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憂愁)의 이력서
- [憂愁의 사냥꾼(1969)/ 이어령] 中에서 -
여섯 살 때의 우수는 포대기 속에 있었다. 어머니가 누워 있었던 그 자리가 문득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구겨진 이부자리에서, 우리는 우수가 어떠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금시 있다 사라진 사람들처럼 우수는 다만 가슴이나 손끝 위에 남아 있는 엷은 체온이었다.
여섯 살 때, 이 우수를 사냥하기 위해서 우리는 울었다. 목이 쉬도록 울고 또 울면 비었던 자리에 다시 어머니가 돌아오고 우수는 저만큼 영창 너머로 달아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과자가, 장난감이,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같은 것이 우수를 사냥해 주었었다.
생과자를 싼 번뜩이는 은(銀)종이가, 빨갛고 파랗고 하얀 풍선의 그 율동이, 혹은 어느 으슥한 산 고개에서 예쁜 색시로 둔갑을 하는 꼬리가 아흡 개나 달린 여우가 우수의 그 털깃을 뽑고 있었다.
열 살 때의 우수는 숙제장의 하얀 공백 속에 있었다.
공책 위에 써야만 할 많은 숫자, 많은 문자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우수가 어떤 목소리로 기침을 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풀지 못한 숙제장의 빈 터에서는 늘 가을의 벌판처럼 흰 서리가 내리고 있었고, 나무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빈 바람 소리가 울렸다. 우수는 그렇게 하얀 빛을 하고 있었고, 아침 시간에, 종이 몇 번이나 울렸을 그런 시각에 나태한 사람의 기상처럼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열 한 살 때의 우수는 앵두나무 가지에 앉은 참새처럼 고무총으로 사냥할 수가 있었다. 우수에 쫓기는 계집애들은 줄넘기를 하고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고 사내애들은, 자치기 같은 것을 했다. 작대기로 조그만 우수를,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우수의 그 조그만 막대를 후려갈기고 또 후려갈긴다. 땀이 솟을 정도로 뛰어 놀면 아, 교정의 철책이나 벌을 서는 긴 낭하의 어둠이나 교무실의 딱딱한 마룻장 위의 차가운 불안이 흰 공처럼 한 옹큼의 구름이 되어 산 너머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열일곱 살 때의 우수는 하드론빛 편지 봉투 속에 있었다.
붉은 지붕과 상춘등이 벽을 가린 어느 양옥집, 그리고 창가에는 초록빛 커튼이 쳐져 있었다는 이유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것들이 여름의 저녁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 집 속에서 사는 여인들을 가까운 곳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는 이유로, 몸은 보이지 않고 숲 속의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울려오는 키츠의 나이팅게일 같다는 그 이유로,
열일곱 살 때의 우수는 하드론빛 편지 봉투 속에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아!>라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긴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소녀들은 눈부신 하얀 칼라를 목 위에 세우고 곁눈질도 하지 않은 채 하드론 봉투 위를 스치고 지나갔었다.
우수는 무관심한 소녀의 풀 먹인 스커트 자락처럼 줄이 서 있었다. 그것을 구기고 또 구겨도 우수는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의 우수는 수신인도 없고 답장도 없는 하드론빛 편지 봉투 속에 있었지만 여드름을 짜면 그것을 사냥할 수도 있었다. 심심한 거울 앞에서 여드름을 짜던 오후, 그런 오후가 몇 번이나 우리들 곁을 스치고 되풀이되면 우수는 퍼런 자국만을 남기고 아물어 갔다.
여드름을 짜다가 커피 맛과 담배 맛을 배우면 상춘등이 벽을 감고 올라간 빨간 지붕의 양옥집들이 집짓기 장난감처럼 허물어져 가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하얀 안대를 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소녀에게 편지를 썼던 우수는 여드름의 흉터만큼이나 이젠 아프지 않다.
스물 두 살의 우수는 책 속에 있었고, 껌을 씹는 영화관의 좌석 번호 속에 있었다.
밝은 날에도 비가 내리는 낡은 필름처럼 그 우수는 돌아가고 있었다. 찢긴 책장의 활자들처럼 우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불완전한 토막난 문장으로 엮어져 가고 있었다.
