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납량특집- 유딧(1/2)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6. 15:18


[그림]Lucas Cranach the Elder(獨,1472-1553)◈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1530)  



 

그림을 클릭하면 큰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열대야니 뭐니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어디 시원한 곳으로의 휴가 계획은 세웠는지?

    예전에는 휴가 못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TV에서는 납량 특집이라 하여 등골 오싹해지는
    공포물을 중심으로 전설의 고향을 방영해주었죠

    그러고 보면 여름에 상영되는 영화도 공포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공포물이라기 보다는 화면을 피튀기는 잔임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예전 어릴 때 보던 영화만큼은 재미 없는 것 같죠?.
    도금봉 주연의 목없는 미녀나 月下의 공동 묘지
    또 목련존자의 지옥문
    같은 영화를 보고나면
    밤에 화장실 가기 무서워 쩔쩔 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는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무서운 그림을 소개합니다.


    윗그림은 크라나하가 1530년 그린 그림으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서 죽이는 유딧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의상의 세부적인 묘사는 당시의 의상에 대한 고증자료가 될 정도로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유디스가 칼을 세우고 잘라진 적장의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 모습과 여인의 야무지고 차가운 얼굴은
    유디스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사실적인 묘사력은 순간적인 죽음으로 눈을 감지 못한 것이나
    잘린 목의 단면이 인체 해부학적인 정확성을 띤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림]Valentin de Boulogne(佛,1594-1632)◈Judith(1626-28)  



유딧


    유딧은 이스라엘의 애국 여걸이다.
    구약시대 앗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한 도시를 에워 쌌는데
    당시 앗시리아군의 장군은 명장 홀로페르네스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시리아군에 대한 저항을 하였으나
    끝내 항복을 해야만 했다. 이때 이스라엘을 구할
    여장이 나타났으니 이가 바로 유딧(Judith)이였다.



[그림]Valentin de Boulogne◈Judith and Holofernes(1626)    



    매우 부유하고 아름다운 미망인이였던 유딧은
    하녀 한 사람과함께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인을
    굴복시킬수 있는 계책을 알려주겠다며 적진으로 위장 투항한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기분이 좋은 홀로페르네스는
    여흥을 베풀기위해 술을 마시고
    거하게 취해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게 한다.

    그림에서의 유디스의 차가운 표정과 홀로페르네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림]HEMESSEN, Jan Sanders van(伊,1500-56)◈Judith (1540)  


    어떤 남자라도 그녀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을 만치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치장한 유딧을 품고자 하는 욕망은
    홀로페르네스에게도 어김없이 발동하였던 것이다.

    이때를 놓칠새라 유딧은 술취한 홀로페르네스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 도망간다. 다음날 아침 목이 잘린
    홀로페르네스를 보고 앗시리아는 혼비백산하여 퇴각한다.


[그림]Caravaggio(伊,1571-1610)◈Judith Beheading Holofernes(1598)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건장한 체격의 남자의 목을 칼로 베고 있다.
    남자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듯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손은 담요를 움켜잡고 있으나
    눈동자는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

    그의 목에서 솟는 새빨간 핏줄기가 하얀 담요를 붉게 적시고
    여자는 살인에 익숙하지 않은 듯 이 참혹한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남자의 머리카락과 칼을 잡은
    그녀의 팔은  단호해 보인다. 그녀의 옆에는 한 늙은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들면서 마치 자신이 칼을 든 것처럼
    자루를 힘주어 움켜잡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 속에서 더 강렬하게 나타난다.

    이 그림은 초기 바로크 Baroque 미술의 대가인 카라바지오의 작품으로
    그림 위쪽을 보면 짙은 붉은 빛의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것이 그림의 분위기를 더 강렬하고 장엄하게 만든다.
    이 휘장의 피처럼 붉은 빛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살인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홀로페르네스는 침대시트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헐렁한 블라우스 차림의 유디스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칼로 목을 자르고 있다.
    음영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그림]Francesco Solimena(伊,1657-1747)◈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1728-33)  


    위의 그림은 후기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솔리메나의 작품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딧이 베툴리아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그 머리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어슴푸레한 가운데, 발그레한 새벽빛이 비쳐오고 있고,
    그 새벽빛 속에 드러나는 베툴리아 주민들의 역동적인 자세가
    그들의 놀라움과 감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가운데 유딧은 마치 승리의 여신 같은 모습으로 계단 위에 서있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녀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려 함으로써
    그녀의 승리를 한층 공고히 하고 있다.


