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의 역사****
아시아의 오카리나의 역사.아시아에서의 오카리나의 시작은
출토되는 유물의 연대로 미뤄볼 때, 역시 신석기 시대의 시작
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 것 같다. (하지만 이들 악기는 고작
1~3개의 음계만을 연주할 수 있었다.) 기록에 남겨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의 샹(1100-1027 B.C)이라는 사람이
만든 훈이라는 계란 형태의 오카리나이다. 아마 기록에 갑작
스럽게 등장하는 점으로 미루어 샹이라는 사람은 이제까지
전해오던 어떤 형태의 피리를 연주에 쓸 수 있도록 개조한 것
같다. 그 외의 기록으로는 중국 명나라의 기록에 "양조라는
도공이 흙으로 피리를 만들어 부는데, 그 소리가 일품이더라."
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에도 역시 흙피리의 기록이 있다. 최초의 기록은 통일신라
때의 것으로써, 그 내용은 "경사스러운 날에 흙피리 소리가
흥을 더 돋다"라고 간단히 남아있다. 비록 간단하긴 하지만
최소한 아무리 늦어도 통일신라 시대부터 흙피리가 실생활에
서 사용된 것은 알게 해준다. 정식으로 기록에 남은 것은, 고려
예종 때 중국에서 들여온 '훈'이라는 악기이다. 중국으로부터
대성아악을 들여올 때 같이 들여온 것으로 팬플룻과 비슷한
원리로 소리를 낸다. 그 후 조선 세종 때에 국악에 맞게 고쳐
완전한 우리의 악기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에
와서 오카리나가 한국에 크게 알려지게 된 것은 86년 KBS에서 NHK-TV의 대황하(大黃河)가 방영되고 난 다음 부터이다.
대황하의 음악을 담당한 오카리나 제작가이며 연주가인 '노무
라 소지로'에 의해 그 맑고 깨끗한 음색이 알려지면서 점차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의 '타타하파'란 악기는 나무로 취구를 만들고 흙
으로 몸통을 만든 악기이다. 이 악기는 소리를 내는 방식은
리드를 사용한 방식이지만 음계를 조절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오카리나와 그 원리가 같다. 타타하파는 한 부족만의 전통 악기
인만큼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역시 오카리나의 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도자기 공업의 발달
미숙으로 흙피리에 관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일본이 근대화를 거치면서(메이지 유신) 갖가지 서양
문물과 같이 오카리나가 소개되고, 그 후로 많은 발전을 이루
어 왔다. 현대식의 오카리나에 있어 아시아에선 일본이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는 많은 연
주자와 제작가들이 있으며 제작가들이 많은 만큼 생산되는
오카리나의 종류도 다양하며 그 활동 또한 활발하다. AKETA, NIGHT 같은 상표의 오카리나는 국내의 매니아들 에게도 익숙
한 이름이다.
***유럽의 오카리나의 역사***
오카리나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의 시작과 그 시기가 거의 일치
한다. 이미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몇가지 음을 낼 수 있
는 단순한 피리를 만들었고 이런 피리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
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1853년에 이탈리아의 북부의 부드리오(Budrio)지방
에서 기우스페 도나티(Giuseppe Donati)가 지금의 것과 형태가 비슷한 오카리나(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를 뜻함)를 만들어냈다. 즉, 지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는 형태의 오카리
나는 이 때, 이탈리아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도나티의 발명은 새 모양의 간단한 호각을 악기로 쓸수있게 구멍의 수를 1개에서 모두 10개로 늘린 것이었다. 현재 부드리오에서 제작되는 오카
리나는 그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부드리오에
서는 현재 5대 째, 오카리나를 만들어오고 있으며 현재 Fabio Menaglio가 부드리오 오카리나 제작소를 대표한다.
'트록스(Troggs)'의 '빙 크로스비(Bing Crosby)', '레그 프레슬
리(RegPresley)'와 '듀란 듀란(Duran Duran)'의 '시몽 르 봉(Simon Le bon)'은 오카리나로 음반을 낸 몇 안되는 연주자이다. '리게티(Ligeti)'나 '펜데르스키(Penderecki)'같은 현대의
작곡가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오카리나를 사용했다.
영국에서는, '존 테일러(John Taylor)'가 1971년에 처음으로
영국식 4구멍 오카리나를 만들었다. '존 랭글리(John Langley)'는 조율된 4구멍 오카리나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로 크기가 다른 7개의 일관적으로 조율된 둥근 형태의 오카리
나를 완성했다. 그는 1985년에 엄지 손가락구멍을 추가함으로써
4구멍 오카리나의 음역을 넓혔고 1991년에는 두 개의 통을 가진 더 넓은 음역을 갖춘 'Duet'오카리나를 완성했다. '데이비드 리
긴스(Dabid Liggins)'는 영국식 오카리나에 대한 자습서를 출판
했고 오카리나 음악을 발표했다. 그 때 부터 오카리나는 사람들
에게 새로운 '대중적인 악기'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1991년에 '디에고 모데나(Diego Modena)' 연주, '파울 센느빌(Paul Cenneville)'의 '오카리나의 노래(Song of Ocarina)'가 발표
되었을때, 그 음반은 프랑스에서만 150만장이 팔렸고, 전세계적
으로는 200만장이 팔렸다. 그 후로 오카리나는 꾸준히 인기를
얻어, 지금 유럽은 전세계에서 오카리나가가장 널리 퍼진 곳이
되었다. 대학에 학과가 설치될 정도로 오카리나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이다.
**** 그 외 지역에서의 오카리나의 역사****
현재까지 출토된 오카리나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남미의 마
야 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거북형태를 띠고 손에
잡기 불편하나, 분명한 것은 소리를 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새모양의 피리는 3음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마야 문명 뿐만 아니라 잉카 ,
아즈텍 문명의 영향을 받은 오카리나도 상당수 발견되어 과거
이곳에는 오카리나의 제작이 과거 유럽보다 더욱 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사용한 오카리나는 음악을 즐기려는 목적보다는 제사
의식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각 동물 모양의 오카리나는 의식에서 그 동물을 대신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로
새 모양을 한 오카리나가 대부분인데 이는 오카리나의 소리가
새와 비슷하고 또한 새가 잡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으로 추측
한다.
아프리카에서도 오카리나의 흔적 - 물론 지금 사용되는 보통의 오카리나와는 다르다 - 은 발견되고 있다. 콩고에서는 흙으로
통을 만들어 거기에 동물의 가죽을 씌운다. 이것은 드럼의 구조이지만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구조 또한 갖추고
있어서 단음이지만 연주가 가능하다. 바람을 불어서 소리를 내
고 소리가 날 때 북을 치면공간 속에서 두 소리가 어울려서 독
특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런 피리와 북의 혼합 형태인 악기
는 콩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부 전역에 걸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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