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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 김정한, 그는 누구인가?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9. 14:46

요산 김정한, 그는 누구인가?

 
  요산 문학관

요산 김정한 선생은 1908년 동래에서 일곱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범어사와 금정산 그리고 그 너머 낙동강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 선생이 명정학교에 다니던 12살 되던 해에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선생도 함께 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요산선생은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했다가 다음해 동래고보로 전학을 온다. 그 때부터 선생은 문학에 깊이 빠지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하이네를 좋아했던 선생은 우리 민족의 어려운 현실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의지를 다지게 된다. 요산 선생은 20살 되던 해에 결혼을 하고 교사 시험에 합격해서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지만 제도를 바꿔볼 계획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하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학교를 그만 두신 요산 선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에 입학하되고, 그 곳에서 문학공부를 하는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쓴 대부분의 시들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는 내용들이었다.

요산선생의 작품으로는 '뉘들이 저리했노 왜저리 갇히었노 조선학 된 탓이냐. 그렇찮아도 애닯은 건 머리에 깊은 상처를 이 맘 아파하노라'라고 쓴 '조선학'이 있고, 사찰 소유의 논밭을 빌어 살아가는 소작 농민들의 가난한 삶의 고통을 그린 '사하촌'이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죽을 고비를 맞게 되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모래톱 이야기'와 '슬픈 해후' 등이다. 부산대학교 교수로 복직된 이후에 발표한 작품으로 '수라도' '뒷기미 나루' '산거족' 등이 있다.

 
  요산 김정한 선생의 사진

이렇게 일제시대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셨고 광복 후에는 반 독재, 반민주에 저항하며 평생을 올바르게 살아 온 요산 선생은 지난 1996년 11월 28일 평생을 바쳐 지켜온 세상을 떠났다. '오래도록 지조를 지키고 살아달라는 의미'인 요산을 아호로 삼은 김정한 선생은 평생을 사람다운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신 문학가이면서 민족의 주체성을 밝히는 뜻 깊은 사상가였다.

요산 문학관은 부산 금정구 남산동 생가 바로 옆에 있으며, 개관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왼편에 그 당시에 이 정도의 기와 집이라면 부잣집이었음을 눈짐작으로도 알 수 있는 선생의 생가가 단정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요산문학관에서 제일 먼저 그 분의 '사람답게 살아라'라는 말을 만난다. 요산 선생의 생전의 행동은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갈 길이 아니다'라며 이 한마디로 말에 모두 포함돼 있다.

문학관 1층엔 북 카페가 있어 방문객이 부담 없이 책을 보며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엔 김정한 선생의 사진과 함께 '무척 긴 어둠의 날들을 살아온 셈이지만 맑고 곧은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라는 그의 생활 신념을 담은 안내문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2층은 전시실과 도서관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시실에는 요산 선생의 일생이 세세히 카툰으로 그려져 있다. 도서관은 3천 여권의 도서가 채워져 있는데 세간에서는 만나기 힘든 희귀본도 많이 소장돼 있다. 심지어 월간지의 창간호도 있어 그 당시의 생활사, 광고 등을 볼 수도 있다. 3층에는 2개의 창작실이 있어 문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무척 긴 어둠의 날들을 살아온 셈이지만 맑고 곧은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 선생의 신념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만날 수 있다.

요산문학관의 원무현사무국장은 "국제영화제는 많은 시민이 관심을 보이지만 요산 문학관은 문예창작과 학생들만 가끔 올 뿐 평일엔 방문객이 거의 없다"며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부산 사람들이 다소 외향적이라서 밖으로 드러나는 것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문학을 좋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방문객들도 부산의 대학생들보다는 타 지방의 학생들이 더 많이 찾아 온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북 카페와 도서관이 있지만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일고 가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고, 도서관에 희귀본이 많이 전시 보관돼 있는데 다들 휙 둘러보고 간다고 아쉬워했다. "개인적으로는 요산 선생님을 문학가라고 부르기보다는 민족의식 사상가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요산 선생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애국심과 올 곧은 사상을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요산문학관은 사단법인이라서 입장료도 없으니 회비를 제외하면 수입원이라고는 한 푼도 없다. 북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녹차 한 잔 마시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요산문학관은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오면 청룡초등학교 담과 만나게 된다. 이 담을 끼고 산을 향해 800m 정도 직진하면 요산문학관에 도착한다. 청룡초등학교 담을 돌아서 한참을 가다 보면 산청수퍼마켓이 보이고 도로 하나를 지나면 왼쪽으로 신화주유소가 나타난다. 곧이어 삼성 하이츠빌라가 보이고 꽃님 공영주차장과 평산어가 사잇길로 직진하면 스마일 수퍼렛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 길 전봇대의 이정표가 오른쪽으로 요산문학관이 있음을 알려준다.

햇빛 따스한 봄날, 우리 부산을 빛낸 인물, 한국을 빛낸 요산 김정한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을 찾아 민족화를 위해 글을 썼고 또 그를 위해 절필 했던 요산선생의 민족정신을 배워 보자.

 
  요산 선생의 생애가 2층 전시실에 벽화처럼 그려져 있다.

 
  요산 문학관 도서실에서 본 월간중앙,신동아 창간호

 
  요산 김정한 소설과 부산의 도시 공간

시민기자 프로필 2005년 제 10회 환경부 장관상 수상.
     
장해봉 시민기자 chbong7@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