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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파에톤 - 두번째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3. 13:13


[그림]Odilon Redon(佛,1840-1916) ◈ The Chariot of Apollo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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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의 태양 수레


    태양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수레를 단 하루만 빌려주면 다리에 날개 달린 말을 몰아
    수레를 끌어보겠노라고 말했다.
    그제야 아버지 태양신은, 스틱스에 맹세한 것을 후회했다.
    세 번이나 그 빛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버지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은 끝내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파에톤은 기어이 태양 수레를 몰아보겠다는 것이었다.


    힘닿는 데까지 아들을 타이르다 지친 아버지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수레 있는 곳으로 아들을 데려갔다.
    이 태양 수레는 바퀴 굴대도 황금, 뼈대도 황금,
    바퀴도 황금이었다. 바퀴살만 은이었다.
    마부석에는 포에부스가 쏘는 빛을 반사할 감람석과 보석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그림]Giovanni Battista Tiepolo(伊,1696-1770)◈Phaeton und Apollo(1730)  
 





    파에톤이 벅찬 가슴을 안고 태양 수레를 만져보며 찬탄하고 있을 즈음,
    붉게 동터오는 동녘에서는 새벽잠을 깬 에오스가 장미꽃이 가득 핀 방의,
    눈부시게 빛나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별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루키페르가 긴 별의 대열을 거느리고 천계의 제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그림]Francois Boucher(佛,1703-1770)◈The Rising of the Sun (1753)  
 





    태양신은 이 루키페르가 떠나는 것과, 하늘이 붉어지면서 이지러진 달빛이
    여명에 무색해지는 것을 보고는 발빠른 호라이에게 분부하여 천마를 끌고 나오게 했다.
    호라이가 분부를 시행했다. 호라이들은 천장이 높은 마구간에서,
    암브로시아를 배불리 먹은 천마를 끌어내어 마구를 채웠다.
    천마들은 숨쉴때마다 불길을 토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다, 불길에 그을리는 것을 예방하는
    연고를 바르고 잘 문질러주고는, 아들의 머리에다 빛의 관을 씌워주었다.
    아버지는, 이러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지
    자주자주 한숨을 쉬었다. 오래지 않아 자식에게 닥칠 재앙과
    이로인한 자신의 슬픔을 예견하기 때문이었다.


[그림]Odilon Redon(佛,1840-1916) ◈ The Chariot of Apollo (1905-14)





만용은 비극을 낳고  




    아버지 포에부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비의 말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되도록 채찍은 쓰지 말고 고삐는 힘껏 틀어잡도록 해야 한다.
    천마는 저희들이 요량해서 잘 달릴 게다만
    이들의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천계의 다섯 권역을 곧장 가로질러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세히 보면 세 권역의 경계선 안으로 조금 휘어진 샛길이 있다.
    이 길을 잡으면, 설한풍이 부는 극남 권역과 극북 권역을 피해 갈 수가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수레의 바퀴자국이 보일 게다.

    하늘과 땅에 고루 따뜻한 빛을 나누어주려면
    너무 높게 몰아서도 안 되고 너무 낮게 몰아서도 안 된다.
    너무 높게 몰면 창궁에 불이 붙을 것이고
    너무 낮게 몰면 대지를 그을리고 만다.
    그 중간이 가장 안전하니 명심하여라.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또아리 튼 뱀이 있다.
    왼쪽으로 너무 치우쳐 바로 아래 있는 신들의 제단을 태워서도 안 된다.
    이 사이를 조심해서 지나가도록 하여라.
    내 이제 너를 튀케의 손에 붙이고 튀케가 너를 도와주기를,
    네가 너를 돌보는 것 이상으로 자상하게
    너를 돌보아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구나.
    서둘러라. 벌써 밤이 저 멀리 서쪽 해변에 이르렀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 태양수레가 나타날 차례다.
    에오스가 어둠을 몰아내고 있지 않느냐?
    자, 고삐를 힘있게 쥐어라.
    혹 내 말을 듣고 네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느냐?
    변했거든 천마의 고삐를 놓고 내 말을 따르거라.
    따를 수 있을 때 따르거라.
    미숙한 너에게 하늘로 오르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네가 이 위험한 일을 해보겠다고 우기기는 한다만,
    대지에 빛을 나누어주는 일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그 빛을 누리거나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그림]Odilon Redon(佛,1840-1916) ◈ Phaethon  
 





    그러나 파에톤은, 제 젊음과 제 힘만 믿고 태양 수레 위로 올라가
    아버지가 건네주는 고삐를 받았다. 그리고는 마부석에 앉아
    어려운 청을 들어준 아버지에게 예를 표했다.

    태양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날개 달린 천마,
    즉 퓌로이스, 에오우스, 아에톤, 그리고 플레곤은 불을 뿜어
    주위의 대기를 뜨겁게 달구면서 발굽으로 가로장을 걷어찼다.

    테티스는 외손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는 줄도 알지 못하는 채
    그 가로장을 치웠다. 그러자 네 마리 천마 앞으로 하늘이 펼쳐졌다.
    네 마리 천마는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앞길을 막는 구름의 장막을 찢었다.
    이들은 단숨에, 이 지역에서 이는 동풍을 저만치 앞질렀다.

