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사색의 공간[감동·좋은글]

슬프고 에로틱한 연인, 건강하고 튼튼한 아내

인생멘토장인규 2009. 7. 7. 09:19

 

 

 

슬프고 에로틱한 연인, 건강하고 튼튼한 아내

 

 

“오빠는 그런 여자와 결혼하면 큰일 나! 오빠가 말라 죽든, 그 여자가 정신이 돌아버리든, 둘 중 하나가 돼. 정신 똑바로 차려!”



그때, 내 여동생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협박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오빠같이 속 좁고, 뒤끝 길고, 귀 얇고, 인내심 없는 사람’은 반드시 아주 튼튼하고 건강한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내 속을 후벼 파고, 쑤셔 뒤집어엎어 버린다.



결혼하기 전 이야기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나는 예쁜 여자가 무조건 좋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묘하게 슬픈 에로티시즘까지 있는 그런 여자와 나는 결혼하고 싶었다. 내 친구들은 매번 그 ‘묘하게 슬픈 에로티시즘’은 또 뭐냐고 묻지만, 그때 내 눈에는 그런 게 확실히 보였다. 그래서 그런 여자들만 쫓아다녔다.



그러나 내 여동생의 이론은 확고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여자와 살면 한쪽이 결딴난다는 것이다.



내 여동생은 나보다 두 살 어리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나는 내 동생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는 편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정신연령은 확실히 나보다 성숙했다. 동생이 하는 말을 들어 손해 보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밥도 매번 챙겨줬다. 급할 때, 돈을 빌려 달라면 항상 내 동생에게는 돈이 있었다. 여자문제뿐만 아니다. 내 일과 관련해 자문을 하면 매번 아주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동생이었다. 그런 여동생이 지금 내가 사귀는 여자와, 그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그 여자와 헤어지라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여동생의 조언이니 귀가 얇다 못해,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귀 껍데기가 구멍을 덮는 나로서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 예산 촌놈 선규도 그 여자는 아니라고 쫓아다니며 말렸다. 선규는 “네가 좋아하는 ‘그 묘하게 슬픈 에로티시즘’이 남자 말아먹는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매번 그 여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여자와 사귀어야 하느냐”고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자기가 아끼는 후배 중에, 정말 몸도 마음도 튼튼한 후배가 있으니 만나 보라고 했다.



묘하게 슬픈 에로티시즘 vs 튼튼한 여자


주위에서 흔들어대니 그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자와의 만남도 이내 끝났다. 혹시나 해서 동생이 소개하는 그 여자와 한번 만나 봤다.

정말 튼튼했다. 일단 聲樂(성악)을 전공하는 만큼 체구가 그렇게 당당할 수 없었다. 팔뚝 굵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편안하게 기댈 수도 있고, 팔베개 삼아 잠을 청해도 바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러나 내가 꿈꾸던, 그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내 ‘묘하게 슬픈 에로티시즘’에 대한 환상을 이렇게 빨리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튼튼한 그녀도 나를 몇 번 만나고 나더니, “삐쩍 마른 아저씨 복학생은 싫다”고 했다. “많이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말도 동생을 통해 전해 왔다.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

 

 

 



그 후, 나는 독일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머나먼 中歐(중구)의 낯선 땅은 몸도 마음도 허약한 내가 혼자서 견뎌 내기엔 너무 거친 곳이었다. 1년을 겨우 버티고 방학을 맞아 서울의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겨우 50㎏에 불과한 내 모습을 보고 온 가족이 난리가 났다. 그런 상태로 독일에 다시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혼자 버틸 자신이 없었다. 동생에게 넌지시 그 ‘튼튼한 후배’에 관해 물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아직 특별히 사귀는 남자친구는 없다”고 했다.

나는 “다시 만나자”고 했다. 정말 영혼이 고독한 곳에 혼자 살아 보니,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것은 아무 짝에도 쓸데 없었다. 그저 건강하고 튼튼한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보다 더 튼튼하고 용감해진 그녀는 나를 따라나서겠다고 바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다. 내가 한 여자와 20년이나 살았다니. 생각해 보면 정말 신통한 일이다. 지난 연말, 결혼 20주년 기념반지와 목걸이를 정말 큰돈 들여 아내에게 선물했다.



