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당신이 본것은 학습한 것이다.
- 턴불의 연구로 주변세계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에 관련된 일부 중요한 심리개념들을 증명했다.
- 심리학에서 두가지 크고 중요한 연구분야는 "감각"과 "지각"에 대한 연구이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감각을 받아들이고 정보를 조회한다. 매일 매시각 엄청난 양의 감각자료들의 공세를 받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유용한 자료 입력을 여과하고 있고, 오직 그것의 작은 비율만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감각여과기제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너무나 혼동스러워서 우리를 압도하게 되고 아마도 생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감각은 두뇌의 "지각"을 위한 원재료들이다.
두뇌의 지각과정은 세가지 활동이 있다.
첫째, 관심있는 감각을 선택한다.
둘째, 인지할 수 있는 유형들과 형태들로 조직한다.
셋째, 이러한 조직을 그 세계에 관하여 설명하고 판단하기 위하여 이 조직화를 해석한다.
▣ 참고
<<전경-배경 관계 : 역전 가능한 도형>>
※ 전경-배경관계(Figure-Ground Relationship)
●전경(긍정공간) : 시각정보 공간에서 두드려지게 눈에 띄는 대상물(점, 선, 도형, 형상 등)
●배경(부정공간) : 그 정보공간이나 원경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배경보다는 전경을 먼저 보고 또 전경에 더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이같은 경향성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전경과 배경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파악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전경은 경계 (선)을 가지지만 배경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경의 경계선은 그 내부의 공간을 보다 밀도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전경은 형태나 유형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배경은 그렇지 않다.
→전경은 배경보다 적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전경은 배경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배경은 항상 전경의 뒷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칭 도형들은 비대칭 도형보다 먼저 전경으로 지각된다. 보다 단순한 도형이 복잡한 도형에 앞서 저경으로 지각된다.
개념1. 지각항등성
-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극적으로 변화될지라도 대상의 특성이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아는 능력.
형태항등성과 크기항등성이 있다. 이것이 방략이다.
1) 형태항등성
- 만약에 일어서서 의자 주위를 걷는다면 당신의 망막감각위에 투영되는 그 의자의 이미지는 당신이 걸을때마다 변한다.
그러나 당신은 변화되지 않는 의자의 형태를 지각한다. 만약 모든 물체들이 시각의 각도가 변할때마다 다르게 지각된다면
이세상의 공간들이 얼마나 혼돈스러울지 상상해보라.
2) 크기항등성
- 당신으로부터 떨어진 그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크기로 여김으로써 유사한 대상임을 지각하게 한다.
크기항등성 능력으로 우리는 멀리있는 차, 사람을 정상적인 크기로 지각할 수 있다.
개념2. 계략과 방략
- 그렇다면 이러한 지각항등성 능력은 과연 생득적인것인가? 학습된 것인가?
- 답을 미리 말하자면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 위에서 언급한 전경-배경 관계는 시력을 되찾은 맹인들의 실험에서 생득적인것으로 밝혀졌다.
- 밀림속에서만 산 피그미족 청년 켄지는 먼거리에서 경치를 본적이 없었다. 그는 산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언덕인지 혹은 구름인지"를 물었다.
또 켄지는 멀리있는 설봉을 바위조각의 형태로 해석했다. 먼 평야를 가로질러 몇마일 떨어진 곳에서 풀을 뜯고 있는 물소떼를 보고 어떤 종류의
"곤충"인지를 물었다. 턴불은 켄지가 이미 본적이 있는 물소라고 이야기 해주었지만 켄지는 믿지 않았다.
물소에 접근하면서 물소가 실제크기까지 커지자 캔지는 마술이라고 속삭였다.
또 호숫가의 2-3일 떨어진 큰 낚시배를 보고 나뭇조각이라고 말했다.
- 정글밖에서 보내는 동안 켄지는 먼곳에 있는 동물을 보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추측하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빠르게 배워갔다.
