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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기장군 철마 아홉산숲을 찾아서...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8. 01:23
 

 

추석연휴로 얻은 9일간의 휴가마지막주말인 24일(토). 이모의 길잡이로 기장군 철마에 위치한 아홉산 숲을 찾았다. 반송쪽에서 철마로 넘어가면 철마농협 못가서 우회전하는 길이 나온다. 이를 따라 가면 미동 文氏가 집촌을 이루어 사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아홉산숲과 구산농원이 있다. 우리가 이 곳을 찾은날 불행히도 주인이 없어 농원입구의 문은 닫겨 있어 숲속에는 들어가지를 못해 안타까웠다.

 

기장군 철마 아홉산숲&구산농원

 

▶[관련기사]

 

◈ 400년 代이은 나무사랑

 

먼옛날, 한 일가가 숲자락 터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던 그들은 숲에 의지해, 숲과 함께 삶을 이뤄 나갔다. 나무를 심고 거름을 주면서, 숲을 아끼고 보살폈다. 숲은 삶의 터전이요, 삶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숲은 그들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그곳에 있었다. 바깥세상의 질곡과 격동에도 흔들림없이 숲은 수백년의 세월을 내려오며 더욱 푸르고 풍성해져 갔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아홉산. 봉우리가 아홉이라 아홉산이다.

 

이곳에 미동 文氏 집안에서 400년간 가꾸고 보전해온 숲이 있다. 울산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종손 문백섭씨(47)는 아홉산 숲의 9대 숲지기다. 2000년 작고한 부친 문동길옹의 뒤를 이어, 선조들의 피와 땀이 어린 숲을 물려받아 지켜오고 있다.

 

“수백년에 걸쳐 조상님들이 여기에다가 나무를 심고 가꿔갖고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거라예”

 

산자락에 자리잡은 종가의 고택 뒤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에 히말라야삼나무 100여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그 오른쪽에는 수천평의 조선대나무 숲. 산길을 따라 5분 가량 올라가면 오른쪽 사면 아래 수백그루의 아름드리 홍송들이 즐비하다. 조금 더 길을 오르면 오른편 비탈에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시원하게 뻗어있다. 왼쪽 능선을 따라 펼쳐진 자연림에는 참나무류를 비롯해 벚나무, 대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어우러진 자연림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하게 보전된 숲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놀라시긴 아직 이릅니더. 욜로 함 따라와 보이소. 우리 숲의 진짜 숨은 보물은 여깁니다”

 

홍송밭을 끼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계곡 옆으로 1만여평의 맹종죽(대나무의 한 종류)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는 곧고도 단단하다. 푸른 생명력이 힘차게 넘쳐흐른다. 나무 사이로 바람의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빽빽하게 들어선 맹종죽들은 높이가 20여m에 달한다. 개중에는 둘레가 60㎝ 넘는 것들도 있을 만큼 튼실하다. 대나무숲 위를 춤추듯 날아다니는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이 언뜻 오버랩된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숲의 곳곳에 옥의 티처럼 생채기들이 나 있다. 임도(林道)에 깔린 시멘트, 여기저기 나무가 잘려나간 뒤 휑뎅그렁하게 남겨진 밑둥치들, 파헤쳐져 벌건 흙이 그대로 드러난 비탈과 드문드문 보이는 쓰레기들….

 

1999년 기장군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테마임도가 아홉산을 통과하면서 숲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몰려든 관광객들은 숲속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거나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 나무와 나물, 약초 등을 마구잡이로 채취해가버리는 통에 몇몇 종들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 식생을 고려치 않고 일률적으로 심은 가로수들은 흉물로 전락해버렸다.

 

2000년 봄 중국에서 귀국한 문씨는 이같은 현실을 보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선조들의 손길과 정성이 배어있는 곳, 어린 시절 소에게 풀을 뜯기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낮잠을 청하던 숲이 이토록 신음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관청에서 하는 일이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줄 알고 임도 연결에 동의했던 아버지도 이같은 일이 일어나자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그러나 고령에 암 투병중이라 어떡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해 여름 부친이 사망한 뒤 그가 숲을 물려받았다.