<배신자여, 나는 너의 가슴을 찌르기 위해 거칠은 사반나를 말 한 필로 건너왔다. 사흘 밤을 자지 않고 모래 바람 속에 헤매었고, 그늘이 없는 태양 밑을 사흘 낮 동안이나 떠돌아다녔다. 너의 가슴을 찌르기 위해서......>
멜로드라마의 화면에 번지는 집념과 사랑과 그리고 그것이 비록 해피 엔딩이라 하더라도 우수는 스크린처럼, 필름이 끊긴 하얀 스크린처럼, 스물 두 살의 가슴 위에 펼쳐진다.
구둣솔 같은 수염이 달린 빅토르 위고가 애국을 말할 때 랭보가 「때여, 오라. 도취의 때는 오라.」고 외치고 있을 때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말하고,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말하고, 성서에서는 <죄 지은 자는 모두 오라>고 설교하고 있을 때,
우수는 고양이 같은 혓바닥으로 스물 두 살의 뇌수를 핥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창을 깨듯이, 술에 취해서 찻잔을 내던지듯이, 스물 두 살의 우수는 저항의 폭력으로 사냥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거부하고 또 거부 한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인류의 멸망과 구제를 고할 때까지 거부하고 또 거부한다.
데모 대원들같이 주먹을 쥐고 금제의 유리들을 부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수는 붕대를 감고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린다. 우수의 사냥꾼은 F학점을 받은 학생이 모멸 속에서 노트를 찢듯 그렇게 우수의 유리창을 부순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우수는 그 표지를 닫는 것이다.
그러나 스물 여섯 살 때의 우수는 도장 속에 있었다.
서류에 찍힌 도장 속에 있었다.
출근부 위의 도장 속에 있었다.
신분 증명서와 수표장과 승낙서의 네모나고 둥근 도장 속에 있었다. 인지의 소인이라든가, 인감 도장에......
아! 그 도장만큼의 크기로 우수는 손바닥 위에서도 찍히고 있었다.
스물 여섯 살 때의 우수는 울음으로도, 고무총 같은 것으로도,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이 유리창을 부수는 데모를 하듯이 그런 짓으로 사냥할 수는 없다. 이미 그것은 자라서 흰 이빨과 튼튼한 발톱을 갖고 사람들의 심장을 찢는다. 어떻게 사냥하랴?
그러나, 그러나 스물 일곱 살의 우수는 예식장의 하얀 주례 장갑 같은 것으로 사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부의 손에 모조품이 아닌 5부 다이아반지라도 끼워 주면 잠시, 사슴처럼 유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서른 세 살 때의 우수는
아내가 벗어놓은 때묻은 버선이라든가, 루주가 반쯤 지워진 입술이라든가, 장식이 떨어진 콤팩트라든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어느 백화점의 포장지 쪼가리와 캐러멜갑과 담배 꽁초와...... 사그라져 가는 그 모든 것들 속에 있었다. 그것은 빈 트렁크에 가득히 괴어 있는 우수이다. INVALID(무효)의 스탬프가 찍힌 못쓰는 여권, 많은 이국의 도시 이름과 옛날의 일부인이 찍힌 여권의 그 갈피마다 묻어 있는 우수이다.
아들 녀석이 발톱을 깎고 있는 뒷모습에서, 여학생 제복을 입고 있는 아내의 옛날 앨범 속에서 ,그리고 맨드라미나 백일홍 같은 시골 꽃들이 도시의 담 모퉁이에 심어져 있는 뜰 속에서 서른 세 살의 우수는 하품을 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억세어져 가는 정맥을 들여다보듯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우수의 의미,아침 아홉 시와 저녁 다섯 시에 생각하는 우수의 의미, 바둑판의 돌처럼 빈 줄을 따라 늘어서는 우수의 의미, 서른 세 살 때의 그 우수는 노동으로 사냥을 한다.
바쁜 꿀벌들처럼 일하고 벌고 쓰고, 쓰고 벌고 일하고, 손가락에 잉크가 묻고 기름이 묻고 횟가루가 묻어서 감각이 저려 오는 그 순간에 우수는 힘줄같이 살 속에 묻혀 버린다.
서른 세 살 때는 울어서는 안 된다. 속으로 흐느낄지언정 통곡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호주머니를 위해서 낡은 지갑의 공백을 위해서, 벗어 던진 아내의 서글픈 버선을 위해서, 발톱을 깎으며 성장해 가는 자식들의 뒤통수, 그 뒤통수의 우수를 몰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도시락을 싸야 한다.
늙어 버린 창녀의 치마폭에 몇 장의 지폐가 남듯, 우수의 정조를 화폐로 바꿔 나간다.
