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Working together

동양사상으로 풀어보는 경영혁신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19. 00:37

경영혁신에 성공한 기업을 살펴보면 부분보다는 전체를 중시하는 관점을 지니며, 실천을 강조하는 등 동양사상의 특징이 절묘하게 접목되어 있다. 기업간 세계적인 경쟁이 거세지는 현 상황에서 서구의 어떤 기업들도 모방할 수 없는 경쟁우위는 우리의 문화에 기반한 경영혁신 모델을 설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기업간 무한 경쟁이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금, 새삼스럽게 경영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저마다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신에게 맞는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혁신에 성공한 기업을 찾아 다니고 있다. GE에서 6시그마를 배우고, 도요타에 가서 JIT 시스템을 벤치마킹한다.  
 
특히 한국기업의 경우 서구의 경영혁신 기법을 도입하는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간 미국과 한국에서 일어났던 혁신 기법에 대한 논의를 보더라도
, 서구에서 유행한 경영혁신 기법은 1, 2년의 차이를 두고 우리 기업에 도입되어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참조).  
 
그러나 국내의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서구의 경영혁신 방법론을 도입한 기업 중 70% 정도가 애초에 기대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의 현실과 한국적 기업문화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자신의 환경에 잘 맞는 방법론을 도입하거나 개발하여 실행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영혁신을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서 다시금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영혁신에 성공한  국내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동양사상의 특징과 접목된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는 사실이다. 동양사상은 한국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한국문화는 우리 기업문화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혁신 성공기업과 동양사상의 특징이 유사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매우 반가운 메시지이다. 
 
여기에서는 경영혁신에 성공하는 기업의 특징과 동양사상을 비교해 보고(<표> 참조), 우리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고찰해 보기로 한다. 
  
  
● 부분보다 전체를 보라 
 
우선 혁신 기업의 대표적인 특징은 전체를 살피는 시각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들은 혁신활동을 부분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마케팅 부문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마케팅 부문만 해결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실행하는 큰 틀에서 혁신활동을 본다. 
 
서양의학과 대비되는 동양의학의 특징도 이와 비슷하다. 가령 서양의학은 폐에 이상이 생기면 폐를 수술하는 등의 방법을 쓰는데, 한의학은 심장의 이상이 폐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심장에 대한 처방을 한다. 불(火)에 해당하는 심장이 쇠(金)의 특성인 폐를 약하게(克) 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인체의 부분을 고치지만 동양의학은 인체 전체를 종합적으로 치료한다.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신체의 일부분이 허약한 것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강인한 것도 질병으로 본다. 강한 부분이 다른 곳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의 관점에서 부족한 것은 보충(補)하게 하고 넘치는 것은 약(瀉)하게 하는 보사법(補瀉法)이 한의학 처방의 기본이다. 
 
경영혁신을 하는데 있어서도 서양의 외과 수술적인 부분 치유 방식이 먹히지 않는 것은 현대 기업의 경영 시스템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의 한 부분이 다른 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두더지 때리기 게임에서 이쪽을 때리면 저쪽에서 머리가 올라오는 것처럼, 물류를 빠르게 가져가면 고객 서비스에 나쁜 영향이 가고, 생산 효율화가 구매 기능을 악화시킨다. 따라서 혁신활동이 전체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LG전자 창원 공장은 지속적인 경영혁신으로 커다란 성과를 낸 사례로 인정 받고 있다. 이 회사의 경영혁신 사상 중에 ‘주먹밥식 사고로 한방에 끝내자’, ‘큰 덩치를 잡아라’ 같은 문구가 있다. 주먹밥식 사고는 혁신활동이 비즈니스 시스템의 여러 문제를 동시에 처리해야 함을 뜻한다. 또 큰 덩치를 잡으라는 것은 혁신이 전체의 관점에서 사업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라 
 
