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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여름 - 호퍼(Hopper)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21. 23:19

 


[그림]Hopper, Edward(1882-1967) ◈도시의 여름


 



채워지지 않는 욕망만 덩그러니…


'도시의 여름'(1949)을 보고 처음엔 클클 웃음이 나오다가 이내 몹시
우울해졌던 기억이 난다. 일과를 끝내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더위와 피곤에 지친 알몸으로 침대에 엎어져 누워 있다.

침대 곁에 걸터앉은 아내는 온몸으로 터져 나오는 욕정을
어쩌지 못해 잔뜩 부어 있다. 남편은 어제도 그저께도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서는 가슴을 파고드는 아내를 밀쳐냈을 것이다.

건강한 젊은 아내의 팽창하는 욕망만큼이나 여름 햇살이 비쳐드는
실내에는 침묵의 심연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마치 연극 무대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은 이 그림,
'도시의 여름'을 보면서 내가 실소했던 것은 바로 내 서른 서너 살 즈음의
일상이 문득 떠올라서 였다. 나는 당시 한 번도 내 손으로 만져본 적 없는
황당한 빚을 갚느라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다.

일이 끝나면 몸이 물먹은 솜처럼 지쳐서 꼼짝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몸무게는 43Kg으로 내려가고 불면증에 위염까지 겹쳤는데도 알 수 없는 것은
생리일 전후로 어김없이 찾아드는 '몸'의 욕구였다.


[그림]Hopper, Edward ◈Summer Interior (1909)




일과 후에 술에 절어 돌아오는 남편은 친구나 동료들을 달고 나타나기 일쑤였고
홀로 돌아오는 시간도 늦긴 매한가지여서 그림 속의 젊은 아내처럼
나 또한 성적 욕구불만으로 어지간히 쩔쩔맸었다.

'도시의 여름'을 보면서 대책 없는 욕망으로 퉁퉁 부은 여자의 모습에 실소하다가
이내 우울해졌던 건 그림속의 지독한 적막감과 공허 때문이었다.


[그림]Hopper, Edward ◈Eleven A.M. (1926)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풍경화들 속에는 대체로 인물이 없다.
텅 빈 거리들은 한결같이 극복할 수 없는 공허감을 보여주며
둘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과 전혀 소통할 수 없는
벽에 둘러싸여 있다. '도시의 여름'에 나오는 젊은 부부도 대화가
단절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아내가 바란 건 단순히
몸의 욕구 때문이기보다는 남편과의 내면적 소통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단절감을 어쩌면 이토록 절실하게
시각화할 수 있었을까. 이 질식할 것 같은 시각적 침묵은 '도시의 여름'에서도
화면의 전체를 압도한다. 그것은 바로 호퍼의 그림이 우리들 가슴을
때리는 깊은 공명이다.

그러면 이 시각적 침묵을 감지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그림]Hopper, Edward ◈A Woman in the Sun (1961)




호퍼의 그림들에서 유일하게 구원을 갈구하는 듯한 상징적인 요소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이 '창'이다. 창은 희망이고 구원이다.
레스토랑의 예약석은 언제나 전망 좋은 창가가 아니던가.
사람들은 어딜 가든 산소가 부족한 금붕어가 수면 위로 주둥이를 뻐끔대듯이
창가에 솔복이(?) 모여 앉는다. 창가 자리를 뺏긴 사람들이 어쩐지
손해보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슬금슬금 다른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림]Hopper, Edward ◈Morning Sun(1952)




호퍼의 그림에서도 창 내부나 혹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빛은 붙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희망으로 비쳐진다. 빛에 대한 그의 관심은 파리의 인상주의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난 빛은 인상주의의 따뜻하거나
부드러운 빛이 아니다. 그것은 무자비하고 거칠게 노출된다.


[그림]Hopper, Edward ◈Rooms by the Sea(1951)




침대 외에는 가구라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커튼도 없이 곧장 비쳐드는
여름 햇빛은 칙칙하고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실내의 침묵을
더욱 명백하고 뚜렷하게 극화시켜 나타낸다. 그로 인해 호퍼의 일관된 주제로
나타나는 침묵과 정적과 공허가 이토록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림 속의 여자 모델은 호퍼의 아내 조이고 남자 모델은 호퍼 자신이다.
수다쟁이인 조와 염세적인 호퍼가 보낸 43년 간의 결혼생활도 어지간히
불협화음이 많았다. 소유욕이 강한 조는 걸핏하면 남편의
그림 모델이 되기를 자청했는데호퍼는 그런 아내를 화면에
다소 냉소적으로 등장시키는 걸로 보복하곤 했다.


[그림]Hopper, Edward ◈Hotel Room (1931)




'도시의 여름'에서도 성적 욕구불만에 가득 찬 여자를 조로 표현했다.
내 경우도 단편 '서른네 살의 다비장'에서 1인칭 화자의 남편을
조루증의 인물로 등장시켜 슬쩍 당시의 욕구불만을 드러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쿡 웃음이 난다.


 '몸'은 이 지상에서 가장 구체적이다.
욕망이 근원하여 삶의 덫이라 하지만,
그 욕망으로 인해 비로소 삶일 수 있는 것이다.
욕망으로 인해 깨달음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몸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 몸의 중력이 예술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을 읽는 창이 아닐 수 없다.
네 차례에 걸쳐 작품 속의 몸을 보고 읽는다.


정우련 소설가


[그림]Hopper, Edward ◈Self-Portrait (1925-30)



호퍼 [Hopper, Edward 1882~1967]

뉴욕주 나이액 출생. 뉴욕의 미술학교에서 R.헨리에게 그림을 배우고,
1906년 파리에 유학하였다. 1915년 에칭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전향하였다가
1930년경부터 다시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사실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한 그는 시가지나 건물 등을 즐겨 그렸으며,
밤의 레스토랑, 인적이 끊긴 거리, 관람객이 없는 극장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200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