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身 言 書 判

술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진술서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19. 22:38

[술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진술서]


제 1기; 맛보期

차가운 맥주(500cc)의 투명함과 시원함을 이해한다. 첫 잔 첫 모금의 그 이중적인 짜릿함을 사랑한다. 입안에 머금었을 때의 가벼운 거부감- 목젖에 닿았을 때의 청량감- 박하사탕을 문 숨결 같은. 식도를 타고 내릴 때부턴 맑고 투명한 액체의 궤적이 시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보이지않는 착시 위에 돌돌돌 소리없는 소리가 겹쳐진다. 그 신기함에 첫 잔을 마실 때면 절로 눈이 감겨온다.

두 번째 잔에 거품이 차오를 때쯤, 어떤 열기 같은 것이 발가락끝에서부터 서서히 움트기 시작, 사지 구석구석의 모세혈관을 툭툭 건드리며 위로 뻗쳐오른다. 머릿속에 뿌연 안개 한 다발을 풀어놓은 뒤 열기는 얼굴에서 멈춘다. 얼굴이 뜨거우면 온몸이 뜨겁게 느껴진다. 황당한 작열감(灼熱感)에 시선이 어지러워지지만 타인은 그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나도 술으로서의 소질을 예감케한다 ㅎㅎㅎ

두 번째 잔은 즐기면서 마심. 몸에서 썰물때의 바다를 듯한 느낌. 파도가 밀려나가듯 서서히 빠져나가는 열기는 일단 머릿속 안개를 거두고, 얼굴의 뜨거움에 냉기를 끼얹고, 부르르 들뜬 신경들을 다독다독 눌러앉힌 뒤 느릿느릿 발뒤꿈치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꽁무니를 또 다른 나의 눈이 파도가 훑고 지나간 흔적을 밟아가듯 뒤따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시선까지 완전히 빠져나가고 나면 더없이 차분해지고 말짱해지는 느낌이다. 술에 대한 경외감은 여기까지.


제 2기; 마취(마시고 취하)期

불혹 하고도 중반을 넘기고부터 단일 주종(酒種)에 대한 핍박 및 주종 확대에 대한 압박이 심해진다. 왕왕 청탁불문(淸濁不問) 두주불사(斗酒不辭)의 경지에 오를 것을 종용받기도 한다. 홀짝酒法으로 주종확대의 대업에 도전. 뒤늦게 창궐한 원샷酒法 맹신도들과 맞닥뜨리면 일순 눈에 불이 켜지기도 한다. 원샷맹도 대부분이 막무가내형이라는 비보를 확인하게 되면서부터 '뚜껑열린다'는 어휘를 이해하게 된다.
이판사판 전법만이 그들과 대항할 유일한 전법임을 체득하게 된다. 가장 강력한 공격자들 모두가 친구가 아니라 웬수라는 사실에 인생무상을 느낀다. 수련 부족으로 내공쌓기에 실패, 블랙홀에 빠져 '필름싹둑'이라는 기이한 체험도 하고. 비몽사몽의 또다른 경지를 이해하게 된다. 흥분 고양 추락 자책 등의 다양한 심리사이클을 반복 학습하게 되며, 자신의 주사유무(酒邪有無) 및 그 행태를 확인하게 되며. 취중 수면의 보약(?)과 깨어난 후의 속쓰림과 해장국의 진정한 의미와 맛을 깨닫게 된다.


제 3기; 즐기期

집에서 마눌과 함께 술을 대작(對酌)하는 즐거움을 체득한다. 원샷파를 만나면 재빨리 선행공격을 퍼붓고, 이판사판 전법보다는 유야무야 전법 내지는 은근슬쩍 혹은 두리뭉실 전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마무리하며, 꿋꿋이 홀짝派로 뻗대어도 끝까지 시비거는 이는 없음을 확인한다. 더는 주종(酒種)이며 주법(酒法)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배짱이 생긴다. 오랜 시간 자리할 기회가 없으면 은근히 술 생각이 나기도 한다. 크게 해되지 않는 즐거움은 오랫동안 멀리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를 발견해내고 우쭐해 진다.. 으로의 도약기라 사료된다.

제 4기; 뒤집期(술잔을 엎는 시기)

순조롭게 의 길을 걷다가 득도, 해탈 등등의 경지에 이르러 더 이상 술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때. 정신적 육체적 건강상의 이유로 자타공인(自他共認)의 금주(禁酒)확인서를 받아들 때. 더 이상 술잔 들 힘도 없을 때.


- 여기서; 제 2기와 제 3기는 상호간 기수 구분 없이 서로 트고 넘나드는 바 둘 사이의 뚜렷한 경계점을 찾을 수는 없으나, 숫자상으로 보나 행사머리로 보나 3기가 한 수 위의 경지라 사료된다. 본인은 현재 3기에 도달했노라 주장한다. 그러나 가끔 2기 현상이 돌출함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
4기까지는 솔직히 가고 싶지 않다.

- 에 대한 견해; 와 마찬가지로 이중적 성향이 강한 단어라 생각함. 진정한 프로를 느낄 때, 혹은 지향할 때 이란 단어를 부여함.

으로의 부단한 정진 및 도약을 위하여 오늘 저녁엔 누구랑 수작(酬酌)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 중.
ㅋㅋㅋㅋㅋ


술이 부르는 노래/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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