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미스테리 여인을 사랑한 피에르 보나르 여자의 사랑의 바탕에는 모성애가 깔려있고, 남자의 사랑의 바탕에는 보호본능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생각이 여자와 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지만, 모성애와 보호본능 사이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연민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의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우린 사랑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평생 동안 한 여인과만 살았다. 그리고 그 여인의 모습은 보나르의 400여 장의 화폭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마치 그의 일과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 뿐이라는 듯. 그녀의 이름은 '마르트'. 그러나 그녀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보나르조차도 그녀의 원래 이름이 '마리아 부르쟁'이라는 것을 같이 산 지 32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알게 된 이유는 혼인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림]Pierre Bonnard ◈ 휴식(1900) 자폐증상을 보이는 마르트 그가 스물 여섯 살이던 해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마르트는 스물 네 살의 창백한 새 같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고 타인과의 어떠한 교감도 원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그녀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을 뿐이었다. <휴식>이라는 그림은 보나르의 초기작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마르트의 누드를 그린 것이다. 흐트러진 침대 위와 엎드려 자고 있는 마르트, 그리고 바닥에서 역시 곤히 자고 있는 강아지. 이 모든 것은 묘하게도 조화를 이루어 나른한 오후 3시의 휴식을 그리워하게 한다. [그림]Pierre Bonnard ◈ La Toilette (1932) 마르트는 보나르와 동거하던 때부터 폐병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폐증이나 뇌 기능의 이상으로 생기는 증세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그러한 자신의 병 때문에 괴로워하던 마르트는 사람들과의 어떠한 마주침도 두려워하게 되었고, 잠깐의 외출에도 양산을 써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 이런 그녀를 위해 보나르는 모든 생활을 그녀 중심으로 배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보나르에게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마르트는 이제 철저히 비사교적이고 고립을 원하네. 그녀를 위해 나 자신 모든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래서 이미 수년 전부터 조용한 은둔생활로 지낼 수밖엔 없는 상황이네. 마르트의 건강과 이런 생활이 차츰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그림]Pierre Bonnard ◈ Bath 그녀를 위해 은둔하다 보나르는 이미 결혼신고 수년 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마르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썼으며, 5년 동안 그의 모델이었고, 연인이며 약혼자였던 아름다운 여인 '르네 몽샤티'와도 고통스런 이별을 했다. 이별선언을 들은 르네는 자살을 했고, 보나르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르트와 결혼신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맑은 공기와 안정과 청결함이 필요한 그녀를 위해 한적한 온천이나 요양지를 찾아다니며, 그녀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연민을 버리지 않았다. [그림]Pierre Bonnard ◈ Nude in the Bath (1925) 욕조의 흰색, 목욕하는 이의 몸 위에 보이는 자줏빛 광택, 목욕탕의 물과 타일은 보나르로 하여금 무한한 매력과 미묘함을 다양하게 표현하도록 구실을 제공해주었다. 그것들은 움직임과 투명성이 가장 순수한 수준일 때 빛을 포착하고 가장 떨림이 클 때 색채를 포착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림]Pierre Bonnard ◈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인 (1918) 그때의 색채는 즉각적이고 예기치 않는 뉘앙스들을 망라하게 되는 것이다. 