혁신활동을 잘하고 있는 기업에 가서 비결을 물으면 하나 같이 CEO가 회사를 오랫동안 맡아온 것을 꼽는다. 물론 CEO가 오랜 기간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재임기간이 길수록 성과가 높은 것은 일관된 전략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한 CEO는 자신의 경영 철학과 스타일에 맞추어 미션을 새로이 부여하고,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 그 과정에서 종업원들은 얼마 동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전략이 실행되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힘의 축적이 필요하다. 회사의 방향을 모든 종업원들이 공유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관된 가치체계를 지니고 있는 동양사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양사상에는 음양오행설이라는 일관된 철학적 기풍이 흐른다. 중국 고전을 보면 천문을 보고 인간의 운세를 점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끈이 바로 음양오행사상이다. 따라서 천문학의 원리는 그대로 한의학에 적용된다. 하늘에도 기(氣)가 흐르지만 인체에도 기가 흐른다. 동양의 가치체계는 모두 연결되어 동일한 규칙이 적용된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이처럼 동일한 가치체계(전략)를 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년 한해 매출 277억, 영업이익 50억을 달성한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가 현재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회사 설립 후 일관된 가치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끊임 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다. 회사 설립 당시부터 일반인들에게는 무료로 백신을 나눠주는 대신 기업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벤처기업 중에서는 드물게 매출액의 30% 정도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다. 1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던 설립 초기인 97년, 세계적 백신업체인 미국 맥아피사로부터 1천만달러의 인수 제의를 거절한 것도 이러한 기업 이념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관된 모습이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브랜드 가치를 올렸으며,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자기 환경에 맞게 적용하라 
 
혁신의 실행 과정에서 벤치마킹은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앞서가는 기업을 찾아가 경영 기법 등을 배워 온다. 또 컨설팅 회사에서 혁신 기법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런데 경영은 기업이 처한 사회와 문화, 조직구성원의 성향 등 제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성공기업의 경영 스타일은 그 기업의 상황에 맞게 진화된 것이다. 이 사실을 경시하면 실패한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무비판적으로 도요타를 벤치마킹하다 실패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자기 환경에 맞도록 벤치마킹하는 것도 동양사상의 특징에서 배울 수 있다. 동양에서 학문은 원전에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성서의 연구가 그러한 것처럼 동양학문은 논어, 맹자 등의 고전을 주희(朱熹)와 같은 후세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맞게 해석하는 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과거 서당에서의 학습도 주로 고전을 반복하여 따라 읽고 써보는 학습법을 취했던 것이다. 이러한 반복의 과정에서 현실에 적용되는 지혜를 깨우치게 된다. 마치 예술가들이 스승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다가 결국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게 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혁신 성공기업의 경우 서구의 경영 기법을 저마다 자신의 경영 환경에 맞게 능동적으로 도입하거나 재창조한 것을 알 수 있다. LG전자 창원 공장의 사례를 보자. LG전자는 90년대 중반 GE에서 6시그마를 배워왔다. 처음에는 GE에서 실행되는 모든 프로세스를 하나도 빠짐 없이 이행했으나, 지금은 두 회사의 6시그마 기법을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초기에 팀웍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삽입하는 등 한국의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정착시킨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경우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전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이 유행이었던 90년대 말에 이 회사는 4조 2교대 방식으로 오히려 직원을 늘렸다. 이것은 4일 주간근무 후 3일 휴식, 1일 교육, 다시 4일 야간근무 후 4일 휴식의 총 16일 단위의 순환근무 방식이다. 근로자들은 근무량은 같지만 7일을 쉴 수 있어 만족해 했다. 또 회사로서도 많은 교육 시간을 확보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제 이런 순환근무제는 유한킴벌리의 독특한 역량이 되어, 중국 등 해외에서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윗사람이 솔선수범하라 
 