생각하지 말아라. 당신이 지나온 먼 이국의 길들을, 단풍이 드는 티롤의 골짜구니나 가스등이 켜지는 피아자 미켈란젤로의 언덕을...... 생각하지 말아라. 너무도 파아랗던 지중해변의 종려나무나 붉은 그 석죽화(石竹花)들을......
기차(汽車)를 생각하지 말아라. 죽어도 그 기차가 내뿜는 우수의 수증기 소리를 생각하지 말아라. 낯선 시골 도시에서 일박 이일(一泊二日)의 짧은 여행을 하는 그 유혹을 이겨 내야 한다.
떠나지 말아라.
우수를 사냥하기 위해선 도시락을 싸라. 월급날을 기다려라.
마흔 아홉 살의 우수는 콘돔에 괴어 있는 정액 속에 있다.
죽어가는 정액들의 축축한 회상들. 대체로 잠들기 전, 전등불의 스위치를 누르려고 할 때 이불 속에서 손을 내밀고 풀 스위치의 끈을 잡아당기려고 하는 그 순간에 마흔 아홉 살의 우수는 창 밖에서 머뭇거리던 어둠과 함께 밀려든다. 연하장을 보내야 하는 친구들의 이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마흔 아홉 살의 우수는 늙은 개가 달을 향해서 짖듯이 짖고 있다.
다 먹어서 비어 버린 정력강장제의 약병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 써 버린 저금통장의 잔고난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골프공이 날아가 버린 푸른 잔디밭의 하늘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분노하거라. 빠져가는 머리카락을 한 웅큼 틀어쥐고 분노하거라. 마흔 아홉 살의 우수를 사냥하기 위해선, 마루 밑에 버려둔 지팡이를 다시 잡아야 한다.
정부가, 정부가 있어야 한다. 요사스런 정부와, 뻔뻔스럽게 키득거리며 웃어라. 램프의 심지를 밤새도록 태우고 어둠의 창 밖에서만 기웃거리도록, 마흔 아홉 살의 우수를 분노하라, 뻔뻔스러우라.
그러나 모든 날의 우수는, 쉰 살의, 예순 살의, 일흔 살의...... 쇠약해져 가는 시력 속에서 흐려져 간다. 우리가 늙어질 때 야윈 언덕에 외구루 소나무처럼, 한 구루의 노송처럼 우수의 가지만이 남아서, 바람에 흔들린다.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가?」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려고 했었던가?」
되풀이해서 묻고 되풀이해서 생각한다. 늙은이의 우수는 어느 빌딩의 입구 유리창 안에 갇혀서 끝없이 앉아 있는 수위와도 같다.
아! 그것은 우수이다.
누가 대체 저 늙고 가난한 수위에게 저토록 번쩍이는 제복을 입힐 생각을 했는가? 옛날 장군들 같은 금테 두른 모자를 쓰고 금몰이 달린 소매와, 금단추를 단 수위...... 그러기에 더욱 슬퍼 보이는 그 우수를 당신은 알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층계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무수한 사람의 발자국을, 3평방 미터의 밀실에 앉아서 지켜보고 또 지켜본다. 훌쩍거리며 무엇을 마시고 있을 때,「옛날에......」라고 말하려 할 때, 흘러내리는 바지를 올리고 허리띠를 매려고 할 때, 우리들 노인의 우수는 단 한 방울만의 눈물이 되어 주름살 위를 흐른다. 이빨이 빠지듯이 우수도 절로 빠져간다.
늙은이들은 우수를 사냥하지 않는다. 다만 앉아서 지켜보고 있으면 우수는 머리카락이 빠지듯이 썩은 이빨이 빠지듯이 그렇게 힘없이 빠져 가고 있다.
더 이상 우수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얀 수염은 더 이상 우수의 길이를 재지 않을 것이다. 발음이 확실치 않은 말을 입 속에서 웅얼거리다가, 헐렁거리는 바지를 걷어올리다가, 뜨거운 보리차를 훌쩍거리고 마시다가, 우수는 까만 테를 두른 부고장 만큼 졸아든다.
빌딩 입구에서 서성대던 수위의 우수도 이제는 보지 못하리라. 금테 두른 모자를 벗고 해군 제독의 웃도리 같은 제복을 벗고 그들은 영원히 외출하리라.
우수는 이제 타인들의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았었지.
어느 봄날엔가 아이들이 빈 깡통을 들고 아지랑이를 잡으러 다니는 것을. 아지랑이는 노고지리처럼 운다고 아이들이 수상한 소리를 하며 언덕에 오르는 것을.
우리는 보았었지.