켄지는 더이상 턴불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새로운 감각에 대해 그의 지각이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 정글로 돌아와서는 그는 나무가 없는 정글밖은 아주 나쁜지역이라고 다시 주장했다.
¶ 게슈탈트 이론의 전경과 배경
우리는 대상을 인식할 때 우리에게 관심 있는 부분은 지각의 중심 부분으로 떠올리지만 나머지는 배경으로 보낸다.
예컨데 , 그림을 감상할 때 그림은 전면으로 부각되고 액자는 뒤로 물러가며, 다음 순간 액자에 관심을 가지면 액자가 전면으로 떠오르고
그림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어느 한 순간에 관심의 초점이 되는 부분을 전경이라하고, 관심 밖에 놓여있는 부분을 배경이라고 한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개체가 게슈탈트를 형성하여 지각하는 것도 전경과 배경의 관계로 설명한다.
예컨데,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그 순간에 갈증이 전경으로 떠오르고 다른 것은 잠시 배경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게슈탈트를 형성한다는 말은 개체가 어느 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욕구나 감정을 전경으로 떠올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건강한 개체는 매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게슈탈트를 선명하고 강하게 형성하여 전경으로 떠올릴 수 있는데 반해,
그렇지 못한 개체는 전경을 배경으로부터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즉, 특정한 욕구나 감정을 다른 것과 구분하여 게슈탈트로 형성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며, 따라서 행동목표가 불분명하고 매사에 의사결정을 잘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한다.(Zinker,1977).
개체가 전경으로 떠올렸던 게슈탈트를 해소하고 나면 그것은 전경에서 사라져 다시 배경으로 물러난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게슈탈트가 형성되어 전경으로 떠오르고, 해소되고 나면 다시 배경으로 물러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러한 순환과정을 "게슈탈트의 형성과 해소" 혹은 "전경과 배경의 교체"라고 부른다. 건강한 개체에 있어서는 자연스런 전경과 배경의 교체가 일어난다.
예컨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가 갑자기 갈증을 느낀다고 하자. 그러면 갈증이 전면에 떠오르고 다음 순간 아이는 부엌으로 가서 음료수를 찾아마신다.
그러면 갈증이 해소되어 배경으로 사라지고 다시 놀이를 전경으로 떠올려 거기에 열중할 것이다.
본다는 것은 눈이 보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마음은 눈만 가지고는 볼 수 없는 대상들을 본다.
( 로버트 솔소 저, 신현정 외 역, <시각심리학>, 시그마프레스 )
보통 형태 심리학이라고 번역하는 게슈탈트 심리학은 1912년 베르트하이머의 연구로 시작됐다.
게슈탈트(Gestalt)는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각할 때 떠오르는 어떤 형태(모양)를 말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현재에는 독자적인 학문으로 연구되고 있지 않으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발견이었고 독창적인 연구 분야였다.