보나르는 모델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잡아서 욕조 옆면의 흰색이 드러나 도록 욕조를 우리쪽으로 기울게 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모델의 머리와 가슴은 정상적인 비례로 그려져 있으며 꽤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반면, 화가의 정면시각에서 벗어난 신체의 다른 부분은 쭉 뻗어 있어 입체감을 잃은 듯이 물 속으로 사라진다. 확실히 <목욕>은 보나르 예술의 진수를 이루는 것 중의 하나로, 이토록 많은 통찰력과 미묘함, 세련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럽고도 단순한 인상은 드문 것이다. 병적인 결벽증 보나르가 '청결함'을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욕조에 누워 있던 마르트의 모습을 그린 것은, 그들이 긴 동거생활 끝에 결혼신고를 하던 해였다. 그때 마르트는 56세였다. 그 후 그녀가 72세로 죽을 때까지 보나르는 언제나 물 속에 길게 누운 채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는 마르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림]Pierre Bonnard ◈ Nude in the Bath (1941-6) <욕탕의 누드와 작은 강아지>는 욕실에 있는 마르트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녀를 위해 특별주문한 욕조, 화려한 봄빛의 벽 타일, 푸른 바다 빛의 바닥 타일, 에머랄드색 물빛.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침잠해 있는 마르트. 그녀의 얼굴은 물에 녹아 버린 듯 뭉개져 있고, 곧 사라져 버릴 듯 하다. 그리고 보나르는 사라져가는 마르트를 연민에 가득 찬 시선으로 끝까지 지키고 있다. [그림]Pierre Bonnard ◈ 거울 앞의 나부(1933) 거울 앞의 나부 목욕을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맑은 거울 앞에 서 있다. 한 그루 싱그러운 나무처럼. 창으로 비쳐 들어온 눈부신 햇빛으로 실내는 온통 빛에 잠겨서 아늑하기만 하다. 밝은 빛은 서 있는 나부의 우윳빛 몸매를 애무하듯 감싸 그 자태는 한층 환하다. 그 순간 정결한 몸에서 노란 금빛 광채가 피어 올라 사방으로 발산한다. 건강한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여 넘실거리고 있는 실내 정경이다. [그림]Pierre Bonnard ◈ 아가씨들과 개 (1908) 음악적 조화 느끼게 하는 색채 보나르는 일상적 삶에 대한 기쁨과 행복함을 표현하는 데 애썼고, 그러한 관심은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가정의 정겨운 모습을 회화의 소재로 삼았다. 실내는 빛으로 가득하여 안락하고,식탁에는 과일이 담긴 그릇들로 풍성하다. 사랑스런 개와 고양이,단란한 가족의 모습,욕조의 나부, 창밖으로 보이는 빛나는 숲과 먼 경치들도 그가 눈길을 주었던 것들이다. 특히 남프랑스 지중해의 찬란한 빛과 공기를 그는 사랑하였다. 그 리고 눈부신 빛을 머금은 화폭을 만들기 위해 색채로 음악적인 조화와 감미로운 시정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 '거울 앞의 나부'(1933,화폭에 유채,150×100㎝)는 그가 남프랑스의 풍광 속에 살기로 작정하고 '르 칸네'에 정착한 지 8년째인 66세에 그린 완숙기의 대표작이다. [그림]Pierre Bonnard ◈ 칸네의 전경 (1942) 1909년 초여름 '생트로페'에 머문 시절 남프랑스의 빛에 매료되었고, 마침내 1925년 칸 근처에 있는 높고 전망이 좋은 작은 별장을 구입하여 '르 보스케(작은 숲)'라 이름짓고 살게 되었다. 집의 외벽은 분홍색 장밋빛이고,내부는 온통 흰색이며, 멀리 마을의 집들과 산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2층의 조그마한 방이 그의 화실이었다. 르 칸네로 이사 오던 해에는 40년이나 동거하던 마르트(1869~1942)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였다. '거울 앞의 나부' 역시 그의 아내가 된 마르트인데 당시 64세였다. 그녀의 이미지는 보나르의 작품에서 영감의 뮤즈로 자리잡아 무려 384점의 그림에 한결같이 청순한 소녀의 자태로 그려졌다. [그림]Pierre Bonnard ◈ Relaxing(1899) 청순한 소녀로 그려진 그의 뮤즈, 마르트 마르트는 '한 마리의 새'처럼 가냘픈 체격에 걸음새가 사뿐 사뿐했으며, 약간 어린아이 같은 둥근 얼굴에 연보랏빛 눈동자를 지녔고, 평소 목욕하는 것을 좋아하여 욕조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림]Pierre Bonnard ◈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인 (1918) 신경쇠약으로 외출하길 꺼리고 결벽증이 있었던 그녀도 르 칸네에서의 생활로 더 없는 편안함을 누렸다. 그런 탓인지 1930년 이후 일련의 '욕조' 걸작들이 나오게 되는데, 줄곧 목욕하는 순간은 여러가지 자태로 포착되어 그려졌다. 보나르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씻는 모습, 때로는 몸을 말리는 순간,몸을 닦는 자태, 머리를 빗으며 화장하는 장면들을 스케치해 두었다가 따로 그렸다. [그림]Pierre Bonnard ◈ Standing Nude (1920) 그가 여성의 육체를 바라 본 시선은 관능성보다 몸을 감싸고 있는 빛과 공기였으며, 비현실적인 빛 속에서 마치 목욕을 하고 있는 듯한 황홀한 정경이었다. 