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인가? '당신', '그대' 이런 지칭이 아니고 왜 늘 '너'인가?
그것은 나와 너의 글자 모양 때문이다. '너'라는 말은 '나'라는 말과
동일한 수직축을 하나씩 두고 있다. 그 축을 돌리면 너와 나는 하나로
합일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 때문이다. '당신', '그대' 이런 말로 쓰면
자꾸 불안하다. 녹아버리고, 변질되어버릴 것 같다. '그대', '당신'이란 말에는
육체성, 피와 살과 땀이 너무 많이 스며들어 있어 무겁다.
그래서 이인칭일 때는 꼭 '너'라고 부른다.
'나'의 내부는 비어 있으므로 바깥으로 향하여 눈을 두고 세계를 읽어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너'는 모든 것을 안으로 집어넣고 바깥에는 무심하다.
쉽게 읽을 수 없는 '너',
뒷면에 수직으로 벼린 선은 칼등처럼 무뚝뚝하고 단호한 침묵이다.
그에 비해 '나'는 늘 바깥을 향하여 촉수를 내밀고, 깃발을 흔들고
너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합일을 꿈꾸게 하는 수직축의 의지는
'너'는 은폐로, '나'는 개방으로 이 세계에 참여하게 한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너'는 신비이고, 알 수 없음이며,
'나'를 지탱시켜주는 언어의 또 다른 지평이다.
- 이순현의 자전적 시론 중 <너>, [시와반시] 여름호에서 -
Aha Aha
문득 치미는 질투심으로 가슴속이 뽀골거린다.
나같은 건 그냥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단순한 호칭이며 단음절의 단어에 불과한
'너'니 '나'니 하는 글자를 두고, 저런 생각을 저렇게 엮어내다니.
세상에... <뒷면에 수직으로 벼린 선은 칼등처럼 무뚝뚝하고 단호한 침묵>이라구?
하, <'너'는 은폐로, '나'는 개방으로>?
에휴, 소용없는 질투고 가당찮은 시샘이긴 하지만. 그래도. 뽀골뽀골이다.
젠장, 꼬춧가루 실실 뿌리는 맴으루다 그림과 음악을 잇댄다.
그래봐야 기죽을 글도 아니다만. 늙은이 심통이지 뭐...
200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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