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를 맞아 2월12일(토) . 동서내외랑 함께 경북안동시 봉정사를 찾았다.
엘리자베스영국여왕이 방문한 이후 관광객이 갑자기 느는 바람에 유료화가 된 곳이기도 한 고찰이다.
[봉정사 전경]
안동 서북방 16km 지점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에 위치하며 신라 문무왕 12년(672) 능인대덕이 창건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천등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이사찰은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봉이
이곳에 내려 앉아 여기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극락전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창건한 후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일주문을 지나 양가로 촘촘히 늘어선 나무숲을 지나면, 경건함으로 가득찬 오래된 사찰이 눈앞에 나타난다.
사찰내에는 1972년 해체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로 확인된 극락전과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등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에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극락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건립한 아담한 모양의 삼층석탑이 있고 덕휘루,요사 등의 건물이 있으며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동승"의 촬영지인 영선암이 바로 이곳 봉정사내에 자리잡고 있다.
[만세루앞에서:이모부/이모/집사람/민아]
봉정사경내로 들어가는 만세루는 부석사를 연상케 한다.
[만세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만세루 법고]
치지는 않고 폼만 잡았다. ㅎㅎㅎ
[봉정사 극락전:자료사진]
고려 12,3세기경(1363년 중건), 정면 3간 측면 4간, 주심포계 맞배지붕, 국보 제15호,1972년 수리 때 상량문 발견,
1363(공민왕 12)년에 중건. 학계에서는 12세기 말이나 13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
단청은 매우 고형이고 색조도 장중. 흙벽에는 본래 벽화가 있었으나.
1972년 수리 때 벽화는 분리되었고, 외부 단청은 개칠하였다고 한다.
[봉정사 석조여래좌상]
통일 신라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원래 안정사에 모셔져 있던 돌 부처님을
안동댐으로 수몰되면서 이곳 봉정사 대웅전 곁에 모시게 되었다 한다.
[봉정사영산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촬영지]
영산암은 몇해 전에 우리 영화계에 각광을 받은 바 있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촬영한 장소가 되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비상한 주목을 받은 곳이다.
이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외된 삶의 추한 모습들과 세속에 맞부딪치면서
처절하리 만치 좌절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도
참된 삶의 실체는 시대 상황의 다양한 변수에도 불구하고 역시 불교의 고전적인 해답에
그 실마리가 있다는 것을 뛰어난 영상미로 암시적으로 보여준 영화이다.
또한 최근작인 '동승'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봉정사 영산암]
만세루와 마찬가지로 'ㅁ'자 입구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경건한 마음으로...
[봉정사 영산암출입구 우화루]
우화루(雨花樓) - 영산암 들어가는 문, 우화(雨花)는 꽃비라는 뜻이다.
편액인 우화루는 석가모니께서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실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낡고 퇴락한 암자와 빼어난 자연경관의 조화 속에
노승의 초췌하리만치 비장한 불도의 엄숙함과 진실성을 빼어난 영상미와 절제된 언어로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도대체 어느 장소에서 찍었기에 저토록 훌륭한 영상미를 살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는데 그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영산암이다.
엘리자베스여왕도 이 영화를 보고 이 곳을 찾았다 한다.
[영산암에서]
고무신 두짝이 하나는 바로, 또 하나는 뒤집어져 있다.
주지스님과 동승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일반인들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고 이해하고 느끼는데 많은 도움을 준 유흥준 교수는 이 책 3권에서 봉정사 영산암 마당의 멋스러움 을 건축가 승효상이 『내 마음 속의 문화유산 셋』이라는 문화칼럼에 연재한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여 있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르며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언어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 유산인 것이다. "
또한 그는 "봉정사가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마당 즉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을 통하여 한옥의 멋스러움을 마당을 통하여 느끼게 해 준다"고 하였다.
[자료사진]
안동 봉정사 영산전 벽화 :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 모습
(문짝위에 걸려 있는 것)
'쉬엄쉬엄 여행의 추억 > 국내여행·마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5년 5월] 소원이 필리핀 떠나든 날 서울에서 ... (0) | 2008.11.06 |
---|---|
[2005년 4월] 전남 순천 여행(선암사/송광사) (0) | 2008.11.03 |
[2004년 11월] 주말 나들이-기장 '숲속 아뜨리에' (0) | 2008.10.30 |
[2004년 11월] 천성산 내원사 (0) | 2008.10.29 |
2[004년 10월] 마지막 주말산행-해운대 장산 (0) | 2008.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