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봄의 전령사는 누가 머래도 꽃이 아닐까. 지난 꽃샘추위로 벚꽃은 아직 이르지만 하얀꽃들로 뒤덮힌 광양매화마을과 구례산수유마을을 찾았다.
▶ 매화축제: 3.17~3.25
▶ 산수유꽃축제: 3.15~3.18
오는 길에 구례화엄사와 하동 화개장터를 둘러오는 섬진강봄나들이는 참으로 상쾌한 여정이었다.
◈ 광양 매화마을을 찾아서
●위 치 :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매화마을
지리산 자락을 수놓으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면 매화나무가 지천으로 심어
져 있는 섬진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농가들은 산과 밭에 곡식 대신 모두 매화나무를 심어
매년 3월이 되면 하얗게 만개한 매화꽃이 마치 백설이 내린 듯, 또는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이곳의 맑고 온화한 강바람과 알맞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매실농사에 적합해서 수확량도 한 부락에서 연간 100톤이 넘는다고 한다. 올매화인 이곳의 매화는 지리산 능선에 잔설이 희끗희끗하게 남아 있는 3월 초순 경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며, 매실 수확은 지리산 철쭉이 한창 피어나는 6월에 시작된다. 매실은 다른 꽃들이 겨울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꽃이 피고, 여름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 수확이 되어 농약이 필요 없는 청정과일이다.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청매실농원에는 1930년경 율산 김오천선생이 심은 7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하여 매화나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매실
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통옹기 2000여기가 농원 뒷편 왕대숲과 함께 분위기를 돋운다.
또한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도 일품이고, 매화꽃 피는 3월마다 '매화축제'가 열린다.
청매실농원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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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산수유마을을 찾아서
●위 치 : 전남구례군산동면 상위마을 (지리산온천랜드일대)
봄기운에 겨운 섬진강의 짙은 물빛을 따라 861번 지방도로(전남쪽)를 따라 매화 향기를 맡으며 달리는 다압면 매화길은 드라이브자체로도 멋지다. 남도대교를 건너 91번 국도(경남쪽)를 따라 구례로 간다. 계속된 가뭄에 모래톱이 하얗게 넓어져 그 색깔이 진한 대비를 이루는 하동포구 칠십 리 길은 벚꽃길이지만 아직 벚꽃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아쉬었다.
산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것은? 산수유나무다.
산수유나무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 사방천지는 그야말로 샛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풍경으로 변해 버린다. 산수유는 작가 윤대녕 씨가
'마른 가지에 뿌옇게 튀어 올라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비죽비죽 돋는 머리칼 끝들을 생각나게 한다' 던 바로 그 꽃이다.
구례군의 산수유는 전국생산량의 60%이상을 차지하는데 2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3월 중순경이면 노란색으로 만개되어 4월초까지 노오란 꽃물결의 대장관을 이루고, 10월 에는 진홍빛 산호를 깍아 놓은 듯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아, 풍성한 볼거리를 관광상품으로 안겨 주고 있으며, 인근에는 국내최대 규모인 지리산온천이 관광자원으로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산수유꽃이 필 무렵에는 지리산자락에서 나오는 고로쇠약수와 흑염소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므로 산수유꽃을 자연 관광상품화하여 국내·외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지역 주민들이 발의하여 1999년부터 산수유꽃축제를 개최하여 오고있다고 한다.
구례 산수유 마을에 산수유를 심게된 유래가 재미나다.
중국 산동성에 사는 처녀가 구례에 시집을 오면서 산수유씨를 가져다 심은것이 오늘날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마을이 되었고 산수유 2그루만 있으면 아이들 학비 걱정을 안해도 되는 효자 상품이 되었다. 산수유꽃은 하나하나 볼 때는 아름답다고 할수는 없으나 군락을 이루어 피기 때문에 마을전체가 노란 물감을 칠해놓은듯 아름답다.
◈ 구례 화엄사
전남 구례군 지리산 노고단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 조사가 창건하였다하며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海會堂)과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또다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 완성 하였다.
사찰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 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로 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金剛力士), 문수(文殊), 보현(普賢)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문은 금강문과는 서쪽방향으로 벗겨놓는데 독특한 특징이다.
지금은 일주문 사천왕문 등은 보수중에 있어 옆길로 가야만 했다.
지리산은 말이없고, 칠불도 또한 설함도 없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도 없으니,
무심이랴야 백운과 함께 하리라.
고창선운사동백이 유명하지만. 이곳 각황전뒤편에도 아름드리 동백나무로 둘러쌓여 있었다.
화엄사를 둘러보고 내려와 이곳에 오면 늘상 가곤했던 욕쟁이할머니집(그 옛날 산채식당)을
다시 찾았다.산채정식의 반찬가지수가 무려 30이 넘는 데다 할머니들의 손맛이 어우러져
참으로 맛있다.
고창선운사동백이 유명하지만. 이곳 각황전뒤편에도 아름드리 동백나무로 둘러쌓여 있었다.
화엄사를 둘러보고 내려와 이곳에 오면 늘상 가곤했던 욕쟁이할머니집(그 옛날 산채식당)을
다시 찾았다.산채정식의 반찬가지수가 무려 30이 넘는 데다 할머니들의 손맛이 어우러져
참으로 맛있다.
고창선운사동백이 유명하지만. 이곳 각황전뒤편에도 아름드리 동백나무로 둘러쌓여 있었다.
화엄사를 둘러보고 내려와 이곳에 오면 늘상 가곤했던 욕쟁이할머니집(그 옛날 산채식당)을
다시 찾았다.산채정식의 반찬가지수가 무려 30이 넘는 데다 할머니들의 손맛이 어우러져
참으로 맛있다.
[화엄사 볼거리]
●각황전(국보67호)
부처님을 깨달은 왕이란 뜻과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하였다는 뜻으로 부르게 된 각황전.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넣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석등(국보12호)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된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을 세워두었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형태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
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둥 위로는 솟은 연꽃
무늬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8각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다. 큼직한 귀꽃이 눈에 띄는 8각의 지붕돌 위로는 머리 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전체적인 완성미를 더해준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4사자삼층석탑(국보35호)
각황전좌측편으로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 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
◈ 화개장터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내려와서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그리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또한 여수,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벚꽃길 따라 수많은 관광객이 지리산 쌍계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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