그래서 나부들은 순결성을 지니고 무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한편 감미롭고 우아한가 하면 은밀한 분위기에 신비스런 색채를 띤 여러 모습의 나부가 탄생했다. 어쩌면 마르트는 보나르의 작품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림]Pierre Bonnard ◈ Out of the Bath 르동의 종교적 정신성의 신비로운 빛과 색채를 흠모했던 보나르는 살아 있는 인간의 세계인 일상의 삶에서 그에 버금가는 생명의 빛과 색채를 보았다. 그래서 "색채 외에 그 무엇으로 빛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 형태가 개입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머지,화폭의 형상들은 불분명하게 몽롱해져서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하고,색면들의 조화는 암시적인 시적 몽환성을 자아낸다. [그림]Odilon Redon(佛,1840-1916) ◈ Winged Old Man with a Long White Beard 입체파 추상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동시대의 변화무쌍한 각종 미술이념과 혁명적인 회화의 조류를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의 그림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퇴폐적이고 부르조아적인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보나르는 그 자신의 화풍을 고수해 나갔다. 비난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빛으로 충만한 삶의 세계와 일상의 영원성에 대한 근원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거로운 걸 싫어한 그는 화실에 이젤을 두지 않았다. 등받이 없는 걸상 하나,탁자 두어 개,물감 튜브,기름병과 붓,걸레뿐이었다. 그림도 그냥 벽에다 둘둘 말려 있는 화폭을 넓게 펴서 압정으로 고정시켜 놓고 그렸으며,다 완성한 뒤에야 자유롭게 화폭을 잘라서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그림]Pierre Bonnard ◈ 흰고양이(1894) 보나르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일본을 뜻하는 프랑스스어와 그의 이름을 합성한 별명인 '자포나르'로 불릴 정도였다. 주제보다는 일본 목판화에서 따온 작품규모 구성, 양감 등 조형적 잠재력만을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일본식 병풍을 연상시키는 세로의 긴 액자를 즐겨 이용했다. 그의<흰 고양이>는 길게 몸을 일으키는 고양이를 묘사한 것으로 사물과 주위배경을 혼용기법으로 다루고 있다. 고양이의 흰색의 부드러운 붓터치는 형태의 윤곽선을 모호하게 하여 나른한 고양이의 모습을 더욱 강조하였다. 보나르는 세기말 부르주와의 단란하고 내밀한 생활을 즐겨 다루었고, 고양이와 개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늘 그림에 등장하고 있다. 보나르의 작품은 일상적 주제 속에 야릇한 두께와 어둠이 배어 있으며 때론 클림트 Klimt를 연상시키는 장식적 요소가 있어 약간은 퇴폐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을 준다 1984년 프랑스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보나르전'에는 3개월 동안 무려 5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성황을 이루었다. 세월이 지났으나,앙드레 로트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여전히 여운을 남긴다. "보나르,냉정하고 귀족적이고 회의적이며 지혜로 가득한 명상에 빠져있는 그는 폭력도 공포도 없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저 불가능한 영역으로 우리를 끌어 들인다."(1944) [그림]Pierre Bonnard ◈ Self-Portrait (1945 )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는 프랑스 파리 근교 퐁트네오로즈에서 아버지가 육군성의 관리인 중산계급의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대학의 법학부에 적을 두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1 887년 미술학원 아카데미줄리앙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모리스 드니를 만나 나비파(Nabi·예언자)를 결성하고 평면적 장식화풍을 선보였으며,무대장치 포스터 삽화 판화 등을 발표하였다. 1900년대 들어 뷔야르와 함께 앙티미즘(Intimism·실내정경이나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주제를 구해 사적인 정감을 강조하는 화풍) 화가로 불리어짐. 1909년 이후 색채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센강 유역이나 남프랑스의 풍광과 지중해적 빛의 조화와 서정에 충만한 생활 정경을 그렸다.
200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