이다.
      소경을 믿고 따르다가는 필경 구렁에 빠지고 만다.
      그러니 ‘하느님말고는 아무도 믿지 말아라’는 교훈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속담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거짓 교사를 겨냥한 비난에서 나왔다.
      예수는 또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통해서
      눈먼 세상을 일깨운 일이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눈을 뜨게 하신 예수의 기적 이야기를
      육탐에 눈멀어 영혼의 눈을 앗긴 ‘눈뜬 소경’에 대한 비유로 바꾸어 읽었다.
      <이코놀로지아>를 쓴 체사레 리파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수의 기적 이야기는 이 세상 눈뜬 소경들을 인도하는 등불로 해석했다.
      “내 아버지가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다”라는
      예언은 실명의 저주로 읽었다. 소경의 실족은
      교회의 등불을 외면하는 이교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200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