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유익하고 재미난 스크랩

고리국(3)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9. 21:18

앞의 지도 다시 참조한다.
노란 색칠 한 부분이 북부여 또는 고리국이 있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아마르 강은 흑룡강의 러시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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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 기록은 고리국 또는 북부여를 대체로 서주시기
(BC12 - BC 8세기)경 이미 이 지역에 이주해 와서

백금보 문명이라는 한 미니 문명을 만든 부족으로 보기도 한다.


하여튼 부여와 고구려가 있기 전 몽골족가 헤어진 고리국이

씨족, 또는 부족 국가 형태로서 흑룡강 중류와 상류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북한이 말한 지역도 여기에 속한다.


후세에 이곳은 고리국이거나 북부여( 광개토대왕비)라고

부른 지역이 되었다.


(여기서 중국 역사학계에서 이곳이 탁발, 또는 실위 족이라고 불리는

족속이 살았다는 것은 너무 복잡해지므로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대흥안령과 외흥안령 사이에는 아주 내왕하기 좋은 저지대로서

흑룡강의 중류가 흘러 지나가는 지역이다.

보이른 호수쪽뿐만 아니라 흑룡강 연안에 따라 살았던

코리족이 이 이동하기 좋은 지역을 따라 남하했을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인 민족 이동로이기도 하다.

즉 몽골지역에 살던 부족들이 옛 만주 지역으로 들어설
또 다른
대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몽골족과 갈라진 코리족이 통과하거나 거주했던

지역일 수가 있다.

주채혁 교수는 이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한민족의 이동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문가이신 두 교수 분들의 저서에서 인용한 학설을

소개하였다.


다시 내 나름대로 다른 여러 저서에서 수집한 정보로 보완하여
한 번 정리해본다.


식량 확보 수단이 결정한 두 민족의 진로.


나는 여기서 보이르 호 연안에 사는 오늘날의 몽골족들이
양이 아니라
소를 키운다는 설에 관심을 둔다.

한민족이나 몽골족은 바이칼 호수 남안에서 살다가 신석기 때인

1만 3천년전에 남하하는 민족 이동을 시작하여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바이칼은 코리족 활동 무대의 북서쪽 방향에 있다.

이 남하한 민족들은 몽골족이니 코리족이니 하고 구별이 없이
몇 천 년
동안 지금 몽골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살길을 찾아
더 멀리 흩어지고 분리돼 살면서 점점 분화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는 코리족이 몽골족과 헤어져 흑룡강이나 구 만주 쪽으로
이동한 이유를
당시의 먹는 문제와 결부시켜 봐야 한다고 본다.


목축을 전문으로 했던 종족인 몽골족은 더 목축하기 좋은 몽골

초원 쪽으로 이미 흩어져 들어갔을 것이다.
코리족은 가장 동쪽의 몽골족과 같이 있다가 동쪽
구 만주쪽으로 더 이동해 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바이칼 호수에서 남진한 몽골계의 민족중에 최고로
동진한 부족이 코리족이다.]


그 때 이 맥족 또는 코리족이라고 부르던 종족은 수렵과 채집
그리고 내륙 민족
답지 않게 어업으로 먹고 살았었다.

( 어업은 나중에 흑룡강 연안에 살던 흑수 말갈들이 이어 받는다)


흑룡강은 이동하기 좋은 교통로 였었고 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사는
식량의 보고이다.

평소에는 이동에 작은 보트를 썼을 것이고 겨울에는 결빙한 강위로

썰매를 이용했을 것이다.

러시아 민족의 시베리아 개발사를 읽어보면 겨울의 결빙한 강처럼

더 좋은 고속도로는 시베리아에 없었다.


[이때 코리 족은 이동이나 어업에 동물의 기름으로 방수처리를
한 가죽 보트나 북미 인디언들이 썼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카누 비슷한 것이 이용된 듯하다.-이런 형의 보트가 세종이 파저강
유역의 여진을 토벌한 기록인 서정록에 묘사되어 있다.-]

이래저래 지리적으로 이동이 편리한 흑룡강 양안으로
인구가 퍼지게 된 구조였다.


더구나 수렵민족이라면 흥안령이라는 동물의 낙원에도

또 관심을 가졌다고 본다.

흥안령은 남북 1,500키로의 긴 산맥이지만 평균 높이가
1,0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산세가 완만하다가 해야 할까 ?

알프스처럼 험하지도 않고 히말라야처럼 높지도 않다.

도처에 지나가기 좋은 고갯길이 있었을 것이다.

산을 넘어서 반대편 구 만주 평야로 나가는 것은

하루 길도 되지 않는다.


흥안령 산록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알아 주는 야생의 천국이었다.

산맥 양 산록에는 동물들이 시글시글한 천연의 엽장들이 있었다.


이 두 흡인력있는 요소가 코리족이 몽골족과 흩어져서
몽골 초원이 아닌
구 만주 쪽으로 더 동진하여 이동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대흥안령 북단 대백산- 단군이 내려왔다는 태백산과
이름이 비슷한 것이 어쩐지 호기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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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 흥안령 넘어 흑룡강과 그 아래 눈 강 사이에 점점 모여든
코리족은 씨족 또는 부족 국가를 꾸렸고 인구도 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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