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身 言 書 判

매일 사표쓰는 남자 [펌글]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2. 11:38

 

불가에서는 인간이 살면서 겪는 네가지 고통을 이렇게 말한다. 생로병사와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애별리고,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는 원증회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구부득고, 오온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오온성고가 그것이다.

이중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고통은 원증회고가 아닌가 싶다. 특히 직장인들은 회사가 싫고, 같이 근무하는 상사나 동료들이 싫어도 함부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 두렵다. 요즘 같은 불황에는 감정적으로 사표를 썼다가 오랫동안 실직상태로 있다보면 가정 또한 불안해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대로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막상 나이 마흔 정도 되면 이직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사오정", 즉 45세 정년이라는 우스개 말이 나오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사표를 들고 법당을 찾은 남자가 있었다. 이제 막 40대인 그의 첫인상은 우울하고 답답해 보였다. 나를 만나자마자 그는 육두 문자를 써가며 상사 험담을 늘어놓더니 "내가 죽든지 그 사람을 죽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매일 사표를 쓰지만 절대 회사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 하고 말했다.

한마디로 그의 사표는 진자 사표가 아닌 상사에게 당했던 굴욕의 역사의 기록이었다. 상사는 유난히 그를 괴롭혔다. 사사건건 그의 말을 물고 늘어졌고 서류 한번 제대로 통과된 적이 없었다.

회식자리에서도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고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상사와의 불화로 심한 홧병까지 앓고 있어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스트레스로 수명이 단축될지도 모르는 일.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의 부탁대로 구명시식을 올렸다. 그랬더니 부친 영가가 나타나 상사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비책을 알려줬다.

부친은 공무원으로 평생 강직하게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에 부친은 느닷없이 검은 뿔테 안경을 구입해 쓰고 다녔다. 처음엔 노안이 찾아왔다 싶었는데 부친 안경을 몰래 써보니 안경엔 도수가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그냥 덮어 두었는데 영가가 되어 나타난 부친은 "우리집 남자들이 유난히 눈매가 강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바보스럽게 보이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게 됐다. 그 후 나는 도수없는 안경 하나로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제야 아들은 무릎을 탁 쳤다. 자존심이 강한 부친은 이를 평생 비밀로 간직했던 것. 아들은 부친 영가의 말에 따라 검은 뿔테 안경을 구입했다. 처음엔 부인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시력도 좋은 남편이 자칫 바보처럼 보이는 안경을 왜 쓰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안경을 쓴 후 남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출근하던 날, 상사는 어김없이 "바보같은 안경을 쓰고 왔다"며 놀렸다. 그는 부친 말씀에 힘을 얻고 상사를 불러 사정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상사는 "그동안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듯한 눈빛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고 솔직하게 말하더니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불공도 부처님께 드릴 때가 있고 사람에게 드릴 때가 있는 법. 마냥 기도만 한다고 인간관계가 풀어지지 않는다. 예로부터 고부관계를 좋게하기 위해 며느리들은 으레 절을 찾아 백일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절에 가 불공을 올리는 정성과 돈으로 시어머니께 떡 하나 더 사드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상사 때문에 출근하기 싫어하는 직장인 여러분. 회사가 싫으면 무조건 떠날 생각부터 하지 말고 찬찬히 거울을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작은 것 하나부터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그 미운 상사도 언젠가는 마음의 문을 열어 줄지 모른다.

 

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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