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Working together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19. 01:30

금융시장 개방 이후 ‘국내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반면 자국 기업들은 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현상’ 을 의미하는 ‘윔블던 효과’가 우리 경제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언뜻 테니스와 관련이 있을 것 같지만 이 말은 의외로 경제에 관한 대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윔블던 효과는 쉽게 말해 ‘국내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반면 자국 기업들은 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영국의 테니스 부진에 빗댄 표현 
 
윔블던 효과의 어원은 물론 테니스에서 왔다. 널리 알려진 대로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주최국은 영국이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는 거의(최근에는 완전히) 매년 외국인이 차지한다. 인터넷에서 윔블던 테니스 우승자를 검색해 보자. 남자부의 경우 초기 우승을 독식하던 영국 선수들이 1950년대 이후론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다. 여자부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낫지만 1970년대 이후 영국 선수가 우승컵을 차지한 적이 없다. 
 
이 말이 경제와 연관을 맺게 된 것은 1986년 영국 정부가 대대적인 금융시장 규제 완화를 시행하면서부터다. 당시 영국 정부는 런던 금융시장이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은행 구조조정과 함께 대규모 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자생력이 부족한 영국 은행들은 외국 금융기관에 합병되는 처지에 놓였다. SG워벅, 베어링 등 대형 은행들이 외국계 금융회사에 인수되었고, 동시에 외국의 대형 금융사들이 영국에 본격 진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윔블던 테니스에서처럼 다국적 금융사에 거래 장소만 제공한다는 자조 섞인 뜻으로 ‘윔블던 효과’란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쓰이기 시작 
 
그런데, 이 표현이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금융 부문의 규제 철폐를 통해 외국 자본이 국내 금융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차지한 비중은 시가총액의 40%를 넘어섰다. 
 
은행권의 경우 한미은행을 합병한 미국계 투자은행 씨티은행이 한국씨티은행을 출범시킨 데 이어 영국계 투자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SBC)이 최근 제일은행 인수를 확정지었다. 외환은행의 경영권은 독일계 투자은행인 코메르츠방크에서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로 넘어가 있다. 외국계 자본의 행보는 당연히 국내 은행가를 초긴장 상태에 몰아넣었다. 일부에서는 토종과 외국계간의 ‘은행 전쟁(Bank War)’이란 용어까지 공공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외국계 금융사들은 앞으로 40조원 규모인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 윔블던 효과는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서 쓰이고 있는 윔블던 효과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그러나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참여는 장단점이 모두 있는 ‘양날의 칼’에 가깝다. 국내 주요기업의 대주주가 된 외국계 자본이 거액의 배당이나 자본이득을 본국으로 과도하게 송금하거나 주가를 띄우기 위해 사업 확장보다는 인원 감축 등 손쉬운 구조조정에만 매달리는 것은 국내 경제를 주름지게 한다. 
 
하지만 국내 금융회사의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투명경영을 촉진하고 국내 금융시장에 선진 금융기법을 이식하는 것은 윔블던 효과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빅뱅에 따른 외국계 자본의 적극적인 진입에 힘입어 씨티(the City, 런던 금융가)가 세계 채권시장의 허브로 부활하는 등 영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다. 
 
요컨대 금융시장 개방의 두 측면 가운데 기회 요인은 최대한 활용하고 위협요인은 최대한 억제하는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아울러 국내 자본이 외국계 자본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없애고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정비하는 것이 금융시장 개방의 이점을 최대한 거둬들일 수 있는 선결 조건이다. 

2005.03.18 | 주간경제 824호.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