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Peter Paul Rubens (Flemish,1577-1640) ◈ The Fall of Phaeton (1605)
불길에 쌓여
후일 오르페우스와 인연을 맺게 되는 하이모스 산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트나 산에서는 두 개의 불기둥이 솟아 하늘을 찔렀고
파르나소스 산의 쌍봉과, 에토스 산, 킨토스 산에도 불이 붙었다.
오르튀스 산, 로도페 산에서는 만년설이 녹아내렸고,
신들의 사당이 많은 딘뒤마 산, 뮈칼레 산, 키타이론 산에도 불이 붙었다.
그 추운 스퀴티아 지방도 무사하지 못했고,
카우카소스도 불길에 휩싸였는데 오싸 산, 핀도스 산이 무사할 리 없었다.
이보다 훨씬 높은 올림포스 산, 하늘을 찌를 듯하던
알페스 산, 구름 모자를 쓰고 있던 아펜니노스 산도 불길에 휩싸였다.
모든 것은 불타버리고
파에톤은 불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의 숨결도 풀무에서 나온 공기처럼 뜨거웠다.
수레는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열기와 함께 올라온 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똥도 그를 괴롭혔다.
뜨거운 연기로 주위가 칠흑 어둠이라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발 빠른 천마가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림]Goya, Francisco de(Spanish,1746-1828)◈ The Fire(1793)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리비아 사막도 열 때문에
모두 증발되어 오늘날의 상태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샘의 요정들은 머리를 풀고 말라가는 물을 슬퍼하였는데,
둑 아래를 흐르는 강도 또한 무사하지는 않았다.
타나이스 강도 카이코스 강도 크산토스 강도
마이안드로스 강도 모두 증발해 버렸다.
바빌론의 에우프라테스 강도 갠지스 강도
사금이 나오는 타고스 강도 백조가 머물고 있는
카위스트로스 강도 모두 말라버렸다
[그림]Sidney Goodman(美,1936-)◈ The Elements - Fire(1979-82)
샘이 말랐는데 트인 물길을 흐르던 강이 온전했을 리 없다.
강의 신 타나이스는 물 속 깊은 곳에서 진땀을 흘렸다.
연로한 페네이오스, 뮈시아의 카이코스, 흐름이 급하기로
소문난 이스메노스도 그런 고초를 겪었다.
아르카디아의 에뤼만토스 강, 후일 불길에
또 한번 마르는 크산토스 강도 이런 고통을 면하지 못했다.
누런 뤼코르마스 강, 꾸불꾸불 흐르는 마이안드로스 강,
트라키아의 멜라스 강, 스파르타의 에우로타스 강,
바뷜로니아의 에우르파테스 강, 오른테스 강,
흐름이 빠른 테르모돈 강, 강게스 강,
파시스 강, 히스테르 강도 변을 당했다.
알페이오스 강은 끓었고,
스페르케오스 강은 그 둑이 불바다로 변했다.
타고스 강 바닥의 금싸라기는 불길에 녹았고
노랫소리로 마이오니아 강을 이름난 강으로 만들던
이 강의 새들은 퀴스트로스 호수로 뛰어들었으나
끝내 살아남지는 못했다.
[그림]Cole, Thomas(英,1801-1848) ◈ Mount Aetna from Taormina(1844)
폐허로 변한 이트나산
나일강은 달아나 사막 속에 그 머리를 숨겼기 때문에
지금도 거기에 숨겨져 있다. 옛날에는 이 강도 일곱 개의 입에서
물을 바다로 배출하고 있었는데 그곳도 지금은
일곱 개의 마른 하상(하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스마로스 강, 헤브로스 강, 스트뤼몬 강, 헤스페리아의 강,
레누스 강, 파도스 강, 강들의 지배자 자리를 약속받은
튀브리스 강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못했다.
대지가 곳곳에서 입을 벌리자 햇빛이 그 틈으로 타르타로스까지
비쳐드는 바람에 하데스는 기겁을 했다.
바다가 마르자 바다였던 곳에 넓은 사막이 나타났다.
물 속 깊이 잠겨 있던 산들이 드러나자 섬들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물고기는 바다의 바닥으로 내려갔고
돌고래는 물 위로 솟구치지 못하고 수면에 등을 대고 가만히 떠다녔다.
해표의 시체가 뒤집힌 채 무시로 물결 위로 떠올랐다.
전해지기로는, 네레우스와 도리스 부부와 딸들은
바다 속의 동굴에 숨어서도 열기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림]John Singleton Copley (美,1738-1815)◈The Return of Neptune(1754)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은 세 번이나 물 밖으로 팔을 내밀어보려고 하다가
세 번 다 너무 뜨거워 팔을 거두워들였다고 한다.
대지의 여신은, 물이 자기 발 밑으로 흘러와 고이는 것을 자주 보았다.
바다의 물, 샘의 물이 열기를 피해 대지의 품안으로 스
며들어와 잔뜩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지의 여신은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는 잿더미 위로 고개를 들었다.
