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여행의 추억/국내여행·마실

[2006년 5월] 문경여행첫날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4. 00:17

▶ 언제:2006.5.1(월)

▶ 여행지 : 부산 --->문경진남(철로자전거)--->상주(자전거박물관)--->

               보은선병국가옥--->법주사--->문경온천

 

<<문경철로자전거여행 >>

 

▶운행시간

- 하절기( 3월1일∼9월30일) : 09:00∼18:00
- 승차권 매표시간은 08:30~17:00(이용객이 많을 경우 조기에 매진될 수 있음)
- 동절기(10월1일∼익년 2월28일) : 10:00∼16:00
- 승차권 매표시간은 09:30~15:00(이용객이 많을 경우 조기에 매진될 수 있음)

▶운행구간

  4.0㎞(왕복거리임)
- 1코스 : 진남역 ~ 구랑리역 방향 2.0Km
- 2코스 : 진남역 ~ 불정역 방향 2.0Km
- 3코스 : 가은역(농공단지앞) ~ 먹맹이(구랑리역) 방향 2.0Km

▶비용: 1대당 10,000원

[자료:문경시청]

 

☞ 광산이 없어지면서 석탄을 실어나르든 철로가 쓸모가 없어지자 문경시가 개발한 철로자전거여행상품은 그 아이디어 자체도 멋지지만, 진남교반과 고모산성 등주위경관을 둘러보며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하였다. 현재는 왕복 40분정도면 다녀오는 코스지만 앞으로는 석탄박물관까지 연장할 계획이란다.

 

<<진남교반>>

이미지

점촌에서 문경 충주방면으로3번국도를 따라 10KM쯤 달려가면 70년도 문경경제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광산의 하나인 문경탄광의 복구된 폐광지 모습이 나온다. 계속 S자형 만곡지형인 강변을 끼고 3KM쯤 달리면 오른쪽 강변을 따라 하늘로 치솟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맑고 푸른 강 위에는 가지런히 철교와 함께 3개의 교량이 모습을 나타내어 자연과 인공의 묘한 조화를 나타내는 곳이 진남교반으로 마성면 신현리에 속한다.

 

봄이면 진달래 철쭉이 만발하고 계절따라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해서 문경의 소금강으로 불리우고 있다. 1933년 대구일보사 주최로 경북팔경을 정하는데 이곳 진남교반의 경승이 단연 제1위로 선정되어 진남휴게소 폭포 왼쪽 암벽 위에는 '경북팔경지일' 이라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국도따라 펼쳐지는 울창한 수림 강변따라 이어지는 기암절벽, 조령천이 영강에 합류하여 굽이도는 강변 모래벌과 아름드리 노송이 우거진 진남숲 일대 는 울창한 산림과 더 넓은 모래사장이 풍부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여 하절기의 강변휴양, 야유회, 각종 수련대회 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야간에 텐트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은 휘영청 밝은 달밤에 강물위 달 그림자와 함께 또하나의 명화를 방불케 한다.

[자료:문경시청]

 

☞진남역에서 철로자전거드라이브를 하고, 진남교반을 흐르는 영강에서 잡은 각종 민물고기매운탕을 먹어보자. 진남휴게소근처의 진남매운탕집은 고모산성과 철길교각과 영강을 굽어보는 전망이 특히 좋았다.  민물고기가 거시기 하면 메기탕을 시켜도 민물고기 몇마리는 맛볼 수 있다 ^^

 

<<상주자전거박물관>>

 

자전거 박물관 전경

 

○위치:경북 상주시 남장동 229-1
○홈페이지:www.sangju.go.kr/tour/tour_a05.php

○개요:

우리나라 최초 자전거 박물관이 경상북도 상주시에생겼다.

상주는 평소 자전거가 많기로 소문난 곳이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해 등하교 및 출퇴근을 하거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자전거 역사를 한눈에...

상주 자전거 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전거의모든 것이 담긴 "자전거 천국"

이다. 전시되어 있는 60여대가 자전거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으며,

자전거 전시실인 "만남의 장" 외에도 체험 전시실인 "체험의 장",

자전거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공감의 장", 상주자전거 축제를 소개하는

"축제의 장", 자전거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는 "결실의 장"이 있어

여러가지 경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1818년 독일에서 발명된 드라이지네

최초로 사람이 발을 떼고 탄 k.맥밀런자전거
 
탑승 및 사진촬영 가능한 시클로자전거

 

 

 

 

 

 

 

 

 

 

 

 

 


○관람시간 : 09:00 ∼ 18:00
○휴 관 일 : 연중무휴
○입 장 료 : 무  료
○주요사업 : - 자전거타기 체험 (성인용, 아동용, 2인승 자전거)
             - 자전거박물관 방문 기념 "즉석사진촬영"
             - 초기자전거 타기 체험
             - 자전거타기 체험 (임대자전거 100대 비치)
             - 목공예 체험 (사전 예약시 가능)

○교통안내 : 25번 국도를 타고 상주 시내에서 충북 보은방향으로 4㎞ 정도 가면 남장사   입구 도로변에 "상주자전거박물관" 푯말이 있음


약도

 

