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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 시치미, 어처구니와 이판사판...

인생멘토장인규 2009. 7. 17. 09:03

 

         보통법신

 

 

                             황동규


 

  ‘그대의 산상 수훈(山上垂訓)과 청정 법신이 무엇이 다른가?’

 

  나무들이 수척해져가는 비로전 앞에서 불타가 묻자

 

  예수가 미소를 띠며 답했다.

 

  ‘나의 답은 이렇네.

  마음이 가난한 자와 청정  법신이 무엇이 다르지 않은가?’

 

  비로자나불이 빙긋 웃고 있는 절집 옆 약수대에

  노랑나비 하나가 몇 번 앉으려다 앉으려다 말고 날아갔다.

 

  불타는 혼잣말인 듯 말했다.

 

  ‘청정 법신보다

  며칠 전 혼자 나에게 와서 뭔가 빌려다

  빌려다 한마디 못하고 간 보통 법신 하나가

  더 눈에 밟히네.’

 

  무엇인가 물으려다 말고 예수는 혼잣말을 했다.

 

  ‘저 바다 속 캄캄한 어둠 속에 사는 심해어들은

  저마다 자기 불빛을 가지고 있지.’

 

  어디선가 노란 낙엽 한 장이 날아와 공중에서 잠시 떠돌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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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 시치미, 어처구니와 이판사판...

 

 

요즘 우리 주위를 맴도는 커다란 사건을 두고 말을 하나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응응응 때문에 모두들

야단법석인데, 정작 그것을 결정하고 책임질 이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판사판..."

 

야단법석, 시치미, 어처구니, 이판사판...

 

우리 일상 속에서 적어도 한번 이상씩은 불러봤을 말과 말입니다.

실제로 누군가는 딱 저렇게 말을 내뱉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 말들이 처음부터 저런 곳에 쓰여졌던 것은 아닙니다.

 



 

'야단법석'은 한자 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입니다.

 

야외에 제단을 쌓고 불교의 가르침을 받거나 논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사찰에서 큰 불사가 있을 때 절 안으로 못들어간 이들을 위해 불당 밖에 제단을 쌓고

자리를 만들거나 처음부터 부러 바깥에서 예를 올리고 설법을 행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그런 자리를 '야외에 차린 제단과 설법을 듣는 자리'라는 뜻으로 야단법석이라 했던 것입니다.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고 사람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많은 소리와 부산스러움이 있었겠습니까?

거기다 설법과 관련한 논쟁이라도 붙을라치면 거긴 말 그대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지금도 많은 논쟁과 소동이 있는 곳을 '야단법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시치미.

 

시치미는 사냥용 매의 이름표를 의미합니다.

매를 길들여 짐승을 잡는 매사냥은 호쾌하기 이를데 없는 사냥법입니다.

동서양 모두 귀족적인 야외 활동으로 인기가 있었고

우리나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응방'이라는 전담 관청까지 둘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매 사냥도 가장 중요한 도구인 사냥 매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지중지 길을 들인 매가 제 집을 찾지 못하고 다른 집으로 갈 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경우 매가 날아든 집의 주인이 매의 발목에 붙은 이름표,

다시 말해 시치미를 뚝 떼버리고 우리집 매라고 우기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시치미, 시치미를 뚝 뗀다는 말입니다.

 

<조선시대 사냥매를 그린 그림. 좋은 매는 말 할필과 맞바꿀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어처구니

 

어처구니는 텔레비젼의 퀴즈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많이 알려진 말입니다만,

맷돌의 손잡이 나무 부분을 어처구니라 불렀습니다.

 

맷돌이란 것이 저 무거운 돌을 그냥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무 손잡이,

어처구니를 잘 끼우고

맷돌을 돌렸는데, 그게 없다면 얼마나 어이 없고 황당하겠습니까?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판사판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제일 많이 쓰는 말 중의 하나가 이판사판입니다.

이 이판사판은 조선초에 생겨난 말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고려와 차별이 되는 몇몇 정책을 펼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숭유억불(崇儒抑佛) 다시 말해,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이었습니다.

 

탄압을 받게 된 불교는 그 전통을 잇기 위해 두가지 길을 선택했는데,

하나는 승려들이 기름을 짜고 신발과 종이를 만드는 등의 잡일을 하며 절을 유지시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숨어서라도 오로지 불도에만 전념하는 것이었는데

앞의 것을 사판승(事判僧)이라했고 뒤의 길을 택한 이들을 이판승(理判僧)이라 했습니다.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불교가 억압받던 당시에 승려들은 사회의 최하위 계급.

때문에 사람들은 막판에 몰린 상황을 이판, 사판과 같다고하며

이판사판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썼다고 합니다.

 

난리법석, 시치미, 어처구니, 이판사판...

 

"응응응 때문에 모두들

야단법석인데, 정작 그것을 결정하고 책임질 이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판사판..."

 

 

그런데 만약 이들에게, 저 말들에게 생각하고 항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자신들이 저런 상황에, 저렇게 쓰여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