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對馬島 づ しま.thusima)
여행일 2009.1.1718
흔히 '국경의 섬'이라 불리는 대마도를 1박2일로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작년 동서의 환갑을 맞이하여 가고자 하였으나 못가고, 이번에 동서의 생일을 맞이하여 가까운 가족끼리 함께 한 프로그램이다. 동서부부와 사위가족,고모,언니 그리고 우리 부부해서 도합 9명이 부산에서 가까운 대마도를
여객선을 이용하여 다녀왔다. 2007년 7월 부산에서 여객선을 이용한 대마도여행이 가능해 많은 사람들이 대마도를 찾았으나, 엔화에 대한 환율상승으로 한국 여행객이 최근에 많이 줄어 든 탓인지 운행 회수도 줄고 해서 국제여객선 터미널은 생각보다 그렇게 번잡하지 않았다. 등산복차림과 낚시도구를 맨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맑은 날이면 늘 보곤했던 섬인탓인가 해외여행이라는 생각보다는 부산 앞바다의 섬을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배를 타고 거제도를 찾았다가 배멀리로 고생했던 아픈 추억이 있었던 지라 , 비록 배멀미약은 먹었으나 내심 불안했었는데 다행히 배의 요동은 전혀 느끼질 못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휴 ㅎㅎㅎ
이번 일정은 대마도의 행정수도라고 할 수 있는 하대마에 위치한 이즈하라에 도착하여 관광을 하고 1박을 한 후, 쭈욱 올라가 상대마의 히다카츠로 해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일본본토 여행은 두 차례 하였으나 그 어느 곳 보다도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대마도. 그래서인지 대마도 여행은 역사탐방을 다녀온 기분이 든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일본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들의 사찰격인 신사관람을 빼고는 말이다.
이제 사진을 정리하며 여행의 감흥에 다시 빠져본다.
▣ 대마도의 개요
소속 | : |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시. |
면적 | : | 708㎢ (울릉도의 약 10배, 제주도의 약40%, 섬 전체 89%가 산림지대) |
거리 | : | 대마도에서 한국 부산까지 49.5㎞ (일본 후쿠오카까지 138㎞) |
인구 | : | 약 4만 2천(2004) |
대마도는 부산까지 49.5Km 일본 후쿠오카까지 138km이며, 본섬외에 107개의 작은 섬으로 되어있고, 그 중 5개섬이 유인도라 한다. 상대마 하대마 두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고 두개의 섬은 다리(만관교 :만제키바시)로 연결되어 있다. 남북 82km, 동서 18km로 가늘고 긴 모양의 섬. 복잡한 리아스식해안으로 연장길이가 915km이며 섬면적의 89%가 산림지형으로 울창한 산림이 해안까지 이어져 있다.
중심도시는 이즈하라[嚴原]이며 이곳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다. 섬 전체가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이고, 산지의 계곡들은 곡벽이 험준하다. 예로부터 한국과 대륙 사이의 중계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여 대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부산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한국과 관계가 깊었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 ·콩 등을 답례로 받는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자주 출몰하자,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유책 ·귀화정책 등을 쓰다가 세종 때에는 이종무 장군이 원정(遠征)에 나선 바 있으며, 1274년 1281년 두 차례 몽고군이 고려군과 함께 상륙한 기록이 있다.
뒤에 쓰시마도주(島主) 소[宗]씨의 간청으로 조선이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를 개항하자, 쓰시마는 에도[江戶]시대 말기까지 대(對)조선무역을 독점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 수군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으며, 러일전쟁시에는 일본의 전쟁영웅인 도고의 전략으로 상대마와 하대마를 가르는 운하를 개통하여 아소만의 지형을 이용한 쓰시마해전으로 대승을 거둬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된 곳이기도 하다. 도고가 기자들의 질문에 '영국의 넬슨제독과는 비교 할 수가 있으나, 중앙정부의 도움도 없이 모든 해전에서 승리를 한 조선의 이순신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대마도는 우리민족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섬이다. 12회에 걸쳐 일본에 문물을 전한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이 섬을 거쳐 지금의 동경인 에도로 들어 갔고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역을 노략질하던 왜구의 근거지로 수회에 걸쳐 조정에서 정벌에 나섰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마도에는 한국과 관련된 수많은 유적들이 분포돼 있다. 이같은 역사적인 중요성 때문에 대마도를 모르고는 일본을 이해할 수조차 없다고까지 말한다.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고 계단식 밭이 많으며 최근까지 화전 경작을 했다. 산촌에서는 숯 구이와 표고버섯 재배가 주업이었으나 지금은 조림이 이루어져 숲이 울창하다. 오징어 ·도미잡이와 전복 ·소라 ·성게 ·천연김 채취를 하고, 아소만에서는 진주조개 양식이 성하여 이곳의 진주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중심도시 이즈하라는 13세기 중엽 이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기까지 쓰시마를 지배해온 소씨[宗氏] 일족의 거성(居城)이 있던 곳으로 성터와 그 시주사인 보리사[菩提寺] 등이 남아 있다.
현재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최 서북단 군사 요충지이자 이끼섬과 더불어 일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일본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으나 젊은층은 본토로 빠져나가고 노령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고 한다.
인공림의 대부분은 쓰기(삼백나무)와 히노끼(측백나무)이며 이를 경제가치로 환산하면 일본 국민이 3년 동안 먹을 식량과 교환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붉은 색 도로가 대마도의 주도로이며 국도인 382번 도로이다. 이 남북을 잇는 이 도로도 1971년에 개통된 것이다. 그 이전의 교통은 모두 뱃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대마도인은 배와 함께 운명을 함께한 것이었다.
이 종관도로는 옛날의 사신로(使臣路)였다. 조선통신사가 지나던 길이다. 이 길 주위로 작은 관청들이 있었다.
북단인 하타카츠에서 이즈하라까지는 50km-60km의 속도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제한 속도가 60km이며 구간에 따라 40km인 곳도 많다. 길이 좁고 구비가 많으므로 속력을 더 낼 수도 없으며 도로가 2차선으로 된 곳은 사정이 아주 좋은 편이나 대부분의 도로가 일차선인데 그래도 용하게 마주 오는 차를 잘 피해다닌다. 때로는 좁은 길에서 서로 마주치면 후진하여 대피하였다가 다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 대마도 탐방 (첫째날)
▲ 우리를 실어 나른 드림플라워호. 부산에서 이즈하라까지 2시간 20분 소요. |
2007년 7월14일 대아고속해운이 항로를 개설함으로써 순조 11년(1811년) 마지막 12회째의 조선통신사 일행 500명이 다녀간 이후 188년만에 대규모 관광객이 발을 내딛었고 등산객, 낚시꾼 등 특히 여름철에 여행을 하는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으나 최근 환율상승으로 그 수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한다. 대마도여행은 요일별로 여행비가 차이가 난다. 요일에
따라 도착항구와 출발항구가 다르므로 잘 파악하고 떠나야 한다.
▲ 선실안에 있는 자그마한 면세점. 이 곳에서 에쎄 한 줄을 샀다. (15,000원)이니 일단 만원 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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