*[자료] 한국관광공사

 

☞진남교반에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당초 행선지를 변경하여 중학교때 수학여행이후 가보지 못했던 속리산 법주사를 가기로 하고 GPS 를 찍으니 90여키로가 나온다.OK! 문경을 벗어나 상주로 접어들어 보은으로 향하는데 '자전거박물관' 표지가 나온다. 도로에서 불과 100여미터라 이곳을 찾았다. 의외의 수학^^. 상주가 자전거의 도시인 것을 이번에 알게되었다. 모형과 실물을 통해 자전거의 역사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체험도 할 수 잇어 교육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 실물모형도 상품으로 개발하여 수집가에겐 좋은 기회가 딜 수 있을 정도로 품질도 괜찮아 보였다. 돈이 없어 자전거모형은 사지는 못하고 유명한 상주곳감만 싸서  여행 내내 간식으로 먹었다 ^^


 

<<선병국가옥-99칸집>>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하계리 중요민속자료 제134호인 선병국가옥 사랑채

 

충북 보은 속리산 입구에서 상주방면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외속리면 하개리 마을 입구에서 '99칸 선병국 가옥'이라는 커다란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속리산 주변에서도 경치 좋기로 소문난 서원.만수계곡과 맞닿은 삼거리다.

속리산 정상에서 굽이쳐 내린 삼가천(三街川) 사이의 삼각주 위에 올라 앉은 이 집은 예로부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연꽃이 물에 뜬 형상)으로 알려진 명당에 자리 잡았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광활한 터에 민가가 꾸밀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인 99칸 저택이라는 점도 주목받기에 충분하지만 사대부가 아닌 평민의 집이라는 점에서 더욱 세인들의 관심을 끈다.

1919-1921년 사이 건축돼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이 집은 당시 건축주의 아들인 선병국(지난 90년 작고)씨가 관리하고 있어 '선병국 가옥'으로 지정됐지만 지금은 손자 민혁(55)씨 내외가 고시생 10여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건축된 지 80여년 밖에 안된 이 집이 문화재로 지정된 배경은 개화기 급변하던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묻어있다는 점이다.

당대 최고의 목수들이 모여 집을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전통 한옥에서 엿보이는 아름다운 선과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지만 칸이나 높이 등이 종전의 건축물에 비해 대폭 커지고 확장됐다.
첫눈에도 신분별 건축규제가 풀린 개화기 대지주가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허세를 부려 지은 집이라는 점이 엿보인다.

50여m의 진입로를 따라 대문 앞에 서면 거대한 담이 버티고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안담에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이 둘러싸여 있다.
널찍한 공간과 반듯하고 견고하게 가공된 목재, 화려하게 멋을 낸 창호 등에선 전통가옥의 은은한 멋보다 당당한 위세가 먼저 느껴진다.

3단의 석축기단 위에 H자 모양의 겹집으로 지어진 사랑채는 가운데 커다란 대청이 있고 양 옆으로 방이 붙었으며 앞뒤로 툇마루가 딸려 넓고 시원함을 강조했다.
동쪽에 자리잡은 같은 크기의 사랑채는 2단의 석축기단으로 격을 낮추었으며 가운데 네 칸짜리 대청을 끼고 왼쪽으로 안방, 오른쪽으로 건넌방이 배치돼실용성을 강조했다.
안채에서 북쪽으로 난 솟을대문을 지나 들어갈 수 있는 3칸짜리 사당은 또다시 안담이 쳐져 조용하고 한적한 독립공간을 확보하려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자리잡은 총길이 100m쯤 돼보이는 길죽한 곳간채도이 집의 특징이다. 원래 이 집은 전남 고흥에서 큰 돈을 모은 선씨가 전국을 떠돌며 집터를 구하다가 이 곳의 지형지세에 반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중상류 집들이 그러하듯 이 집 역시 안채와 사랑채는 처마선이 버선코처럼 올라간 팔작지붕이다. 또 날아갈 듯 펼쳐진 지붕선은 뒤편으로 넘겨다 뵈는 속리산 능선과 묘한 조화를 이뤄 한국적 아름다움을 물씬 풍긴다.

그러나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이 집도 4년 전 집중호우로 절반 가량 물에 잠기는 피해가 났다. 범람한 삼가천 물로 사랑채가 반파되고 담이 떠내려갔다.
다행히 문화재청이 10억9천여만원을 들여 무너진 담을 복원하고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도 보수해2년여만에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 집은 10여년 전부터 고시촌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고가(古家)의 분위기가 고시생들의 면학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데다 중부권 최고의 명산인 속리산 자락에서 보기 드문 '명당'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명당 덕인지 이 곳을 거친 사람 중 고시나 공무원시험 합격생도 해마다 3-4명씩 배출된다.

3대째 이 집에 살며 고시생을 뒷바라지 하는 선씨는 '워낙 튼튼하고 널직하게 지어진 집이라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새 집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며 '다만 문화재로 지정된 뒤 화장실 등을 개량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말했다.