살면 살수록 아내가 건강한 것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내면이 섬세하기 그지없는― 아내 입장에서는 소심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내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내는 큰 위안이 된다. 결정적으로 내 아내에겐 걱정과 후회가 별로 없다. 걱정이나 후회를 해도 아주 짧고 간단하다. 그리고 바로 잊어버린다.

 

 



‘두 갈래 길’


끊임없이 돌이켜 생각하고 후회하며 괴로워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다. 집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나는 괴로운 생각에 밤새도록 잠 못 이룬다. 그러나 아내는 매번 아주 편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이 상황에 잠을 자느냐”며 황당해 하지만, 아내는 “잠을 제대로 자야 걱정을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아내를 닮아 별로 걱정이 없다. 아무리 혼나도 바로 그때뿐이다. 돌아서면 바로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성적이 아무리 곤두박질쳐도 그때뿐이다. 우리 집의 모든 걱정은 매번 나만 한다. 그래서 항상 억울하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의 정신건강은 그 사람이 하는 걱정과 후회의 내용으로 판단할 수 있다. 특히 후회의 양상은 그 사람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인간은 항상 후회하며 산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는 어른들의 충고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틀려도 한참 틀린 이야기다. 후회 없는 삶이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어떤 방식이든 하게 되어 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主體的(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면 후회는 있을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은 후회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접했을 프루스트의 ‘두 갈래 길’이란 시는 끝없이 후회하며 사는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이 그렇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후회는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며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외부로부터 병균이 우리 몸에 침입했을 때 몸의 면역세포가 분주히 활동하여 몸의 건강을 지켜내는 것처럼, 후회는 정신적인 병이 들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지켜내는 심리적 免疫(면역)체계로 기능한다. 그래서 인간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만 한다.

문제는 어떤 후회를 하느냐는 것이다. 후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어떤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다. 대개는 아무 생각 없이 섣부르게 뛰어든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어떤 일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 흔히 하는 후회다. 그러나 이 두 후회가 미치는 심리학적 영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후회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닐 로즈 교수는 이란 책에서 이 두 가지 종류의 후회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로즈 교수에 따르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결정적 차이는 시간의 차이라는 것이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최근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 전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는 반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바로 끝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라는 사람은 교사임용고시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반면 B라는 사람은 교사임용고시의 높은 경쟁률에 지레 겁먹고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의 후회의 양상과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A나 B 모두 임용고시가 끝난 후 후회한다. 그러나 A는 얼마 후, 자신은 교사 체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교사가 되는 것보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를 침을 튀겨 가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B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아니면 평생토록 후회하게 된다. “그때, 그 임용고시를 봤어야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에 비해 심리적 면역체계가 훨씬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이야기다. ‘하지 않은 행동’에 비해 ‘행한 행동’이 훨씬 더 쉽게 합리화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하지 않은 행동’에 비해 ‘행한 행동’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다. 만약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 결과가 신통치 않게 나왔다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결국 그 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별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 버린다.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그리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주의집중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가 정신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는 이야기다.

 

 



후회의 내용이 다르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 버리는 것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학적으로 훨씬 건강하다는 이야기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은 반드시 오래, 아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한결같이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결혼하고 후회하는 것이 결혼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내가 내 아내에 비해 결정이 느리고 후회가 긴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으로 여자에 비해 남자의 후회가 훨씬 더 오래가며,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흔히들 남자가 여자에 비해 첫사랑을 못 잊고 훨씬 더 오래 괴로워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통념이 심리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이 흔히 하는 후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학업과 직업과 같은 ‘자기계발’과 관련된 후회와 ‘인간관계’에 관한 후회. 남녀 모두 ‘자기계발’과 관련된 후회를 제일 많이 한다.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 직장에 갔어야 했는데…’ 등등.

