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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박힌 시간 - 르네 마그리트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5. 14:09


[그림]Rene Magritte(벨기에,1898-1967)◈Time Transfixed





들판을 달려야 할 기차가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벽난로 속에 들어가다니.
상식에 어굿난 배치가 기가 막혀서 웃었지만 어린이들이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아이는 이 그림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짐작할까요?
사물들의 상대적 크기와 중력의 법칙을
아직 모른다면 아이는 놀라지 않겠지요.

서양식 벽난로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한국 아이에게는
그저 네모들이 많고 시계가 있고 시커먼 기차가 칙칙폭폭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풍경으로기억될 테지요.

불타는 장작도 없으니 아이에게 커다란 네모 모양의 입체를,
그 기능과 이름을 가르쳐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물체를 본래의 맥락을 떠난 이상한 환경 속에 두는 것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어 무의식을 해방시키기 위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전략이었습니다.


"이성의 작용이라든가 심미적 도는 윤리적 목적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의 참된 과정을 표헌하고 하는...... 순수한 정신의 자동적 활동"


--앙드레브르통,'초현실주의 선언' 1924년


이성의 간섭을 받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해,
현실은 아니나현실을 뛰어넘는 리얼리티를 실현하는 게
초현실주의자들의 공통된 목표였는데, 살바도르 달리의 요란한 흥행술에
가려져 마르리트의 조용한 실험은 한때 과소 평가되었습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자극을 받아
마그리트는 꿈의 본질을 분석해 그림으로 보여 주었지요.
꿈의 배후엔 꿈꾼 자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욕망을 비트는 건 이성입니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일들도
잘 살펴보면 그 속에 논리가 흐르고 이성이 개입한 경우가 허다한테
마그리트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사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고리를 찾아 그림 속에 구현하려 애썼지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 사이에 어떤 논리적 연관이 존재할 때
마그리트이 최고 걸작이 탄생했습니다.

그림은 더욱 강력을발휘해 우리의 정신을 휘젓지요.
그에 비하면 벽난로에는 기차가 가장 어울리는 작이지요.
석탄처럼 진환 회색의 벽을 뚫을 수 있는 건 기차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증기기관차와 벽난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둘 다 뜨겁고 불타는 성질과 관계가 있지요.
그림자가 드리운 어두운 벽난로 안은 터널을 연상시키며
증기기관이 내뿜는 연기가 가정의 단란한 분위기를 상기시켜서......
그래서 <못 박힌 시간>을 보고 무의식이 해방되었던가?


12시 45분 앞에서 멈춘 탁상시계의 분침을 돌려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온 식구가 잠든 겨울밤 혼자 방구석에 기대앉아 동화를 읽는 아이가 있지요.
기차를 타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간 주인공이 부러워,
아이의 눈 속에 기차가 달립니다. 기차를 타고 싶어.
기다란 열차가 아이가 있는 방의 벽지를 뚫고 지나갑니다.

만일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 날개 달린 천사라든가 도개비라든가 혹은
우주선이 벽을 뚫고 나왔다면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은 반감되었겠지요.
그 혹은 그녀가 왜 하필 난롯가에 등장했을까?

숨은 뜻을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썩일 것이며 천사의 이름을
알려고 애쓸 것이고,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뜻밖의 이미지가 주는 신비감은 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기차처럼 우리가 잘 아는 사물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거기 있기에 충격이 큰 거지요.

우리에게 친근한 상대가 우리를 배반할 때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이 무너지듯...


화가의 우연한 시선/최영미  중에서




--- 끝 ---

 

 

200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