대지의 여신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르르 떨자
만물이 모두 부르르 떨었다.
여신은 머리를 조금 낮추고 위엄 있는 음성,
노기 띤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이것이 운명의 여신이 정한 길이고,
내가 이 같은 파멸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죄를 지었다면,
전능하신 제우스 신이여,
왜 벼락으로 나를 치지 않고 이토록 욕을 보이십니까?
불로써 나를 치시려거든, 전능하신 제우스 신이여,
당신의 불로 치세요. 같은 파멸의 불이라도
당신이 내리는 파멸의 불이 차라리 견디기 쉽겠습니다.
아, 몸이 타는 듯하여 이 말씀 드리기도 힘이 듭니다.
[그림]Jean-Antoine Watteau (佛,1684-1721)◈Ceres (Summer)(1712)
지상의 열기가 여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여신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을린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이 눈, 이 그을음을 보세요.
이 땅을 풍요롭게 하고 당신을 섬겨온 나에게 내리는 상,
나에게 베푸는 은혜가 겨우 이것입니까?
괭이에 긁히고 보습에 찢기면서까지 참아온 보람이 이것입니까?
한해 내내 마음놓고 쉬어보지도 못한 나를 이렇게 대접합니까?
가축에게 나뭇잎과 부드러운 풀을 대어주고 인간에게는 곡물을 베풀고,
신들을 위해서는 향나무를 기른 나를 이렇듯이 대접합니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고 칩시다.
하면 저 물을 다스리는 신,
당신의 형제는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당신의 형제가 다스리는 물이 왜 바다를 등지고 땅 밑으로 움츠러든답니까?
내가 말해도 소용없고 당신의 형제가 말해도 소용없다면
당신이 사는 천궁을 걱정하세요.
둘러보세요. 남극권과 북극권에서 뜨거운 연기가 오릅니다.
이 불길을 잡지 않으면 다음으로 무너질 것은 당신의 신궁입니다.
보세요.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하늘 축을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아틀라스가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지와 바다와 천궁이 무너져내린다면
우리는 옛날의 카오스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이 겁화에서 건지세요.
우주의 안위를 생각하세요.
이 말을 마치자 대지의 여신은,
땅 위의 열기를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었던지 땅 속으로 들어가
저승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림]Jean-Auguste-Dominique Ingres(佛,1780-1867)◈Thetis Appeals to Zeus (1811)
신들의 전능한 아버지 제우스는, 자기가 손을 쓰지 않으면
천지만물이 비참한 지경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는
서둘러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파에톤에게 태양 수레를 맡긴 태양신도 나왔다.
[조각]Luc Faydherbe (Flemish,1617-97)◈ Jupiter Casting a Thunderbolt(1645-55)
벼락을 날리는 제우스
제우스는 천궁 꼭대기로 올라갔다.
천궁 꼭대기는, 그가 대지 위로 구름을 펼 때나,
천둥이나 벼락을 던질 때마다 올라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천궁 꼭대기에는 대지 위에다 펼 구름도,
대지에다 쏟을 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벼락을 하나 집어, 오른쪽 귀 위까지 들어올렸다가
태양 수레의 마부석을 향해 힘껏 던졌다.
벼락 하나에 파에톤은 수레를, 그리고 이승을 하직했다.
[그림]Joseph Heintz(Swiss,1564-1609)◈ The Fall of Phaeton(1596)
파에톤 자신이 불덩어리가 됨으로써 우주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천마는 벼락소리에 몹시 놀라 길길이 뛰다가 멍에에서 풀려나고
고삐에서 풀려나 뿔뿔이 흩어졌다.
마구와 수레의 바퀴, 굴대, 뼈대, 바퀴살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다.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파편도 있었다.
[그림]Sebastiano Ricci(伊,1659-1734)◈ Fall of Phaeton(1703-4)
파에톤은 금발을 태우는 불길에 휩싸인 채 연기로 된 긴 꼬리를 끌면서
거꾸로 떨어졌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았으면 마른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겼을 터였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에리다노스 강이
벼락의 불길에 그을린 그의 시신을 받아주었다.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은 그을린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석의 명문은 이러하다.
아폴론의 이륜차를 몰던 파에톤
제우스의 번갯불에 맞아 이 돌 밑에 담들다.
그의 아버지의 화차를
뜻대로 부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뜻만은 고매하였다.
[그림]Francois Boucher(佛,1703-1770)◈The Setting of the Sun (1752)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이 파에톤을 후히 장사지내 준 것은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이 얼굴을 가린 채 숨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파에톤의 자매들은 오빠의 운명을 탄식하고 있는 동안에
강가의 포플라나무로 변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흐른 그녀들의 눈물은
강에 떨어져 호박이 되었다.
요정인 그의 누이들은 소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슬피 울다가 포플러 나무로 변했다.
파에톤의 친척으로서 리그리아 인의 왕이었던
퀴크노스도 애도의 뜻을 표하러 왔다가 백조가 되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