어느 봄날에 아이들이 빈 깡통을 들고 오랑캐꽃들을 캐러 다니는 것을. 오랑캐꽃에서는 석유 냄새 같은 것이 난다고 아이들이 수상한 소리를 하며 들판으로 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었지.
어느 봄날에 아이들이 빈 깡통을 들고 뱀을 잡으러 다니는 것을. 뱀은 아무리 죽어도 흙내를 맡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수상한 말을 하며 숲으로 가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보았었지.
어느 봄날에 맨발 벗은 아이들이 푸른 냇둑에 누워 낮잠을 자는 것을. 빈 깡통에는 아지랑이도, 오랑캐꽃도, 징그러운 뱀도 없었지. 빈 깡통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아이들의 낮잠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았었다.
그래서 봄은 게으른 하품을 하고 강물 위에서 잠시 머물다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여름이 오고 있었다.
벌판으로 소나기가 급히 지나가고 있을 때 비를 피하는 어느 두 젊은이가, 나무 밑에 숨는 것을 우리는 보았었다. 흙냄새가 풍기는 여름의 저녁이나, 머큐롬같이 붉은 아침 햇살이 여름의 페이브먼트 위를 비질하고 있을 때, 어느 두 젊은이가 심호흡을 하며 서로 포옹하는 것을.
바다가 젊은이들의 옷을 벗기고 알몸으로 뜨거운 모래밭을 뛰어다니게 하는 그 여름은 미쳐 버릴 듯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었다. 욕망이 땀을 흘리며, 짭짤한 소금기를 거두고 있는 여름에 젊은이들이 태양을 럭비공처럼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뛰어가는 것을.
먼지 묻은 개가죽나무들이, 은빛으로 그 잎을 진동시키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은 좀더 살 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었다.
그러나 여름은 그 짧은 밤 속에서 눈을 감고, 소나기가 지나간 그 나무 밑에도, 머큐롬 같은 아침놀이나 저녁놀이 비질을 하고 지나가는 페이브먼트나 모래가 타고 있던 바닷가에나, 개가죽나무의 이파리가 은빛으로 진동하고 있던 가로수 밑에나...... 이미 젊은이들은 아무데도 없었다.
가을에, 바람이 부는 가을에 우리는 보았었지.
어느 두 부부가 뜰에 떨어진 나뭇잎을 불태우는 것을. 연기가 흩어지고 있어서 <가을이 타는 냄새>가 , 잠시 나무 삭정이 위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었지.
그것은 비올라와 같은 소리였어. 모든 나무들은 장작같이 되어, 뜰에 쌓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패어, 추운 날을 견딜 생각을 했었지. 그 여자가 지나갈 때, 우리는 나프탈린 냄새나 벤졸이 휘발하는 냄새 같은 것을 맡을 수 있었다. 날이 추워지니까 묵은 옷들을 꺼내 껴입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까칠한 것을 만질 수 있었지. 빈 밤 껍데기의 가시 같은 것을 손으로 만질 수가 있었지.
늦가을의 서리가 서너 번이나 내리고, 정다운 사람은 벌써 기침을 하며, 38도 5부의 가을을 앓고 있을 때, 까칠한 것들이 우리들 손끝에서, <가을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스크랩 속에 나뭇잎들을 끼워 두고 사람들은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거리는 문을 닫았다. 산도 벌판도 냇물도 문을 닫고 있었다. 문들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겨울의 숯불을 기다리고 있었지.
겨울에, 마지막으로 겨울 밤에 본 것은, 화롯불의 재를 뒤지며 불덩어리를 찾고 있던 우리들의 늙은 아버지들이 무슨 소리를 듣고 얼굴을 드는 몸짓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어.」
「아니에요. 바람 소리예요.」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어.」
「아니에요. 발자국 소리예요.」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어.」
「아니에요. 이웃집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예요.」
겨울의 대화는 늘 이러하였다.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고.
정말 그것은 지붕 위를 스쳐 부는 바람 소리였을까? 정말 그것은 골목길로 신발을 끌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였을까? 이웃집에서 누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였을까?
겨울 밤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식은 화로의 재를 헤집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노라고 놀란 얼굴을 하며 고개를 드는 늙은 우리들 아버지의 몸짓이었다.
우수의 이력서를 쓰자.
<右와 如히 相違無함>이라고, 열 번이나 백 번이나, 백 번이나 천 번이나 <右와 如히 相違無함>
<右와 如히 相違無함>이라고......
우리들 이력서를 쓰자.
200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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