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어머니, 미술사의 로자 룩셈부르크,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신음하는 민중의 증언자, 죽음을 영접하는 여인 등으로 불리어지는 독일 판화가인 콜비츠는 1867년에 프러시아 왕국 쾨니히수베르크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공부하던 오빠를 따라 그 곳에서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생은 전통적인 가정분위기속에 자유와 정의를 갈망했을뿐만 아니라 시달리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길을 찾았다. 그녀의 그림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주의적인 자세를 허물고 남을 위한 존재로서 협력, 연대, 원조로 나서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이런한 느낌은 그녀가 그래픽의 습작과 실험과정을 거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것은 우연히 자연스럽게 영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에 그녀는 유화작업을 하였으나 그녀의 교수인 칼 스타우퍼 베른을 통해 동판 부식법을 배운것과 클링거의 상징주의 판화를 보면서 유화를 버리고 판화로 작업하기로 결심했다. 또한 그녀가 생각하기에 색채라는 것이 어떠한 심미적인 유희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검정색, 회색, 백색은 인간의 아픔과 슬픔, 어둠을 표출해내는 판화가 대중적인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판화]Kathe Kollwitz ◈ 집 없는 도시인(1926) 콜비츠의 '집 없는 도시인'(1926년,석판,42×56cm)에는 구걸할 힘조차 없어 보이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남편을 잃은 여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곳 없는 도시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한 가족의 절망적인 순간이다. 배가 고파 울다 지쳐 잠든 큰아이와 나오지 않는 젖을 빨며 엄마품을 파고드는 갓난아이를 안고, 어떻게 하면 이 자식들을 먹여서 살려낼까 하는 고뇌에 찬 어머니의 비참한 모습. 가난과 궁핍에 대해서 어떤 문장보다 더 적확하고 절실하게 표현된 이 한 장의 그림 앞에서 나는 울컥하는 격정을 누르지 못했다. 석판용 크레용을 사용하여 그 터치와 질감이 데생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는 효과를 보이는 그녀의 방식은 다양한 밀도를 지닌 음영으로 인해서 피라미드의 구도 안에 놓인 인물을 한층 처절한 분위기로 이끈다. [판화]Kathe Kollwitz ◈ The Sacrifice (1922) 한 시인이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누린 그에게 다른 시인이 발끈했다. 논 닷 마지기 짓는 농부가 자식 넷을 키우고 학교 보내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가 우리는 다 안다. 집 한 칸 없는 소시민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건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새끼들 키우느라 기둥뿌리가 뽑히고 개똥논이 날아가는데 그래도 가난이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가 하고. [판화]Kathe Kollwitz ◈ Poverty (1893-4) 가난에 대해 좀체 입을 열지 않는 한 소설가가 술김에 말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병든 아버지를 다리 아래에다 뉘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밥 비렁질을 나다녔는데 그때, 소망이 딱 두 가지였단다. 첫째는 병든 아버지가 돌아가 주셔서 밥 동냥이나마 짐을 덜고 싶은 것. 그래서 동냥해 온 음식을 혼자 맘껏 먹어치우는 것이었고, 둘째는 분유 깡통 같은 데에 철사 끈을 양쪽에 매어 들고 구걸 다니는 게 창피해서 다른 동업자 아이들처럼 미제 군용 반합을 구해, 보란 듯이 밥을 얻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그 군용 반합이 그처럼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고. 그는 다른 소설가가 쓴 가난에 대한 소설에 대고 발끈했다. [판화]Kathe Kollwitz ◈ 독일 아이들이 굶고 있다 (1924) 제 놈들이 뭘 알아,가난을 살아 봤어? 정말로 한번 가난이란 걸 살아 보겠어! 뱃때지 뜨뜻하게 밥 처묵고 아랫목에 드러누워 무슨 가난이 어쩌고 어째? 라고. 빈곤은 최소한의 가족 관계에서 지켜야 할 예의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가난이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그 누구인가. [판화]Kathe Kollwitz ◈ The Downtrodden/짓밟힌 사람들(1900) 영양실조로 빈사 상태에 빠진 아이를 어머니가 안고 있다. 차라리 저승이 행복할거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목을 졸라 죽이라고 줄을 내민다. [판화]Kathe Kollwitz ◈ 빵을!(1924) 죽어가는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고개숙인 <짓밟힌 사람들>, 떠나려는 아이의 영혼을 마지막까지 붙잡으려는 듯 죽을 힘을다해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배고파 <빵을!