    그러나 네 마리의 천마는, 수레가 엄청나게 가벼워진 데 놀랐다.
    멍에에 느껴지는 무게가 전에 비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파에톤의 무게가 포에부스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웠으니 당연했다. 네 마리의 천마에게는 저희가 수레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짐이 가벼웠던 것이었다.
    바닥짐 없는 배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바다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듯이,
    마부의 무게가 전 같지 못한 이 수레도 하늘을 누비며 흡사 빈 수레처럼 흔들렸다.


[그림]Gustave Moreau (佛,1826-1898)◈Phaeton(1878-9)
 




    일이 이렇게 되자 천마는 익히 알던 궤도를 이탈하여 제멋대로 날뛰었다.
    마부석에 앉은 파에톤은 기겁을 했지만 그에게는 고삐로 천마를 다스릴 재간이 없었다.
    그에게는 어디가 어딘지 위치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설사 분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천마를 다스릴 수 없었으니
    결국은 분간이 되나 되지 않으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 차갑던 북두칠성이 난생 처음으로 태양 수레가 내뿜은 열기에 달아올라
    금단의 바다로 뛰어들고자 했다. 북극권에 바싹 붙은 채 혹한의 하늘에
    똬리 틀고 있어서 별로 위험한 존재로는 알려지지 않던 뱀자리가
    그 열기에 똬리를 풀고 일찍이 볼 수 없던 포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목동이 놀라,
    그 느린 걸음으로나마 도망치다가 쟁기에 걸려 쓰러졌다고도 한다.
    이윽고 이 불운한 파에톤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대지를,
    아득히 먼 하계에 펼쳐진 대지를 보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졌다.
    그의 무릎은 갑자기 엄습한 공포에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강렬한 태양의 빛줄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제야 파에톤은 아버지의 천마에 손을 댄 것을 후회했다.
    친부를 찾아내고,
    그 친부로부터 소원 성취의 약속을 받아낸 것 자체를 후회했다.
    그는 메르프스의 의자로 평범하게 살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수레에 실린 채 지향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키도 쓸모없고, 밧줄도 하릴없어서,
    신들의 자비에 몸을 맡기고 기도에 희망을 건 채,
    북풍에 운명을 맡긴 소나무 쪽배의 사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손을 쓸 수도 없었고 손을 쓸 여지도 없었다.
    온 거리가 적지 않았으나 가야 할 길은 이보다 훨씬 더 멀었다.
    그는 도저히 이를 가망이 없을 듯한 서쪽 하늘과,
    두고 온 동쪽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그 거리를 마음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고삐를 놓을 수도 없고, 고삐를 잡고 있을 힘도 없었다.
    천마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판국이 었다


[그림]Michelangelo Buonarroti (伊,1475-1564)◈The Fall of Phaeton(1533)
 



    설상가상으로, 천계의 도처에서 출몰하는 거대한 괴물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그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실제로 천계에는, 전갈이 두 개의 집게발로
    두 궁의 자리를 싸안듯이 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파에톤은, 무시무시한 독을 품은 전갈이 꼬부랑한 독침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자 그만 기겁을 하고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고삐는 그의 손에서 천마의 잔등으로 떨어졌다.
    이것을 채찍질로 안 천마는 궤도를 벗어나 질풍같이 내달았다.
    이제 천마를 다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림]Eugene Delacroix (佛,1798-1863)◈Apollo Slays Python(1850-1)
 



    네 마리 천마는 생명부지의 공간을 누비며
    그때까지 달려온 것만 가늠해서 그저 달리기만했다.
    높디높은 창궁의 별 쪽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길도 없는 곳으로 수레를 끌고 가기도 했고,
    창궁에 닿을 듯이 솟구치는가 하면
    갑자기 대지의 사면에 닿을 만큼 고도를 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달의 여신(Diana)은 오라비의 이륜차가 자기의 차
    밑을 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림]Francois Boucher (佛,1703-70)◈Diana Resting after her Bath(1742)
 




    구름에서는 연기가 올랐다. 대지는 높은 곳부터 불길에 휩싸였다.
    습기가 마르자 대지가 여기저기 터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푸른 풀밭은 잿빛 벌판으로 화했다.
    나무, 풀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다익은 곡식은 대지의 파멸을 재촉하는 화변의 불쏘시개 같았다.



[그림]Ralph Albert Blakelock (美,1847-1919)◈Forest Fire
 




    그러나 이런 피해는 다른 것에 비하면 그래도 하찮은 피해였다. 거대한 성읍의 벽이 무너져내렸고 인간이 모듬살이를 하던 수많은 마을과 함께 나라가 잿더미로 변했다. 산의 수목도 불길에 휩싸였다.
    아토스 산도 불덩어리로 화했다. 물 좋기로 소문난 길리기아의 타우로스 산, 트몰로스 산, 오이타 산, 이다 산에서도 먼지가 올랐다. 무사이의 터전인 헬리콘 산에도 불이 붙었다.


"계속"

 

 

200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