ⓒ1981 Gleitman |
게슈탈트 심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논의 중 이른바‘착시’라고 불리는 현상들이 있다. 검정 바탕의 회색은 흰색 바탕의 회색보다 밝아 보이고, 루빈의 컵은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의 모든 인쇄물이 그러하듯,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웹사이트의 모습도 확대해 보면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운 수많은 픽셀들의 조합이고, 우리가 보는 영화도 착시 효과에 기댄 수많은 정지 장면의 연속이다. 우리는 사물을 서로 다르게, 혹은 사실과 다르게 보는 것일까? 식탁 위의 접시가 완전한 원으로 보이는 경우는 없는데 어떻게 원으로 지각할까? 왜 흰종이는 그 위에 붉은빛을 비추더라도 하얀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게슈탈트가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루빈의 컵을 볼 때 지각을 결정하는 요인은 그 사람의 지각적 습관에서 나온다. ‘어떠한 물리적 현상도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모든 정신 현상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워드 켄들러, <심리학사>, 218쪽 ) .’ 라고 한 브렌타노의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착시를 경험하게 되는 까닭은 우리의 의식이 기본적으로 통일성, 연속성, 유사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웹페이지를 볼 때 만일 동일한 사이트 내에서 페이지를 이동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페이지 구성의 통일성, 연속성, 유사성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웹사이트의 인터페이스(특히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 GUI)는 이를 기본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전경과 배경
▲ 위에서 아래로 오면서 전경이 배경이 된다. | |
ⓒ1938 Escher |
착시 효과에서 조금 더 나아가 ‘전경’ 과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전경은 앞에 떠오르는 형상이고 배경은 전경 이외의 형상이다. 개인은 전경과 배경을 조직화하여 지각의 장(場)을 마련하고 의식 속에 받아들인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이 전경이 되고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배경이 된다. 개인은 자신의 현재 욕구를 기초로 게슈탈트를 형성하여 지각한다. 백지에 그려진 원은, 배고픈 이에겐 빵이고, 아이에겐 공이고, 어떤 이에겐 돈으로 지각된다. 개인이 전경으로 떠올렸던 게슈탈트를 해소하고 나면 그 전경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게슈탈트가 형성되어 전경으로 떠오른다. 미해결 과제는 계속 전경으로 떠올라 새로운 게슈탈트 형성을 방해한다. 미해결 과제를 연기하고 미룰 경우 내 희망과 상관없이 전경으로 계속 떠오르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심리학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웹사이트를 방문할 경우 우리는 왜 팝업창이나 플래시 배너광고(리치미디어 광고라고도 불림)에 거부감을 갖는 것일까. 나는 해당 페이지의 콘텐츠를 전경으로 인식하려고 하는데, 나의 의도(지각)와는 상관없이 광고나 팝업창이 강제적인 ‘전경’으로 느닷없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어떤 과제(사건)를 완료하는 것을, 떠오른 전경을 배경으로 보내는 과정이라고 볼 때, 완성된 과제보다 미완성된 과제가 기억에 오래 남는 현상을 차이가닉 효과 (Zeigarnik-Effekt) 라고 한다. 개인은 미완결된 상황을 완결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를 지각 반응의 경제 원리, 즉 절약 원리로 설명한다. 완성된 과제와 미완성된 과제에 기억을 동일한 양으로 배분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이라, 인간의 지각은 미완성 과제에 기억을 보다 많이 할당함으로써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블로그나 게시판이나 홈페이지에 어떤 글을 작성했거나 다른 이의 글에 댓글을 남겼을 경우, 이에 대한 다른 네티즌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여러 번 그 페이지를 다시 찾거나 열람하는 것은 일종의 미완성 과제에 대한 기억 효과 때문일 것이다. 만일 만족할 만한 답변이나 댓글이 달렸다면 그 순간 이후 차이가닉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 볼테르의 흉상 혹은 두 명의 수녀 | |
ⓒ1971 Dali |
많은 윈도우를 띄우고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동시에 여러 명과 동시에 메신저를 하고 있는 네티즌은 전경과 배경을 수시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윈도우가 떠 있어도 전경은 항상 하나일 뿐이다. 어떤 메신저에는 특정 상대방이 접속해도 접속중인 내 상태가 비접속 상태인 것처럼 표시되어, 나와의 대화 접근 통로를 아예 막아버리는 기능이 있고, 이와는 거꾸로 이런 방식으로 나를 차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검색할 수 있는 방법도 생겼다. 이른바 ‘왕따 확인 프로그램’이다. 누군가를 내 대화 상대에서 영원히 차단해 버렸다면, 그가 내게 전경으로 떠오르는 것을 강제적으로 막아 버렸다는 말이고, 이미 그는 내게 의미 없는 배경으로 사라져버렸다는 말이다. 이것은 게슈탈트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미해결된 과제로서의 배경이고, 잠재적 전경인데, 과연 전경으로 떠오르지 않고 언제까지나 배경으로만 남아있을 수 있을까.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전경과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 이를 확장해 보면, 게슈탈트 심리학의 선언문과도 같은 문구,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에 이른다. 만일 우리가 어떤 장면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경우 그것은 개별 이미지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총체적인 장면으로 인지한다는 말이다.