 

“이 숲은 언젠가 네가 지켜나가야 한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며 숲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숲 가꾸는 일이 병원 일보다 중요했다. 틈만 나면 숲속을 돌며 등산객들과 밀고당기는 지루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땅주인이면 다냐”고 적반하장격으로 대드는 사람들이대부분이었다. 배낭 가득 열매며 나물들을 채워넣고도 빈손이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얌체족들도 많았다. 전기톱을 들고 대나무를 베어가려던 벌목꾼과 마주쳐 위험한 일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참다 못한 문씨는 2년 가까운 시간과 막대한 사비를 들여 숲 경계에 철조망을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숲속에 흉측한 철제구조물을 설치한다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파괴의 손길로부터 숲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철조망은 사유지의 배타적 경계표시가 아니라 천박한 개발행정과 인간들의 탐욕에 대한 경고와 저항의 몸짓이었다.

 

10개월 가까이 시간이 흐르며 숲의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됐지만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문씨의 꿈은 숲을 되살리는 것. 그 뒤에는 숲을 생태교육의 장으로 만들려 한다. 울산과 부산지역의 환경단체들과 공동으로 이같은 계획을 차근차근 추진중이다.

 

“숲을 체험학습장과 휴식공간으로 꾸밀 생각입니더. 식물생태연구소와 종자은행도 설립할 낍니더. 숲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와서 숲을 느끼고,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겁니다”

 

그는 숲을 개인이 아닌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철조망과 굳게 닫힌 문은 그때쯤이면 활짝 열릴 것이다. 삼나무와 소나무, 편백나무, 대나무, 참나무가 우거진 아홉산. 아름다운 숲에 봄날의 향기가 가득하다.

 

-250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육림, 6·25 전란때에도 큰 훼손없어-

아홉산은 400년 전부터 미동 문씨들이 대를 이어 가꿔온 숲. 넓이는 13만평에 달한다. 원래 자연림이었으나 25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육림이 시작됐다. 문백섭씨의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대에는 구역별로 편백, 삼나무, 낙엽송, 참나무, 은행나무, 상수리나무, 맹종죽, 잣나무 등을 조림해 체계적으로 숲을 가꿨다. 분뇨차를 불러 대나무밭에 거름을 주고, 인근 식당을돌면서 음식쓰레기를 구해다 퇴비로 삼았다.

간벌과 가지치기, 잡목 제거도 제대로 해줬다. 남벌은 철저하게 막으면서도 일정한 구역 안에서 정해놓은 높이까지 가지를 벨 수 있게 했다. 주민들에게는 땔감을 공급하면서 가지치기도 동시에 해결한 것. 문씨 집안의 숲에 대한 애착 때문에 일제시대 강제 징발과 6·25의 전란에도 숲이 큰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숲연구소 남효창 소장은 “독일 같은 임업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잘 가꿔진 숲”이라며 “아홉산 숲이 파괴되지 않고 잘보전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과 사회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기장(부산)·이호승기자jbravo@kyunghyang.com

 

◈'나무는 혼자 숲을 짓지 않는다'

 

'수백년에 걸쳐 선조들이 심고 가꿔온 아홉산 숲을 잃고 싶지 않아요.'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아홉산 숲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온 미동 문씨 집안의 9대 숲지기인 문백섭(49)씨는 이번 봄에는 숲의 지킴이인 '아홉산 숲 생명공동체'를 시민단체로 등록할 계획이다. 13만평에 이르는 아홉산 숲은 문씨 집안이 250여년 전부터 가꿔온 곳으로 편백,삼나무,맹종죽,잣나무,참나무 등을 조림해 자연림과 인공림이 어우러진 테마숲이다.

▒ moon@busanilbo.com 2005/04/04

 

 

▶아홉산아래 자리잡은 구산농원
 
 
▶구산농원아래에서 자매가 다정하게
 
 
▶구산농원입구 나무로 만든 우편함이 구엽다.

 

다음 기회에는 아홉산산행도 해 볼 작정이지만 이곳 아홉산숲이 문백섭씨만의 바램이 아니라 멋진 자연생태학습및 체험장으로 잘 보존되기를 바래본다.

 

 
 

 

200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