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막내아들넘이 학교에서 2박3일간 수련회를 떠나
이 때가 엄마들에게는 방학이란다. ㅋㅋㅋ
큰 딸내미랑 작당한 꼬임에 빠져 순천으로 당일 여행을 떠났다.
작년 여름휴가때 마지막코스로 넣었으나 비가와서 그냥 돌아온 코스이다.
● 코스 :부산출발-->조계산선암사--->낙안민속마을--->조계산송광사
● 언제 :2005년 4월 28일(목)
● 위 치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 802번지
● 홈페이지 : www.seonamsa.co.kr
조계산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에 있으며, 백제 성왕(聖王) 7년(529年)에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청량산 비로암이라 하였다. 신라 경문왕(景文王) 원년(861年)에 도선국사 (道詵國師)가 이곳에 대가람을 일으켜 선암사(仙巖寺)라 이름하고 호남의 3암사중 수찰(首刹)을 삼아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던 고찰이다.
선암사 가람의 특징은 삼무(三無)가 없다는 것이다.
800년 전통을 지닌 자생다원, 송광사에서 선암사를잇는 조계산 등산로, 수정같은 계곡수, 울창한 수목과 가을단풍은 머물고 간 사람만이 만끽하는 감미로움이다.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어 선암사라 이름붙여 졌다하는데 신선이 내려올 만큼 풍광이 좋다. 봄에 가면 온갖 봄꽃들이 경내를 뒤덮고 있으며, 선암사는영화 '동승'과 '취화선'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선암사는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의로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
-선암사 일주문-
-경내는 꽃들이 만발하여 절집구경보다는 꽃구경이 좋은 때다-
-철쭉들의 잔치속으로 -
-철쭉과 나-
-딸내미가 팔짱을 끼고~ 얼매만이지? -
-不二門아래에서-
-누운 소나무 얕은 담장에서. -
-선암사끝문 -
- 깊이를 알 수 없는 선암사 뒷ㅅ간-
-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승선교-
선암사아래로 내려오다가 산나물 보리밥집이 눈에 띄어 점심을 해결
하였으나, 여러가지 나물중 스님네들이 즐겨 드신다는 '고소나물'은
그 맛과 향이 특이하여 먹기가 거북하였다. 다음부터는 확인하고 먹어야지-_-;;
송광사의 3가지 명물 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1742년 남원 세 전골에 있었던 큰 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 로 쌀 7가마분(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그릇인 능견난사는 크기와 형태가 일정한 수공예품으로 그 정교함이 돋보인다. 두 그루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쌍향수란 이름이 붙었는데, 나무 전체가 엿가락 처럼 꼬였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과 당나라 담당왕자가 송광 사 천자암에 이르러,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가지가 나고 잎이 피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12m, 수령 800년으로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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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불보종찰인 '양산통도사', 법보종찰인 '합천해인사' 는 그동안 여러번 다녔으나
승보종찰인 '순천송광사'를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여 더욱뜻깊은 여행이었다.
- 물위를 걸어 경내로들어가는 입구가 특이하다-
-입구에서 모녀간에-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입구에 있는 건물지붕위의 바람통풍구.지붕위의 지붕?-
-초파일이 다가옴을 느끼기에 충분한 연못위의 연등-
-담장의 덩쿨과 철쭉이 아름답다-
- 보조국사 감로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
-감로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모녀가-
-감로탑에서 송광사경내를 배경으로-
-감로탑에서 경내를 배경으로-
-감로탑에서 내려다본 송광사경내-
-송광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적광전 구산선문-
낙안읍성 민속마을 홈페이지 : http://www.nagan.or.kr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東軒), 객사(客舍),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되었다. 다른지역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 길이가 1천4백10m로 동내,남내,서내등 4만1천평에달하는 3개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안은 듯 네모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숨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문을 비롯 서,남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져들며 용인,제주민속마을 같이 전시용이나 안동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순천시가지에서 서쪽22㎞거리의 읍성민속마을은 6만8천여평으로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토방, 지붕,섬돌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켠의 절구통마저도 옛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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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으로 가는 가로수길-
-낙안읍성앞 신랑각시나무조각-
-민속마을입구에 서있는 여러모양의 장승들-
-장승앞에서 -
-큰딸내미 소원이-
-유채꽃앞에서-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에서 쉬어가며 담은 사진들...
-부부화합탑이라나 모라나 (섬진강휴게소)-
200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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