> 달라고 떼를 쓰며 달려드는 아이들의 눈길과 그 엄마의 넓은 등을 보면, 콜비츠가 간단한 선 몇 줄로 복잡한 인간 감정의 극점을 얼마나 순간적으로 잘 포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예술가를 통해 역사가 드러나게 될 때 그 예술가는 행복할까 고통스러울까? 하루에 8백 명씩 굶어 죽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현실, '낳은 아이들의 반이 죽고 죽은 아이의 이름을 붙여 또 낳는' 그런 악몽 속에 방치된 인생들의 고통을 그녀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판화]Kathe Kollwitz ◈ The Mothers(1921) 그녀는 모성애를 여성의 타고난 본능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거기에 계급과 역사라는 구체적인 차원을 제시하고 있다. 이 노동계급의 어머니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구조적인 모순은 역사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콜비츠의 그림이 가지는 위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나 혼자만, 내 가족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가난 속에 허덕이는 자들을 하루 속히 해방시켜야 한다는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방직공의 봉기 연작 [판화]Kathe Kollwitz ◈ Death(1897) 가난한 방직여공의 어린애에게는 먹을 것도 약품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의 신뿐이다. 그녀의 연작들중 '방직공의 봉기'는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켜 당시 베를린 예술전에서 금상을 수상(그러나 이것은 당시 정부의 반대로 수상할 수는 없었다.)한 것인데 단순히 하우프트만의 희곡작품에 대한 삽화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판화]Kathe Kollwitz ◈ Scene from Germinal/사태의긴급성(1893) 가난한 자의 사태의 간급성이다. 위급성을 표현함으로써 사회의 어두운 면, 외면당한 면이 드러나고 있다. 어머니는 속수무책으로 아픈 자식앞에서 괴로와 하고 있고, 삼베를 짜던 방직기가 그녀뒤에 멎은채로 있다. [판화]Kathe Kollwitz◈March of the Weavers from the series" The Weavers Cycle"(1897) 그녀는 이 연작을 위해 1893~1897년까지 4년동안 매달렸다. 처음에는 직조공 가족의 빈곤과 이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그림자들을 보여주며 그 다음에는 앞의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화면들은 어둡고 깊은 밤이지만 이제는 행동에 옮기기 위한 '회의'를 나타낸다. [판화]Kathe Kollwitz ◈ Storming in Gate (1897) 고용주 저택의 철문은 굳게 닫혀있고 가진자는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후의 수단으로 돌을 던지며 문을 부수고 있다 [판화]Kathe Kollwitz ◈ Uprising(1899) 그 다음, 보다 단단한 에칭용 철침을 이용해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직조공의 행진과 돌격이 나타내진다. 자유의 여신상을 따라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깃발을 세우고 나아간다. [판화]Kathe Kollwitz ◈ End(1897) 그리고 연작의 마지막에는 총에 맞은 봉기자들의 시신이 직조공의 방으로 운반되고 슬픔이 화면을 지배한다. 그러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은 어둠을 강조하는 동시에 가느다란 희망을 나타낸다. 그녀의 이 연작이 하우프트만의 극과 다른 것은 그녀가 그들의 삶과 투쟁에 전적으로 집중되어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연작은 사회의 진보적 세력을 표현하고 여기에 맞는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주의적 향식을 발굴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실주의적'인 것은 주제와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그녀가 단순히 귀족들을 위한 그림이 아닌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농민 전쟁 연작 그후 콜비츠는 독일의 혁명적 전통에서 한 계급이 전체적으로 혁명적 운동에 참여했던 농민전쟁에 관한 연작을 그려나갔다. 이것은 직조공 봉기와 같은 구성으로 짜여져 진행과정을 묘사하는 드라마와도 같다. 그리고 이때의 연작은 단지 몇 개의 판화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주제의 감정 영역을 충분히 묘사하면서도 완결성을 유지한다. [판화]Kathe Kollwitz ◈ Battlefield (1907) 전쟁 희생자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광활한 들판에 패전의 농군들이 눈을 감고 있다.시체들의 언덕에서 어머니는 시체의 턱을 올려 자신의 자식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농민전쟁 연작중에서 이 그림은 새로 개선된 부식법을 사용해 그 어머니가 밤의 어둠 속에 거의 묻힐정도로 어둡게 표현해내고 있다. 