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르누아르-뱃놀이에서의 점심>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21. 23:33



 


[그림]Pierre―Auguste Renoir(1841∼1919 ) ◈뱃놀이에서의 점심  (1881)






세느강은 흐르고 시름도 흘러간다

'한 잔의 술'로 울적했던 기분이 화창해지고,얼어서 뭉쳤던 마음이 녹아서
흐르는 물처럼 풀려 유쾌해진다면 이보다 좋은 묘약이 따로 있겠는가.
얼큰하게 적당히 취한 가운데,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으로부터 헤어나는
이 느긋한 여유의 즐거움. 삶의 윤활유로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기쁨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가볍게 나눠 마신 한 잔의 술기운에 서로 가슴이 트이고 화기가 무르익어
조금은 들뜬 분위기,살맛 나는 기분으로 출렁이는 이 한 순간을 그려낸
그림으로는 르누아르의 '뱃놀이 일행의 점심'이 단연 백미에 꼽힌다.

[그림]Renoir ◈Le Moulin de la Galette(1876)




뱃놀이에서의 점심은 야외 대중무도장에서 술마시고 춤추는 남녀의
무리를 그린 그의 '물랭 드 라 갈레트'(131×175cm 유채화,1876년)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기념비적 걸작이다.


제법 큰 화폭(128×173cm)에 실재하는 장소와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유채로 그린 것이지만,그 자태와 표정들은 과장되지않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일상의 한 순간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개성적인 인물의 실재감이 돋보이고,화면의 구성도 절묘하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도시인의 삶의 정황을 담고 있는
풍속화가 되고 있다.


[그림]Renoir ◈Sleeping Girl  (1880)




르누아르는 1877년 제3회 인상파전에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초상화 주문으로 그림이 팔려 모처럼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던 시기인 1879년부터 파리 세느강변으로 나가 보트를 타고
즐기는 인물들을 야외의 풍경 속에 담아 그리기 시작했다.

뱃놀이에서의 점심도 이런 시기 일련의 작품 중 정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의 나이 39세인 1880년 여름에 그리기 시작하여 다음해 2월에 완성하였고,
작품은 그 당시 인상파 미술운동에 유력한 후원자였던 화랑주
뒤랑 뤼엘에게 팔렸다.

뱃놀이에서의 점심의 장소는 세느강의 중간지점인 샤투의 시아르섬에 있는
'푸르네즈 레스토랑'의 테라스이다. 이 식당은 평소 노잡이(노젓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르누아르도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는데,식당주인 알퐁스 푸르네즈와
그의 가족 초상화도 몇점 그린 터라 더욱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그림]Renoir ◈테라스에서 (1879)




오전에 뱃놀이를 하고,몸도 마음도 더없이 상쾌한 가운데 나눈
'한 잔의 술'에 취기가 돌며 시작된 점심식사가 이제 막 끝난 뒤인 듯하다.
취한 듯 얼굴에 홍조를 띠고 만족한 기분이 되어 끼리로 모여
앉거나 서서 조금은 흐트러지고 편안한 몸가짐으로 정담을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시선을 끄는 화면앞쪽의 가운데 자리,
새하얀 빛깔의 식탁 위 유리잔에는 마시다 남긴 붉은 포도주가
조금씩 담겨 있고,넉넉한 양의 술병과 과일 등에서는
풍족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세느강에 떠 있는 흰빛 요트와 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
그늘을 만든 붉은 줄무늬 차양막의 나풀거림.
병풍처럼 애워싼 숲의 잔잔한 일렁거림들.
밝은 태양빛이 쏟아지는 여름 한 나절.
투명한 유리잔에 반사된 빛의 진동이 싱그럽다.
그와 더불어 인물들의 옷빛깔 모자 장신구 등을 빌려
구사한 색상 대조의 화면효과는 맑고 투명한 공기를 눈으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온통 생기로 충만하여 빛에 잠겨 있는 풍경이다.
외광(外光)에 대한 인상파 화가다운 관심을 회화로 실현하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앞쪽 노란 밀짚모자를 쓴 두 남자는 노잡이인데,
왼쪽 난간을 잡고 서 있는 남자가 식당주인 알퐁스 푸르네즈의 아들이다.


[그림]Caillebotte, Gustave(1848-1894)◈Self-portrait (1892)



뱃놀이에서의 점심의 오른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화가 카유보트다.


그리고 앞쪽 식탁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여자는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될,젊은 양재사 알린 사리고이다.


그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여자는 드가의 그림 '압생트'에 나오는 모델로
여배우 엘렌 앙드레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Edgar Degas (1834-1917)◈압생트 (1876)



한편 그 너머 탁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여자는 그의 모델인 앙젤이다.

난간에 몸을 기댄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는 한 때
기병대 장교였던 바르비에 남작이고,

뒷편에 실크모자를 쓴 남자는 드가의 친구이자 금융업자인
샤를 에프뤼시로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르누아르는 주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어느 한때 평화로운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회화적인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으로 변용시킨다.
그래서 그는 생을 풍요롭게 향유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사랑과 공감을 얻었고,낭만주의적 인상파화가로서
사실주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림]Renoir◈Dance at Bougival (1883)





1850년 이후 프랑스 파리는 자본주의의 확산과 산업화 기술혁신 등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도시의 삶이 형성된다.
근대적인 개인의 사적인 삶의 풍요를 위해 '여가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식사모임 소풍 산책 보트타기 경마 휴가 축제 극장관람 등이 일상화되며,
특히 주말과 여름휴가 동안 야외에서의 여가생활이 빈번해졌다.

르누아르의 '뱃놀이 일행의 점심'도 삶의 이런 변화상을 화폭에 담아내
가장 프랑스적인 새로운 풍속화가 될 수 있었다.


[그림]Renoir◈음악회에서




그는 말한다. '나는 영원성이 깃들인 그림을 좋아한다…,
어느 시대든 영원성이란 것은 바로 옆골목 모퉁이에 살고 있다.'


옥영식 미술평론가
2004-08-07

'갤러리 > 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  (0) 2008.10.22
[성베드로성당]   (0) 2008.10.22
도시의 여름 - 호퍼(Hopper)   (0) 2008.10.21
Rodin의 Kiss   (0) 2008.10.21
Klimt◈The Kiss  (0) 200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