‘자기계발’과 관련되어 남녀의 차이는 그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관계’와 관련한 후회에서는 남녀 간에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난다. 남자들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를 훨씬 더 많이 하는 반면, 여자들은 이미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훨씬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남자들은 “그때, 내가 좀더 용기 내어 접근했어야 했는데…”와 같은 후회를 하는 반면, 여자들은 “그때, 내가 그렇게 쉽게 응하는 것이 아니었는데…”와 같은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性(성)관계에 관해서도 그렇다. 남자들은 “그때, 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질 걸…” 하는 후회를 주로 하는 반면, 여자들은 “그 남자와 좀 더 있다가 관계를 가질 걸…” 하는 후회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가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그때 그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여자들의 후회는 그래서 짧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보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스트레스 상황에 훨씬 더 적응하고, 남자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후회라면 짧게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걱정한다면 일단 저지르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2009년 한 해 모두들 많은 계획을 세운다. 한번 세운 계획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이키가 옳다.

 

       Just do it!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나는 가끔 내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 아주 가끔. 그러나 그때, 그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과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출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의 저자 명지대 심리학과 김정운 교수의 강의에서>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이라고 하니  이 여인이 떠올라 한 꼭지 더 붙여봅니다

 

19세에 모델로 데뷔한 칼라 브루니(Carla Bruni)는 사실 어렸을 적부터 싱어-송라이터를 꿈꿔왔다. 영화 [패션쇼]와 [언지프(Unzipped)]에 출연했으며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던 칼라 브루니는
이탈리아의 거대 타이어 제조사 CEAT의 상속녀이기도 하다.


기업가이자 클래식 작곡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겼으며
스위스의 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카메라맨이었던 오빠의 여자친구를 통해 어린나이에 모델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게스의 설립자 폴 마르시아노(Paul Marciano)에게 발탁되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다.
칼라 브루니는 사진촬영과 런웨이에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데
프라다, 샤넬,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와 함께 일하면서 연 75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가장 소득이 높은 패션 모델 탑 20에 랭크되기도 한다.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 옹호론자인 칼라 브루니는
믹 재거(Mick Jagger)와 제리 홀(Jerry Hall) 커플, 그리고 도날드 트럼프(Donald Trump)와 말라 메이플스(Marla Maples) 커플을 파경으로 몰고 가기도 했는데,


급기야는 프랑스의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와 3개월간의 데이트 이후
엘리제 성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녀는 타임지에서 '핵폭탄의 힘을 가진 남자'를 원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는 프랑스 최고의 권력자를 쟁취했다.

 

 


 

 

      사르코지의 굴욕사진(발들고 있음)

 

근위병 무릎 꺽는 사진

 

당시 브루니 여사는 사르코지 대통령과 함께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리 타니 국왕과 셰이하 모자 빈트 나세르 알 미스네드 왕비를 맞이하는 공식 환영행사 후 (헥헥.. 길다...) 국빈 만찬장으로 입장하기 전 뒤를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는데요~ 그 때 엘리제궁 옆에 도열한 근위병 중 한 명이 갑자기 무릎을 꺾고 바닥에 앉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답니다. 바로 이 사진... "아! 퍼스트 레이디의 매력에는 근위병도 저항할 수 없구나" 이게 외국 신문에 제목이였다네요 ㅋㅋㅋㅋㅋ

 

 

1997년 무렵, 칼라 브루니는 패션일을 접고 음악에 전념한다.

앨범이 발매되기 이전에 온라인에서 딱 두시간 동안만 선공개 되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각 방송국은 이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르코지는 21일에 정식 발매되는 이 앨범의 출시를 위해
G8 정상회담 일정을 늦출 정도로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Le Ciel Dans Une Chambre - Carla Bruni

<방안의 하늘>  프랑스 영부인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삶의 여유 > 사색의 공간[감동·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러기 떼처럼...  (0) 2010.01.06
[스크랩] 아버지의 1시간  (0) 2009.12.17
담배있나...  (0) 2009.05.27
그곳에 부부가 있다  (0) 2009.05.22
기분좋게 삽시다 (퍼온글)  (0) 200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