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그림] 고흐의 신발

인생멘토장인규 2009. 2. 26. 09:01

 




[그림] Gogh, Vincent van (1853~1890)◈ ◈ Still Life of Shoes (1886) ◈







그림을 클릭하면 큰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반 고흐의 구두"  




    누군가 막 벗어 놓은 것 같은 낡은 구두 한 켤레.
    그 구두가 20세기 세계 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수많은 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이 논쟁에 뛰어들었고
    아직도 봉합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 논쟁의 실타래를 처음 풀어헤친 것은 철학자 하이데거다.
    그는 저서 '예술작품의 근원'(1935)에서 "고흐 구두를 보면
    부드러운 대지를 밟던 여자 농부의 건강한 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 의도한 작가와의 일체감이 예술 감상의 본질"이라고 예시했던 것.
    이른바 철학 개념인 '현상학적 환원'에 대한 것으로
    고흐의 구두 그림을 사례로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로부터 30여 년 뒤인 1968년에 터졌다.
    미국 미술사학자인 마이어 샤피로하이데거
    이 같은 주장에 시비를 걸었다.
    고흐가 농촌 그림을 그린 1880년대 네덜란드 농부는
    너무 가난해서 가죽 구두를 신을 형편이 못 됐다면서
    그 구두는 고흐가 파리 뒷골목을 헤맬 때 신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관계가 확인됐으니 논쟁은 끝난 것일까? 아니었다.
    10년 뒤 해체 철학자 데리다가 이들의 논쟁에 불쑥 끼어들었다.
    데리다는 논문 '상환'(1978)에서 "구두 주인 찾아주기는
    공허한 논쟁이며 무익한 이론적 소동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샤피로는 다시 하이데거의 '여성 농부' 운운에 대해
    "나치즘 특유의 사유 방식에 따른 귀결"이라며
    하이데거의 나치 전력까지 끄집어내 다시 혹독하게 비판했다.
    사고체계를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 하이데거의 구두 논쟁은
    이렇게 사실과 추리를 넘나들며 숱한 눈문을 끌어냈다.

    이 같은 구두 논쟁의 전말을 경성대 이성훈 철학과 교수가
    최근 대동철학회의 '대동철학' 논문집 제45호에
    '반 고흐는 누구의 구두를 그린 것인가?'란 논문으로 소개했다.
    이 교수는 "나치 전력을 가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철학 담론을 설명하기 위해 고흐의 구두 그림 하나를 예시했다가
    수십 년간 곤욕을 치렀다"며 "하지만 이 논쟁을 통해
    철학자들은 철학과 미술사는 엄격히 다르고,
    철학은 역사적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