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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 <조선혁명선언>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30. 00:24

 




 

 
단재 신채호선생을 만남


역사는 언제나 힘있는자에 의하여 왜곡되어지고 훼손되어져 왔다.

그런 가운데 선생의 이 자료는 그가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산 증거물이다.온몸을 던져 우리를 사랑한 님은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의 초점이 어느곳에 맞추어져야 옳바른 정체성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김부식이 통일신라의 성골 출신이었기 때문에

신라 중심의 역사를 씀으로써 우리의 고대사를 축소시켰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정신을 보인데 반해,

신채호는 일제 강점기에 살았기 때문에

민족주의적인 정신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어지고 어떻게 쓰여졌으며

오늘날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것이 바로 이 자료로 본다.

'조선 혁명 선언'은 이렇게 작성되었다.

신채호(申采浩)가
1923년 1월 의열단(義烈團)의 독립운동이념과 방략을 이론화하여
 천명한 선언서.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김원봉(金元鳳) 등 한국독립운동자 13명으로 조직된 독림운동단체로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을 그들의 중요한 운동방략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파괴의 다섯가지 대상으로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東洋拓植會社)·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및 기타 왜적의 중요기관으로 정하여 '오파괴(五破壞)'라 하였고,
 암살의 일곱가지 대상으로
 조선총독과 고관, 일본군부수뇌·대만총독·매국노·친일파거두·적탐(敵探, 밀정) 및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등을 열거, '칠가살(七可殺)'이라 하였다.
 1920년부터 큰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의열단은 그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이념의 정립에는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 의열단의 폭력적 독립운동에 대하여 비판과 비난이 일어나게 되자 
그들은 독립운동의 이념 및 방략을 정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열단이 신채호에게 성명문을 요청한 것은 이 때문이다.
 
 1910년 4월 망명길에 오른 신채호는 1919년 임시의정원에 참여하면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에 관여하였으나 
같은해 9월부터는 반(反)임시정부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국민대표회의의 개최가 확정된 뒤 1922년 12월, 
신채호는 의열단의 김원봉으로부터 상해(上海)에 있는 그들의 폭탄제조소를 
시찰학 의열단선언문을 작성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이때 김원봉은 탁월한 이론가이며 의열단원인 무정부주의자 유자명(柳子明)을 
신채호와 합숙하게 하여  이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에 이념적인 뒷받침을 하도록 하였다.
 이 선언문에 무정부주의이념이 민족주의이념과 혼재하여 있는 것과
 선언문 집필 후에 신채호가 무정부주의에 경도된 것은 이 때문이다.

1개월여의 준비 끝에
 1923년 1월에 작성된 이 선언문은 5개부분 6,400여자로 되어 있다.
 첫째, 일본을 조선의 국호와 정권과 생존을 박탈해간 강도로 규정하고
 이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이 정당한 수단임을 천명하였다.
 둘째, 3·1운동 이후 국내에서 대두된자치론(自治論), 내정독립론(內政獨立論), 
참정권론 및 문화운동을 일제와 타협하려는 '적'으로 규정하였다.
 셋째,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론, 독립전쟁준비론 등의 
독립운동방략을 비판하였다.
 넷째, 일제를 몰아내려는 혁명은 민중직접혁명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섯째, '조선혁명'과 관련, 다섯가지 파괴와 다섯가지 건설의 목표를 제시하였는데, 
'5파괴'의 대상은 이족통치(異族統治)·특권계급·경제약탈제도·
사회적 불평균 및 노예적 문화사상이며,
 '5건설'의 목표는 고유적 조선·자유적 조선민중·민중적 조선·민중적 사회 및 
민중적 문화라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폭력을 혁명의 수단으로 정당화하는 등 무정부주의적인 요소가 없지 않으나, 
항일독립운동기에 의열단원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자들과 한국의 전민족구성원에게 
넣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귀중한 문서이다.

조선 혁명 선언 전문

단재 신채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 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철도.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 기능을

칼로 베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세. 지방세. 주초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축일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 가고,

여간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인민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고 토지를 갈아

그 종년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 주는 영세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요,

나중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이 연년 고도의 속률로 증가하여

딸각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아귀부터 유귀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 정치.경찰 정치를 여행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의 행동도 임으로 못하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분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요,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 하는

노예 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 역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誣)하야 소잔명존의 형제라 하며,

삼한 시대 한강 이남은 일본 영지라 한 일본놈들이

적은 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 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한 노예적 문자 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 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 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가쇄.단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명에 물 붓는,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 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경우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편태.구박.압제를 받아

환해(桓海) 삼천 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다.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 군대가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최근 3.1 운동 이후 수원.선천. 등지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서간도.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서 거문을 도륙한다,

촌락을 소화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오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일신을 두 동강 세 동강으로 내어 죽인다,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 송장을 만들려 하는 도다.

(2)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더냐?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 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 리 강토를 집어 먹힌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 인민의 생명.재산.자유 보호, 조선 인민의 행복 증진 등을

신명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이천 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 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 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진.민원식 등 열 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 따위 광론을 부림이니 이에 부화하는 자 ?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해 차등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 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 민족은 일본의 아귀가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 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기개(幾個) 노예 대의사(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餓死)의 화(禍)를 구하겠느냐?