지각 대상들은 ‘큰 단위’ 또는 '전체성’ (Ganzheit) 이다. ( 김경희, <게슈탈트 심리학>, 21쪽 ) 멜로디는 C장조에서 A장조가 될 때에도 그대로 그 멜로디인 것이다. 멜로디는 개개의 음의 합보다 더 많고 새로운 것이다. ( 김경희, <게슈탈트 심리학>, 52쪽 ) 브렌타노는 게슈탈트를 전체적으로 지각하는 요인 중 ‘지향성’에 관심을 가졌다. 각각의 게슈탈트는 서로 지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총체적(전체적)으로 인식돼야 올바른 지각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별 이미지의 단순한 총합으로 봐서는 안 될 이유가 또 있다. 인간의 욕구 상승 과정을 생리적, 안전, 소속감과 사랑, 자존심, 자아실현 단계로 설명했던 매슬로우는 ‘음식을 원하는 것은 스미스이지 스미스의 위가 아니다.’ 라는 재밌는 비유를 들며 ‘통찰’로서의 지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탤런트 최성국의 합성 사진이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동일한 자세의 최성국이 갖가지 배경을 바꿔가며 등장한다. ‘물은 셀프’ 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방송국을 배경으로 최성국이 서 있다고 한다면, 이 사진은 ‘물은 셀프’ + ‘방송국’ + ‘최성국’ 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 ‘물은 셀프’ 라는 패러디의 맥락을 알고 있는 디시폐인과, 최성국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검색엔진, 디렉토리, 메일, 카페, 블로그, 지식검색, 뉴스 등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고 있는 모든 서비스를 합친 것을 ‘포털 사이트’ 라고 정의하는 게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각되는 각 대상들과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말이다. 생활은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 딜타이의 말처럼 말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구조주의 이론과 자주 관련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 때문이다. 우리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의 파란(녹색)불을 보고, ‘파랗다’ 라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가도 된다’ 혹은 ‘빨간불이 아님, 정지하지 않아도 됨’ 이라고 인식한다. 바쁜 출근길에 계속 빨간 신호에 걸려서 짜증났던 증권사 직원이 주식 전광판이 온통 빨갛게 점등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빨간 것이 빨간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결국 관계의 문제이고 맥락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다.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환경심리학에 응용했다. “어떤 겨울 저녁,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걸어서 한 남자가 어떤 주막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 길과 도로표지가 전부 눈에 묻혀버린 벌판을 여러 시간 동안 달리고 난 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문으로 나온 주인은 그를 보고 놀라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한 방향을 가리켰고 주인은 놀라며 말했다. ‘당신이 콘스탄츠 호수를 건너왔다는 말인가요?’ 이 말에 그 사람은 몸이 돌처럼 굳어져서 그의 앞에 쓰러졌다.” ( 김경희, <게슈탈트 심리학>, 14쪽 ) 코프카의 용어를 빌면, 여기에서 호수는 지리적 환경이고, 벌판은 행동적 환경이다. 행동적 환경은 맥락에 따른 차이, 관계에 의한 차이로, 해골에 고인 물을 맛있게 마셨다는 원효 대사의 일화와도 동일하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차이’와 ‘관계’와 ‘맥락’의 이론이고, ‘통찰’의 학문이다. 웹을 탐험하고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될 게슈탈트가 과연 어떤 관계속에서 내게 ‘전경’으로 떠오르는지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 참조 도서 : 김경희, <게슈탈트 심리학>, 학지사 하워드 켄들러, 이승복 외 역, <심리학사>, 학문사 로버트 솔소 저, 신현정 외 역, <시각심리학>, 시그마프레스
다음 게시할글은 <4. 시각벼랑을 경계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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