[자료:밀리터리리뷰]

 

☞ 상주를 지나 보은으로 접어들어 법주사로 향하는 길에 '선병국99칸집'이란 표지를 보고 들어간 곳. 사진의 사랑채는 '도솔천'이란 이름으로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차를 제공하는 찻실로 사용되고 있었고, 고시생들이 열씸히 책과 씨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동하회마을에 갔을 때는 유씨집안의 99칸집 뿐 아니라 볼 만한 집들은 모두 대문을걸어놓아 짜증만 났었는 데, 그나마 이 곳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전통한옥에 대해서는무지한 나지만, 수십채의 집들과 담들은 나를 압도시키기에 충분 하였다.

 

 

<<법주사>>


 

 

○위치: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홈페이지:www.pubjusa.or.kr

○개요


법주사 전경,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속리산
법주사청동미륵불상, 높이 3300cm,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속리산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갖춘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중창한 후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염화실·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

 

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주요문화재>
팔상전(국보 55호)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은 1984년에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전체높이가 상륜까지22.7m 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중 제일 높은 것이다.

석연지(국보 64호)는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굄과 한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팔상전><석연지>


괘불(보물 1259호)은 법주사 대웅보전 내에 소장되어 있는  대형불화로 1966년에 화성하였는데, 이 불화는 천장보살 즉 노사나 불화로  적, 록, 황, 청색의 색채가 곱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사천왕 석등(보물 15호)은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혜공왕(765-780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던 때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쌍사자 석등(국보 5호)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중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는 성덕왕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사천왕석등>                <쌍사자 석등>                          <괘불>

 

<법주사마애여래의상>

법주사마애여래의상(고려), 보물 제216호, 높이 500cm,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

법주사 경내 암벽에 부조된 고려시대 마애불상.

보물 제216호. 높이 500cm. 광배는 생략되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설법인(說法印)을 결하고 있고 연화좌 위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내려딛고 있는 의상(倚像)이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육계 밑에 계주가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근형으로 살이 쪘으며, 턱 밑의 주름과 짧은 목에 표현된 삼도(三道)가 목걸이처럼 늘어져 있다.

 

눈꼬리가 길게 위로 치켜올라가 있고, 납작하게 눌린 듯한 코는 살찐 뺨에 파묻혀 있는 듯하다. 상체는 두 어깨가 각이 진 편으로 허리가 지나치게 좁게 표현되었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옷을 입고 있다. 두 무릎 역시 어깨처럼 각이 지게 표현되어 있다. 신체비례로 보면 하체가 허리와 상체에 비해 매우 빈약하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는 것같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얼굴을 제외한 신체 각 부분의 묘사가 평면적이며 옷주름은 거의 선각으로 형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불신의 윤곽선, 손가락의 묘사, 연화대좌의 꽃잎 형태는 매우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회화적인 곡선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려불화 가운데 1350년에 제작된 〈미륵하생경변상도〉(일본 신노인[親王院] 소장)의 본존불과 세부표현에서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역사적으로 법주사는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었으므로 이 불상조성의신앙적 배경으로 미륵신앙이 주목된다. 이 불상의 수인인 설법인은 현존하는 한국 불상 가운데 드문 도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 출토 금동삼존판불에서 볼 수 있으며, 의상의 자세는 경주 남산 삼화령 출토 석조삼존불상 중 본존불의 예가 있다.

 

○ 입장료 : 어른 3,800원  ○ 주차비 : 2,000원


<보은법주사 정이품송>

명승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정이품송은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 103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속리산으로 들어 가는 길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이 정이품송은 동쪽으로는 도로가 있고 서쪽엔 천황봉에서 발원한 한강 상류의 한 지류인 속리천이 흐르고 있다.

밑부분에는 외과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나 아직도 수세는 싱싱하고 나무 모습은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듯 단아하다. 이 나무의 고유한 이름은 정이품송이니 나무가 벼슬품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나무에 벼슬이 내려진 사연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 신병에 고통받던 세조가 온양온천과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이 나무 아래 이르러 타고가던 연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연 걸린다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서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으며 서울로 돌아갈 때는 마침 쏟아지는 쏘나기를 이 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너무나 신기하고 기특하여 나무에 대하여 벼슬을 내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이다.

 

☞ 얼마만에 찾아온 법주사인가? 중학교시절 수학여행때 다녀갔으니 35년만인가? 속리산과 구병산을 낀 명산대찰이 있는 이곳 보은이 이제는 갈수록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 수학여행도 에버랜드와 같은 놀거리가 있는 곳을 가기에 사찰을 보는 여행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이유도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 옛날 본 법주사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은진미륵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청동불상이 우뚝 솟아있다. 옛날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던 팔상전안을 들어가 보니 동서남북 사방으로각기 다른 모습의 불상이 놓여져 있다.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문장대를 중학생시절 어떻게 올라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끔찍하다 ^^ . 오르막길만 나오고 간간히 나오는 내리막길을 보면 환호하였던 시절이 떠 오른다. 사부대중들에게 팥죽을 쑤었다던 큼직한 철솥은 아직도 마당 한 구석에 놓여져 있었다.

 

<<문경여행 첫날앨범>> 

  

 200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