[그림]Titian(伊,1485-1576)◈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1515)  


    베네치아파의 또다른 대가 티치아노의 그림이다.
    티치아노의 매력인 짙고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를
    이 그림을 통해 잘 볼 수 있다. 이 그림 속의 유딧은
    티치아노의 다른 그림 속 여인들이 그렇듯이 온화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목을 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다. 그녀는 이 머리를
    거의 다정스럽게 들고 있으며 비스듬한 눈길로
    그 머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표정은 거의 불가사의하다.
    이처럼 이 그림 속의 유딧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여인이다.
    티치아노의 이 그림은 그녀의 요부성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림]GIORGIONE(伊,1477-1510)◈ Judith(1504)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의 대가인 지오르지오네의 "유딧"이다.
    그녀는 동이 트는 가운데 한 손에 칼을 쥐고
    한 발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밟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악마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은 크리스트교와 불교, 힌두교를 막론하고 널리 쓰이는
    도상 - 신이나 성인이 악마를 밟고섬으로써 정의의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내는 도상을 따르고 있다.

    그러기에 홀로페르네스를 내려다보는 유딧은 인간적인 승리감이나
    증오심의 표정 대신 마치 명상하는 것 같은 초월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MASSYS, Jan(Flemish,1510-75)◈Judith


    윗그림은 르네상스 시대 플랑드르의 화파의 화가 마시스의 "유딧"이다.
    솔리메나나 지오르지오네의 성스럽고 영웅적인 유딧과 정말 대조적이지 않은가?
    마시스의 그림 속 유딧은 나신이 환히 비치는 투명하고 얇은 옷을 걸치고 있는데,
    원래 이런 옷을 걸친 것이 그냥 나체인 것보다 더 에로틱한 효과를 주는 법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더없이 야릇한 미소를 던지고 있다. 유딧을 소재로 한 수많은 그림들 중에
    유딧이 나체로 그려진 그림들도 종종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딧이 나체나
    반라의 몸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그녀가 그와 동침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유딧서에서는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와 동침하지 않았고,
    또 노골적으로 유혹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과 우아한 말솜씨로
    홀로페르네스가 스스로 정염에 불타도록 교묘히 유도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화가들이 나체의 유딧,
    특히 나체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을 그린 이유는
    유딧을 통해서 여인의 성적 매력의 위험함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Gustav Klimt(Austria,1862-1918)◈Judith(1901)    


    클림트의 그림을 위의 마시스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투명하게 비치는 에로틱한 의상이며 그 야릇한 표정이 많이 닮았다.
    클림트의 유딧은 칼이 없는 데다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마치 애무하듯 잡고 있기에 더 살로메 같아 보인다.

    하지만 클림트는 그녀가 유딧이라고 아예 그림 위에 커다랗게
    황금빛으로 새겨놓고 있다. 클림트는 살로메가 아닌 유딧을 통해
    더 강력한 요부상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Sandro Botticelli(伊,1445-1510)◈The Discovery of the Murder of Holofernes (1472)    

    옛 이스라엘의  유딧의 이야기는 미술사에서 강자에 대한 약자의 승리,
    폭력과 자만에 대한 정의와 소박함의 승리, 남자에 의한 여성의 승리 등의
    의미로 많이 다루어졌으며 위에 소개한 것 외에도 많은 화가들의 소재로 그려졌다.


    다음편에는 유딧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소개 합니다.



"계속"


 

 

 

2005-07-20

'갤러리 > 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화) 라오콘   (0) 2008.11.06
(신화) 악타이온   (0) 2008.11.06
Chagall, Marc(1887-1985)-Bride with a Fan   (0) 2008.11.06
(신화) 이카루스 -3/3   (0) 2008.11.06
(신화) 이카루스 -(2/3)   (0) 200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