콜비츠는 이그림에 대해 "고통은 아주 어두운 빛깔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판화]Kathe Kollwitz ◈ Woman with Dead Child (1903)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 이 여인은 마치 짐승과도 같이 죽은 자신의 아이를 끌어 안고 있다. 이 연작으로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녀의 아들 페테가 종군했으나 전사하고 만 사건은 그녀의 작품내용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판화]Kathe Kollwitz ◈ Whetting the Scythe (1905) 낫을 가는 뭉툭한 손 생존본능만이 살아있는눈 농민전쟁 연작중에서 이 그림은 폭발에 앞서서 무장을 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 비장감을 표현해내고 있다. [판화]Kathe Kollwitz ◈ The Prisoners (1908) 포로가 된 농민들의 표정은 강경하고 냉소적이며 분노다. 그들은 비굴하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전사'라는 비보에 접한 가족들의 슬픔과 한을 '부모', '희생', '어머니들'등의 작품에서 잘 표현해내고 있다. [판화]Kathe Kollwitz ◈ Raped (1907) 능 욕, 화사한 꽃들은 노동과 강간으로 짓밟히고 말았다. 농민전쟁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부녀자들이 능욕당했음을 밝히고 있는 그림이다. 전쟁 연작 질병과 가난뿐만 아니라 전쟁을 영원히 몰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반전화의 역사는 콜비츠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녀는 1922년 전쟁에 관한 연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판화]Kathe Kollwitz ◈ The Volunteers (1920) 이 그림은 율동적인 구도로 죽음을 향해 젊은이들이 탄 열차가 달려가는 형상이다. 특히 인물들중 해골 옆에 있는 젊은이는 다른 인물들의 환각상태가 아닌 순진무구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이 젊은이는 콜비츠가 자신의 아들 페터를 나타낸 것으로 그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다. "너희들 그리고 너희 자녀들과 작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우울하구나. 그러나 죽음에 대한 갈망도 꺼지지 않고 있다.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게 줄곧 행운을 가져다주었던 내 인생에 성호를 긋는다. 나는 내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떠나게 내버려두렴, 내 시대는 이제 다 지났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을 멈추고, 망각한다면 우리는 또 언젠가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란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 [판화]Kathe Kollwitz ◈ Visit to the Hospital (1929) 콜비츠는 1934-1935년간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가 없었다. 백여점이나 되는 그녀의 자화상들중에서도 이 기간에 만들어진 '죽음에의 초대'는 그녀의 말기 작품가운데 유명하다. [판화]Kathe Kollwitz ◈ Call of Death (1934) 아들을 전쟁에 잃은후의 그녀의 작품들은 모델을 이용하기보다는 그녀의 많은 드로잉을 통해서 단순하고 강렬한 선들을 구축했다. "나의 작품 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구제받을 길 없는 자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인간들을 위해,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려 한다." [판화]Kathe Kollwitz ◈ Family (1931) 콜비츠의 이 말은 그녀의 작업이 소외된 계층의 민중들을 위하여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빈곤의 문제는 단지 콜비츠의 시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세계 전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 실업,전쟁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냉정한 후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대적 박탈감 또한 더욱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판화]Kathe Kollwitz ◈Seed for the Planting Must Not Be Ground(1942) 괴테의 글을 제목으로 사용한 이 그림은 그녀의 마지막 석판화로써 그녀의 인권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의 그림들의 목표는 어떤 사회고발이나 선동에 있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태의 위급성'내지는 '긴급성'을 표현함으로써 '가난의 추방'이나 '질병의 퇴치'의 필연성, 사회개혁의 불가피성을 일깨우려는데에 있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생명에 대한 경외를 불러일으키면서, 소외되고 학대받는 민중과 더불어 함께하는 새로운 인간 공동체 형성을 갈망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