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명화갤러리[명화·신화이야기]
지난 22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서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걸작 `절규'와 `마돈나'가 도난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뭉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죽음과 맞닿은 사랑 뭉크는 노르웨이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로서 사랑, 고통, 죽음, 불안 등을 주제로 하여 내면 세계를 시각화 하였으며, '영혼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독창성 있는 작품세계를 통하여 미술사의 흐름에 한 전환점을 제기 하였다. 절규에 관해 뭉크 자신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어느날 해질녘에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밑으로는 강줄기가 돌아나가고 있었다.... 마침 해가 떨어지려던 때여서, 구름이 핏빛처럼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절규가 자연을 꿰뚫으며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절규를 정말 들었다고 생각했다. 다리위에서 공포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의 인물은 바로 그 절규에 필사적으로 귀를 막는 형상이다. 그러나 그는 그 무서운 소리를 피할 수 없다. 하늘의 <핏빛> 같은 새빨간 구름도, 멀리 뒤로 보이는 강줄기도, 그리고 그 자신의 몸도, 마음속의 절규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크게 파도치는 선으로 표현돼 있다. 이 곡선은 참으로 강렬한 표현성을 보인다. [그림]Goya, Francisco (1746~1828) ◈St Francis Borja at the Deathbed of an Impenitent (1788) 뭉크는 고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간담을 서늘케 하는 요괴의 도움을 빌지 않고 그러한 공포의 체념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은 한층 설득력을 갖는다.삶과 죽음의 응시, 인간의 본능적인 불안과 공포를 놀랍도록 날카롭게 그려낸 <절규>의 '에드바르트 뭉크'도 역시 첫사랑을 잊지 못하던 남자였다. 이러한 뭉크가 잊지 못하고 평생 동안 가슴에 품었던 것은 첫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첫사랑의 후유증이었다. 여자의 이중성에 대한 지독한 환멸. [그림]Munch, Edvard (1863~1944) ◈Moonlight I (1896)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 뭉크는 세 살 연상의 해군 군의관 부인인 '헤이베르그'과 첫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여자였다. 그러나 뭉크에게 있어 그녀의 자유분방함은 그녀의 매력이자, 그녀의 저주였다. 그녀는 뭉크에게 첫사랑의 설레임과 달콤한 첫키스를 주었지만, 반면에 여자의 얼굴 뒤에는 거짓말과 감추어진 메두사의 얼굴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내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가! 다른 어떤 그림도 그녀의 자리를 완전히 대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인가? 천만에…! 나는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의입은 크고, 때때로 그녀는 혐오감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나의 첫 키스를 빼앗아 갔고, 나로부터 '생의 향기'를 빼앗아 갔기 때문인가? 뭉크는 첫사랑의 어두운 상처를 <월광>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불길한 느낌의 달빛이 비치는 밤. 마치 저승사자 같은 얼굴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누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듯하다. 그녀의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뭉크는 헤이베르그가 자신에게 준 첫사랑의 상처를 이렇게 서늘하게 드러내 놓고 있다. 첫사랑의 후유증으로 인한 여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몰라도 뭉크는 평생 혼자 살았다. 그러나 뭉크는 사랑과 결혼을 하기에는 너무나 예민한 촉수를 가진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는 사랑의 본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림]Munch, Edvard (1863~1944) ◈The Vampire,(1893-94) 뭉크가 요부에 대한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음은 The Vampire 같은 여타 작품에 다시 나타나는데 이것은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남성의 공포를 강력하게 환기시켜 주고 있다. 뭉크에게는 그의 예술세계와 내면적 감성에 공감하여, 서로를 잘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가 둘 있었다. 한 친구는 스웨덴의 극작가인 '스트린드베리'이고, 또 한 친구는 폴란드의 상징주의 작가인 '프시비지예프스키'였다. 특히 프시비시예프스키는 후에 최초로 뭉크에 대한 연구논문을 쓰기도 한 깊은 우정을 가진 친구였다. [그림]Munch, Edvard (1863~1944) ◈Jealousy (1895) 세 친구 사이에 나타난 한 여자 이 세 친구 사이에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뭉크의 어린 시절 친구인 '다그니 유을'이라는 여자였다.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뭉크가 있는 베를린에 온 그녀는 '14세기의 마돈나'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외모와 음악적 교양과 지적 매력으로 세 친구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어느 사이 세 친구는 각자 나름대로 그녀를 사랑하면서 심리적인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이 때의 사랑의 갈등을 표현한 작품이 바로 <질투>이다. 빨간 옷을 야하게 열어제치고 서 있는 여자는 금단의 열매인 빨간 사과를 남자에게 권하고 있다. 남자는 정장차림의 수줍은 뒷모습을 보이며 여자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마치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 같다. 오른쪽에 크게 그려진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허무한 눈빛으로 감추어진 질투의 눈빛으로 아담과 이브를 바라보고 있다. 이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바로 뭉크 자신이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바로 프시비지예프스키였기 때문이다 [그림]Munch, Edvard (1863~1944) ◈Adam and Eve (1909-10)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 몇 년 뒤 한 러시아 청년의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죽는다. 뭉크는 비록 그녀의 남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영원히 사랑한다. 뭉크에게 있어 사랑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림]Munch, Edvard (1863~1944) ◈Madonna (1895) 다그니 유을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뭉크의 유명한 작품 <마돈나>에는 이런 시가 붙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순간 너의 얼굴에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머문다. 잘 익은 과일처럼 붉은 너의 입술이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듯 열린다. 그 죽음의 미소 이제 죽음의 손길이 삶에 닿는다. 생명의 사슬은 이어져 이미 죽어간 수천의 생명들이 후세의 수천의 세대와 연결된다. 뭉크는 여자를 세 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한편으로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또 체념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마돈나'에 나타난 여인에 대하여 "몸을 바치는 여자 성모의 고통스런 아름다움에 싸인다."라고 말한다 뭉크의 나이 30세이던 1893년 12월, 베를린에서 '생의 프리이즈' 연작, '흡혈귀', '절규', '입맞춤', '질투'등의 연작을 발표하였는데 중심이 된 것은 다그니 유을을 그린 이 '마돈나'였다. [그림]Munch, Edvard (1863~1944) ◈Self-Portrait with a Burning Cigarette (1895) 뭉크 [Munch, Edvard 1863~1944] 노르웨이 뢰텐 출생.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심한 이상성격자였으며,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여의고, 그 자신도 병약하였다. 그와 같은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풍에 영향을 끼쳤다. 오슬로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1881∼1884), 급진적인 그룹의 영향을 받았는데, 초기작품 《병든 아이》에서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응시는, 그 후의 작품에서 일관하고 있다. [그림]Munch, Edvard (1863~1944) ◈The Dead Mother (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