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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주검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3. 11:42
[그림]Jacques-Louis David(佛,1748∼1825) ◈ The Death of Marat (1793)
 
 
      
      욕조 속에서 피살된 쟈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는 터번처럼 생긴 수건을 두르고 있고 욕조 밖으로 
      늘어뜨려진 손은 펜을 쥐고 있다. 
      흰색과 청색 사이에 마라가 피를 흘리며 절명해 있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적이다. 
      어디선가 레퀴엠이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를 찌른 칼은 화면 아래쪽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그 그림을 모사해보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라의 표정이다. 
      내가 그린 마라는 너무 편안해 보여서 문제다. 
      다비드의 마라에게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의 억울함도, 
      세상 번뇌에서 벗어난 자의 후련함도 보이지 않는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의시선은 가장 먼저 마라의 얼굴에 머문다. 
      표정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선은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 팔에 들려진 편지로 시선이 옮겨지거나 아니면
      욕조 밖으로 비어져나와 늘어진 다른 팔을 따라간다. 
      죽은 마라는 편지와 펜, 이 사물을 끝가지 놓치지 않고 있다. 
      거짓 편지를 핑계로 접근한 테러리스트에세 살해된 마라는 
      답장을 스려다 살해되었다.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한다. 
      다비드는 멋지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마라를 죽인 샬롯 코데이라는 여자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롱드 당의 청년 당원이었던 샬롯 코데이는 
      자코뱅의 마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고짓 편지를 미끼로 접근, 
      목욕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1793년 7월 13일의 일이었고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사건 직후 체포된 확실범 코데이는 나흘 만인 7월 17일 목이 잘렸다. 
      자코뱅 당의 거두였던 마라가 죽은 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다비드는 자코뱅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을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지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공포를 창출하는 자는 초연해야 한다. 
      자신이 유포한 공포의 에너지가 종국엔 그 자신마저 
      집어살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렸다. 
      출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그림]Joseph Roques(Belgium,1847-1927) ◈ The Assassination of Marat (1793)
      
      앵그르와 더불어 신고전주의의 대표작가인 다비드는
      자코방당 당원으로서 프랑스 혁명 운동에 적극참여하였으며, 
      나폴레옹의 궁정화가가 되어 <나폴레옹의 대관식>등 
      영웅을 찬탄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 
      그의 역사화는 훌륭한 구도와 견고한 수법을 보여준 반면 
      인물의 표정이 냉정하여 정감이 결여 되었다는 평이 있다. 
      이러한 다비드에게 프랑스 혁명은 애국적인 소재를 다루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그의 예술은 국가적 영웅이나 역사적 사건을 영원히 남기는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비드는 직접 프랑스 혁명의회에 가담해 활동했으며,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하는 투표도 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소개가 되어 있듯이 
      다비드의 이러한 면모를 보여 준다. 
      
      시민 여러분, 사람들은 나의 작품에서 그들의 친우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다비드, 붓을 들어 마라의 원수를 갚으시오. 
      죽음으로 변모된 마라의 얼굴을 보고 
      원수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되도록 하시오>라고 권고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1793년 7월 13일 마라의 암살 소식이 전해지자 회의 중이었던 다비드는 
      작업실로 들어가 이 그림의 제작에 착수했고 같은 해 10월 14일 완성하여 
      위에서처럼 작품을 소개했던 것이다. 악성 피부병 때문에 목욕하면서 
      집무(執務)하던 마라에게 거짓의 자기 소개서를 갖고 25세의 여인, 
      샬롯 코데이가 찾아와 그를 칼로 찔러 죽였던 것이다. 
      죽은 그의 손에는 아직도 그 자기 소개서가 쥐여 있고 
      다음과 같은 그 내용의 글까지 뚜렷이 보인다.
      「1793년 7월 13일 동지 마라에게 마리안 샬롯 코데이.
       나의 불행은 당신의 호의를 필요로 합니다.」
       
      사실 마라는 혁명을 통해 대중의 벗이었지만 반면 
      많은 사람들의 처형을 감행시킨 주동적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암살은 극화(極化)된 양측으로부터 서로 다른 반응을 일으켰다. 
      다비드는 이 마라의 죽음을 자기 나름의 안목에서 해석하여 
      불멸의 명작으로 남겨 놓았다. 
      
[그림]Jean Joseph Weerts(佛,1757-1847) ◈ Death of Marat(1793)
      
      다비드의 걸작 <마라의 죽음>은 드로잉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3점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비문처럼 새겨진 나무상자에 A Marat 라고 씌여진 작품은 
      브뤼셀 왕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한점은 루브르 미술관에, 
      그리고 나머지 한 점은 랭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0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