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Working together

가정과 직장 사이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17. 16:21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에 삼망(三忘)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쟁에 나간 병사가 잊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 데 그것을 삼망이라 한다.

“전쟁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고서는 가정을 잊고, 싸움에 임해서는 부모를 잊고, 공격의 북소리를 듣고서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스개 소리로 직장에 출근하는 샐러리맨도 세 가지를 잊어야 한다. “직장에 나가라는 자명종을 듣고서는 잠을 잊고, 회사에서는 잦은 전화벨 소리에 마누라를 잊고, 실적 때문에 잔소리하는 상사의 말에 자신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샐러리맨이 누구기에 이런 우스개 소리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까? 자, 이제 “샐러리맨! 당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두 번째 답변을 해보자.

조직과 개인 사이에서 끼인 샐러리맨이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어난 다음, 그들이 부딪히는 핵심문제는 직장과 가정 사이에 자신이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어느 일간지 기사에는 “관계 장애, 위기의 40대, 내 자리는 어디? 소외된 중년”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정부부처 2급 공무원인 이모씨(48)는 요즘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27세에 행시에 합격한 뒤 그는 지금껏 거의 매일 오전 7시부터 자정 가까이 일에만 몰두해왔다.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가장’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가끔 가족들이 ‘아빠는 출근 중’이라며 핀잔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가정에서 ‘외면’당하기 시작한 것. 간혹 일찍 퇴근해 말이라도 걸려고 하면 아이들은 아빠와의 대화 자체가 어색한 듯 서둘러 방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아이들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놓아 남편이 새삼스레 끼어들 여지가 없는 듯하다. 이씨는 직장에서도 ‘왕따’가 되고 있다고 느낀다. 충성을 다했던 직장이 이제 그를 ‘단물 빠진 퇴물’ 혹은 ‘월급 도둑’ 취급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중략)

공직사회뿐만 아니다. 관계 장애는 사회 각 분야의 중년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증권회사 부장 김모씨(42)는 아침 시황보고 토론회의 때마다 “저건 아닌데…” 싶어도 입을 꾹 다문다. 경험은 많지만 젊은 직원들이 영어와 인터넷을 무기로 ‘반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40대는 가정과 회사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뜬 세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증상을 ‘관계(關係) 장애’라 한다. 관계 장애란 부부 관계, 자녀 관계, 업무 인간관계 등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소외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현상이다. 이들은 잘 나가던 시절인 30대 중반 이런 독백을 한 사람들이다.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가족과 친척 문제다. 그 밖의 다른 문제라면 현대 생활에서는 마음대로 차단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아내, 자녀들, 형제자매 등 가족간의 서로 얽힌 문제는 피할 수가 없다. 어쨌든 가정과 친척은 직업적인 성공에 대체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생각으로 그들은 가족 관계의 모든 문제들을 아내에게 위임해 왔다. 심지어 자녀교육 문제까지도. 그 결과로 그들이 얻은 것은 직업적인 성공이라는 찬란함과 관계 장애라는 초라함이다.

475세대(1950년대 태생으로 70년대 학번을 가진 40대 사람들)와는 달리 386세대(1960년대 태생으로 80년대 학번을 가진 30대 사람들)는 가정에 좀 더 적극적이다. 그들은 헬스나 수영 등의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처럼, 멋진 가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 쇼핑도 같이 하고, 여행도 함께 떠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거실(Living Room)이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삶(Life)을 함께 나눈다. 거실 겸 주방으로 대표되는 아파트 문화는 가정생활의 일대 혁신을 가져다 준 하드웨어다. 각자의 방에서 자기만의 일에 바쁜 현대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곳이 이곳이기에 가정지출의 대부분은 이 곳에 집중된다. 에어콘, TV, 오디오 등 집안의 값비싼 물건들은 모두 이 곳에 모이게 되고, 식음료비 등 일상적인 소비는 모두 이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386세대들은 475세대들이 들어가기조차도 싫어했던 부엌을 행복의 지성소로 바꾸어 놓았다.

거실 겸 주방이라는 하드웨어가 잘 갖추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혹은 어머니)의 빈 자리라는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 같다. 직장인상담전문가로서 직장인을 연구하며 상담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직업적인 성공을 추구하되 가정의 행복도 함께 고려하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정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아버지(혹은 어머니)의 자리 지키기이다. 가정이 바라는 바는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저 아버지(혹은 어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것으로 만족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아이의 마음은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녀와서 집에 아무도 없는 허전함이다. 이 허전함은 거실이나 주방의 풍요로움으로 채울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못된다. 또한 아직 자기정체성이 발달되지 않은 아이의 입장에서 친구가 줄 수 있는 그런 재미로움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이다.