초기에 경영혁신을 조직에 확산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경영진의 참여다. 경영진은 혁신의 성공에 대해 의심하는 조직원들에게 믿음을 준다. 그리고 현장을 돌며 활동에서 발생하는 장애를 제거한다. 대부분의 혁신활동을 추진하는 구성원들은 CEO가 자신의 혁신 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보고자료를 만들고 추진사항을 정리하는 등 번거로운 작업도 있지만, CEO가 오면 타부서의 협조를 받는 등 풀기 어려웠던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논어는 정치가에게 리더십의 덕목을 가르치는 문헌이다. 논어의 목적은 정치가로 하여금 백성에게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가를 경영자로 바꾸어 놓으면 논어는 그대로 경영학의 리더십 과목 교재가 된다. 이러한 논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동양사회는 윗사람이 부하보다 항상 앞장 서고 더 힘써야 하는 가치관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CEO가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경영혁신의 성공에 많은 도움이 된다.  
 
97년 장기간의 노사분규를 거쳐 파산 직전이었던 회사를 3년 만에 35%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도록 만들었던 한국전기초자의 혁신 사례를 살펴보자. 이 회사가 회생하게 된 이면에는 서두칠 사장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했다. 부임 당시 회사 내에는 불신풍조가 팽배했는데, 그는 스스로 운전기사를 없애고 공장에 상시 주재하며 골프회원권을 파는 등 모범을 보였다. 또 직원들에게 경영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심지어 사원 가족에게까지 경영 실태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고, 회사는 혁신에 성공하게 되었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최고경영자가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의 풍토에서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역할과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 공동체적 실천을 중시하라 
 
경영혁신은 소수의 전문가가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사의 대다수가 참여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몇 전문가의 분석 보고서보다는 구성원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중요하다. 혁신은 철저하게 아는 것(Knowing)이 아닌 실행(Doing)에 초점이 두어질 때 성공한다. 
 
자본주의 사상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연구했던 막스 베버는 기독교와 달리 현실을 초월한 신앙의 대상이 없었던 동양인들이 오히려 현세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사상은 관념적 인식보다는 실천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예로부터 두레, 계, 품앗이 등 협동에 근거한 자율 공동체적 실천이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공동체적 협동은 그 기저에 ‘신명’이라는 우리 민족의 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풍물놀이 같은 문화의 발달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고, 지난 월드컵 때 분출되었던 집단적인 힘도 그것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우리의 이러한 특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서구의 많은 유통업체가 한국에 들어와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삼성물산과 영국 1위의 소매업체 테스코가 출자한 삼성테스코의 사례는 이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성테스코는 서구의 합리주의적 가치관과 한국의 신바람 문화를 조화시켜 성공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이 회사의 이승한 사장은 일터를 놀이터로 만들어야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삼성테스코는 대리, 과장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등 중간층의 권한이 다른 업체보다 막강하다. 이러한 주인의식이 신바람을 불러온다고 회사는 설명한다. 이처럼 한국 문화에 맞는 현지화 덕택에 힘입어 현재 이마트와 더불어 할인점 업계에서 쌍두마차로 불리고 있다. 
  
  
우리 문화에 맞는 혁신을 할 때 
 
경영혁신을 하는데 있어 모범답안은 없다. 한 기업에서 성공한 방법이 다른 곳에 반드시 적용되라는 법은 없다. 사실 아무리 성과와 능률을 높일 수 있는 혁신 기법이라도 사회, 문화적 가치와 상충될 경우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서구 기업의 혁신이 프로세스에 중심을 둔다면, 우리 기업은 사람에게 초점을 두었을 때 성공한다. 두 사회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3M의 경우 종업원이 업무시간의 15%를 아무런 제약 없이 개인적인 아이디어 창출에 할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종업원과 경영자간 신뢰가 기반이 된다. 구성원들은 회사가 개인의 성장을 장려한다고 믿고 있으며, 회사 역시 종업원의 활동이 결국은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개인주의적 문화 풍토에서 보다 효과적이다. 계약적 관계가 발전한 서구 사회에서 보다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업은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에 어울리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적 우월주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업간 세계적인 경쟁이 거세지는 현 상황에서 서구의 어떤기업들도 모방할 수 없는 경쟁우위는 우리의 문화에 기반한 시스템을 설계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4.07.09 | 주간경제 7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