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Willem Drost(獨,1630-1680) ◈ Bathsheba(1654)
천하의 악녀가 아니라면 그토록 현명하고 위대한 왕이 이성을 잃고
욕망의 포로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남자의 부정에는 한없이 관대한 화가들 덕분에
다윗은 요부의 유혹에 빠져 명예를 더럽힌 희생자로
격상되고 밧세바는 악녀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그림]Hans Memling(和,1435-1494) ◈ Bathsheba(1485)
한스 멤링의 그림을 보면 밧세바를 희대의 요부로부각시킨
화가들의 의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목욕을 끝마친 밧세바가 욕통의 커튼을 젖히고
한쪽 발을 내밀며 나오는 중이다. 욕의를 걸치고
욕조 밖으로 나오는 밧세바의 매혹적인 나체는
고딕식 누드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은 유방, 긴 허리, 볼록한 복부, 가녀린 몸매가
더없이 색정을 자극한다.
멤링 이전의 화가들은 여인의 누드를 그릴 때
관능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성별을 구별하기 힘든 몸매에 간신히 유방의 형태만
묘사하여 겨우 여성임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이처럼 누드를 에로틱하지 않게 표현한 것은 행여 남성들이
음욕에 빠져 신앙심을 버리고 타락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림]Mossa, Gustave Adolphe(佛,1883-1971) ◈ David and Bathsheba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인 모사는 밧세바의 요부 이미지를
드러내 놓고 표현했다. 또 그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다윗 왕을
욕정에 불타는 늙은 호색한으로 묘사했다.
잔뜩 멋을 부린 다윗왕이 밧세바의 손을 잡고 유혹을 한다.
긴 매부리코와 게슴츠레한 눈빛은 다윗이 여색을
유난히 밝히는 노인임을 나타낸다.
화사한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밧세바의 몸에서는 역
겨운 매춘부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 나온다.
밧세바가 음탕한 창부라는 사실은 요란하게
치장한 옷차림과 장신구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큼직한 보석이 달린 목걸이는 그녀가 몸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것임에 틀림없고 앞가슴을 장식한 만개한 꽃은
성적 상징을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배경에는 음탕한 남녀의 수작을 알 리 없는 가엾은 우리야가
용감하게 전쟁터로 말을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화가는 부정한 남녀와 무고한 희생자를 대비시켜
두 남녀의 불륜이 가장 사악한 행위임을 폭로했다.
밧세바는 왕이 나타나는 시간을 계산해 목욕을 하고,
관음증을 교묘하게 이용해 남자를 유혹했으며
고귀한 남자의 이성을 짓밟고 명예를 더럽힌 죄로
요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림]Rembrandt van Rijn(獨,1606-1669) ◈ Bathsheba at Her Bath(1654)
렘브란트는 이전의 밧세바와는 사뭇 다르게 표현 되었다.
한 손에는 다윗의 아내가 되라는 내용의 편지를 들고 있다.
밧세바는 고아한 얼굴과 풍만한 육체를 가졌다.
그녀의 몸은 어두운 화면 속에서 황금빛으로 환하게 드러나 있다.
얼굴에는 비극적 운명을 두려워하는 우수가 깃들어 있으며
사악한 요부에서 고뇌하는 정숙한 여인으로 촛점이 바뀌어져
그녀의 심리 상태를 가늠해 보도록 한다.
화면 아래에 무표정한 늙은 하녀는 그녀의 발을 닦아주고 있다.
엉덩이 밑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 천이 펼쳐져 있다.
구도는 고대의 부조(浮彫) 작품을 묘사한 동판화에서 빌어온 것이며,
렘브란트의 독특한 명암대비법인 키아로스쿠로(kiaroscuro)를 사용하여 그렸다.
빛과 그림자의 대조로 극적인 밧세바를 표출한다.
렘브란트는 이 여인의 누드를 통해 감성을 사색으로 바꾼다.
이 그림에는 복잡한 뒷 얘기 역시 중요한 듯 하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렘브란트는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골치를 �고 있었다.
이 그림의 모델인 헨드리케는 교회 평의회에서 여러 번의 경고와
파문에 가까운 중징계를 받았는데 죄명은< 화가 렘브란트와 간통을 해
종교적 , 윤리적으로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렘브란트는 부인을 놔두고 젊은 여인과 불륜을 저지른건가.
그건 아니다. 당시 부인 사스키아와는 사별한 상태이고 아들의 유모인
헤르트헤 디르크스라는 여인과 동거 중이었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사스키아를 안 후로는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로 기울었고 헤르트헤는 분한 마음에 렘브란트
혼음빙자간음죄로 고발하는 일까지 생긴다.
이런 일에까지 헨드리케는 법정 대리인으로 출두해
렘브란트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무성한 비난에
휩싸이면서도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램브란트가 결혼한 여인 사스키아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꽤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왔다. 그녀가 죽을 당시 남편에게
상당한 유산을 남겨주었지만 이는 재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였다.
낭비벽이 심한 렘브란트로서는 유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헨드리케는 이를 이해해 주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밧세바의 표정에 렘브란트의 연민과 회한이 녹아들어 있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종교적 권위와 횡포를,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다윗의 작태로 비유해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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