이 허전함은 날이 저물고 밤이 되면 더욱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다행히 부모 중 한 쪽이라도 일찍 와서 저녁을 함께 먹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지속되면 아이의 허전함은 불안감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의 자기 자리 지키기는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끼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샐러리맨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세계 최대의 인력컨설팅 회사인 드레이크 빔 & 어소시에이츠(Drake Beam & Associates, Inc.)사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존 드레이크(John Drake)는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는 샐러리맨이 가정에 무관심한 샐러리맨보다 평균 연봉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일을 할 시간은 빼앗지만 이는 고용자와 피고용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 샐러리맨들은 너무나 과도한 업무 중심의 생활 방식을 하고 있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가, 가정이 아닌 집에서(in the house but not at home) 잠깐 쉬고 다시 직장으로 출근하는 그런 신세다. 직장은 삶의 일터이며, 집은 하숙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을 취하거나 휴가를 떠나 재충전하고 돌아와서 다시 열심히 일하는 그런 종류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행복을 재정의하고 삶의 일부로써 일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삶의 변혁이다.

 

삶의 전부로서의 일이 아닌 삶의 일부로서의 일의 대안은 직장과 가정의 균형이다. 이 균형은 인생을 일로만 풀려는 그런 삶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삶의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균형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즉 일을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소극적인 의미로서, 삶의 목적의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직 분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삶의 목적을 분명히 찾고자 하는 샐러리맨이 직장과 가정의 균형이 심각히 도전받고 있다면, 그는 직장의 일을 줄이거나, 혹은 다른 직장을 찾아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의 일을 위해 일보다 더 소중한 가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인드이다. 돈은 조금 적게 벌지만 가정을 희생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마인드는 새롭게 재조명해 보아야 한다.

둘째,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서, 균형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은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 열정, 그리고 가치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직장이 아닌 직업까지도 조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간과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며, 열정을 다한 삶이다. 우리나라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혹은 오지의 사막지대나 고산지대에서 한 가족이 열정을 다해 추구하는 그 무엇은 진한 감동을 남긴다.

심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우리가 행동으로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은 목표와 다르다. 가령, 삶의 목적은 ‘왜 사는가’의 문제라면,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직장과 가정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샐러리맨들이 삶의 목표는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삶의 목적은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관건은 목적의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심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우리가 행동으로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를 가장 사용한 심리학자 앨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개인의 독특함 혹은 독창성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자신의 제품을 팔고자 하는 기업들의 말장난으로 라이프스타일은 집단적인 소비와 가장 많이 연관되어 사용된다.

제품의 광고 장면을 보면 그 물건을 사기만 하면, 소비자는 멋진 라이프스타일의 생활을 하는 것처럼 말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들이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이 제품을 사고도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는 것이다.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 암묵적인 주장에 집단적인 동의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모두 거짓말이다. 아들러의 주장처럼 라이프스타일이란 가장 개인적인 것이며, 독특하고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제품으로 나온 물건을 너도 사고 나도 사서 어떤 독특함과 독창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물건 하나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이프스타일은 쇼핑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근거한다. 특히,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강조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쇼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라이프스타일을 돈으로 사려고 하지마라. 라이프스타일은 몸으로 경험하고 영혼으로 공감하는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샐러리맨들은 이 무지에서 계명되어야(enlightened) 한다. 계명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첫 번째 의미는 문자 그대로 light를 빛으로 해석하여 ‘빛을 비추다’는 의미이다. 무지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기만 하면 어두움은 사라진다. 라이프스타일의 원래의 의미는 개인적인 독특함이나 독창성의 의미이고, 기업들의 장사 속에 이 용어는 오염되고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 의미이다. 이것은 enlighten을 짐을 가볍게 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샐러리맨들의 어깨에는 직장에서 요구하는 업무량과 질적인 수준이 이미 초과를 한 상태이다. 이 무게초과로 인해 샐러리맨들은 가정에서 직장핑계를 댈 수밖에 없다. 회사 일 때문에 아내의 생일을 당일에 챙겨주지도 못하기도 하고, 회사 일 때문에 자녀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여 자신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도 한다. 직장인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면, 샐러리맨들이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너무나 큰 욕심일까?

바라기는 이런 마음이다.

우리 샐러리맨들이 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가족들이 당신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하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친구가 정말 축하한다며 전화 한 통을 걸지도 의문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공간적인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할까 하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심리적인 자리를 염려하고 있다. 아내가 속으로는 ‘이제 나랑 있는 시간은 더욱 없어지겠구나. 저 사람은 차라리 일과 결혼을 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는데.’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여보, 축하해요.”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 녀석이 속으로는 ‘저 녀석 이제 나를 만나는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지는 거 아니야?’라며 마음에도 없는 “자네, 축하하네.”라는 말은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직업적인 성공을 거둔 한 이벤트 중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혹 ‘이 정도면 성공했지?’라는 생각만으로는 후회스러울 것 같다.

비즈니스(business, 사업이나 일)와 비즈네스(busyness, 다망하고 분주함)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직업적인 성공과 진정한 행복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정말 가슴 아픈 인생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진심으로 들려주는 그런 박수소리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표창장이나 상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가정을 담보로, 혹은 가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성공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정리해보자. 샐러리맨, 당신은 누구인가? 그 두 번째 대답은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끼인 사람”이다. 직업적인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정이라는 소중한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통합, 조화, 균형이다.

 

* 출처: Salaryman(http://www.sman.co.kr) 정연식의 직장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