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경주 굴불사지 석불상/백율사
여행일 2008.7.27(日)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경주에 자주 오면서도 가지 않았던 북부문화권 지역을 찾았다. 오늘의 주 방문지는 양동마을. 가는 길에 굴불사터와 백율사에 들렀다.
◈ '굴불사지 석불상'
- 위 치 :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 보물 제121호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산인 소금강산(小金剛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四方佛)형태이다. 불상은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남쪽면에는 삼존입상(三尊立像)이, 북쪽면에는 보살상(菩薩像)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金鼓)에는 굴석사(堀石寺)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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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面像) 왼손에 약합을 들고 결과부좌를 한 약사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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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面像) 阿彌陀如來(아미타여래)와 別石(별석)으로 만든 左右脇侍菩薩(좌우협시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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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面像) 원래 三尊像(삼존상)으로 되었으나 後에 本尊(본존)과 바른쪽 菩薩像머리까지 없어졌다. |
◈ '백율사'
백률사는『삼국유사, 三國遺事』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法興王)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殉敎)한 이차돈(異次頓)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은 불국사(佛國寺)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金銅佛)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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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의 소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백율사는 찾는 사람이 적어 조용해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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