자치(自治)를 얻는다 하자.

그 하종의 자치임을 불문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초패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부속하에 있는 조선 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으로써

민족적 생애를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연히 불보살이 되어

일조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하며

내정 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하여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 운동을 부르는 자- 누구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 약탈의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 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유대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일은 금전의 힘으로 그 선조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일은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상고의 자유 발달한 여택을 보수함이니

어디 문맹 같이 사랑 같이 인혈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수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기개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 운동의 목탁으로 자명하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 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일본의 구축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여좌한 논자들이 있으니,

제1은 외교론이니,

이조 500년 문약 정치가 외교(外交)로써 호국(護國)의 장책을 삼아

더욱 그 말세에 우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을 인하여 을국을 제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뢰의 습성이 일반 정치 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누십만의 생명과 누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러 양국을 물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 하는 이들은

일검일탄(一劒一彈)을 혼용탐폭(昏庸貪暴)한 관리나

국적(國賊)에게 던지지 못하고

공함(公艦)이나 열국 공관에 던지며 장서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세(國勢)의 고약(苦弱)을 애소하여 국가 존망, 민족 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렸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 합병’, 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 년 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 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현의 칼, 산림 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로 보면 타매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고도 망국 이후 해외로 나가는 모모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 먼저 ‘외교’가 그 1장 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 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 미 전쟁, 일.러 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 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 회의.국제 연맹’에 대한 과언의 선전이

도리어 이천 만 민중의 분용 전진의 의기를 타소하는 매개가 될 뿐이었다.



제2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 당시에 열국 공관에 빗발치듯 하던 조회 쪽으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 밀사도 독립 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을 하겠느냐?

산림 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의관대의(衣冠大義)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화승대를 몰아가지고 죄.일 전쟁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시졸 가음까지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 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 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었다.

경술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들어가며,

혹 경향에 출몰하여 십여 성상 내외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 없는 회(會) 뿐이었다.

그러나 실은 그들의 성력의 부족이 아니라 주장의 착오였다.

강도 일본이 정치.경제 양 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 기관이 날로 박탈되어 의식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군다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100분의 1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일장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革命)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의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 세력이 있어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 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 세력으로 갑의 특수 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해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 상전의 숙인(孰仁). 숙포(孰暴).

숙선(孰善). 숙악(孰惡)을 보아 향배를 정할 뿐이요,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기군이조기민(誅其君而弔其民)’이 혁명의 유일 종지가 되고

‘단사호장이영왕사(單사壺醬以迎王師)’가 혁명사의 유일한 미담이 되었거니와,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해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 혁명’이나 ‘직접 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고로 비등 팽창의 열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에 일출하여

무전무병(無錢無兵)한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外寇)도 구축하니,

그러므로 혁명의 제1보는 민중 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神人)이나 성인(聖人)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이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라’ 그런 열규(悅糾)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불합리한

민중 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 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先驅)가 됨이 민중 각오의 제일로니라.

일반 민중이

기(飢).한(寒).곤(困).고(苦).처호(妻呼).아체(兒諦).세납(稅納)의 독봉(督捧),

사채(私債)의 최촉(催促),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되는 강도 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격폐하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민중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인인(人人)이 그 아사(餓死) 이외의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는 의분에 못 이겨 약자는 고통에 못 견뎌 모두 이 길로 모아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 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폭(奸猾殘暴)한 강도 일본이 필경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환성(喚醒)하여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 10만이 일척의 작탄만 못하며

억천 장 신문 잡지가 1회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않으면

이(已)어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 마치 현애(懸崖)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왕의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 세력이 특수 세력과 싸우던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 애국의 대의로

격기(檄起)한 독서 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치열하였지만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운동의 만세 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별현하였지만,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과 폭력’ 양자 중 일만 빠지면

비록 굉력장쾌한 거동이라도 전뢰 같이 수속하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 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야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한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 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파괴.폭동-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할진대,
˙조선 총독 및 각 관공리
˙일본 천황 및 각 관공리
˙정찰노, 매국적
˙적의 일체 시설물

차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대부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제1은 이족 통치를 파괴하고자 함이다.



제2는 특권 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 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 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 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 민중은 자유적 조선 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 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 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제3은 경제 약탈 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 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 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 제도를 파괴함이니라.

제4는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이상에 강자가 있고 천자(賤者) 이상에 귀자(貴者)가 있어

모든 불평균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삭(剝削), 서로 질투 구시(仇視)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잔해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잔해하여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공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


제5는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유래하던 문화 사상의 종교.윤리.문학.미술.풍속.습관 등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제구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케 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 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여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다.
그러므로 민중 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함이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 제도의, 사회적 불평균의,
 노예적 문화 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기(旗)가 될지니 
파괴의 기백은 없고 건설할 치상만 있다 하면 
500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 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 세력을 파괴할 것 뿐일 줄을 알진대,
조선 민중이 한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 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이천 민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Goombay Dance Band-Eldorado

 

[출처:음악정원]
200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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