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임금 영조가 ‘주금령(酒禁令)’을 내렸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쳤기 때문이다. 술을 몰래 만든 사람은 멀리 귀양을 보내라고 명령했다. 술을 사서 마신 사람은 노비로 삼으라고 했다. 중인이나 서인이 명령을 어기면 체포해서 수군(水軍)에 편입하도록 했다.
어느 날 한 백성이 몰래 술을 빚었다가 붙들려왔다. 그렇지만 이 백성은 술이 아니라 식초를 담근 것이라고 우겼다. 영조는 백성이 담근 것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신하들에게 돌려가며 맛을 보였다. 술맛인가, 식초 맛인가 물었다. 모두들 술맛이라고 대답했다.
영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시 우의정에게 맛을 보라고 했다. 술인가, 식초인가 물었다. 우의정은 눈치가 빨랐다. 노련한 관리였다. 임금의 뜻을 알아차렸다. 식초라고 대답했다. 영조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식초가 분명하니 백성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그 대신 백성을 잡아온 관리를 하옥시켰다. 영조는 이처럼 ‘어진 임금’이었다.
영조의 ‘금주령’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평안도 남병사가 술을 빚어 마셨다가 적발되었다. 영조는 노발대발했다. 즉시 서울로 잡아들였다. 친히 숭례문에 행차해서 목을 베도록 했다. 장대에 걸어 효시했다. 신하들이 목숨만은 살려주자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보기로 처형한 것이다.
국민 건강을 항상 생각해주는 정부와 여당이 또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 술 취한 사람을 강제로 잡아 가둘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한다더니 한술 더 떠서 술에 건강부담금까지 매긴다고 하고 있다. 담뱃값을 대폭 올려 담배를 줄이도록 해주고, 성매매특별법이란 것으로 질병까지 예방해주더니 이번에는 술이다. 과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까지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공공장소는 물론 ‘가정’에서도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면 강제로 보호할 수 있도록 가칭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도입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저항하면 각종 ‘제어장구’로 제압할 수도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난데없이 건강부담금이다. 부담금을 물면서라도 술을 마시되 절대로 취하지는 말라는 것인지. 정말로 자상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어진 임금’ 영조는 약한 백성을 풀어주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마도 예외 없이 단속할 듯싶은 것이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비싼 술을, 그나마 마음대로 마시지도 못하게 될 판이다. 현대판 ‘금주령’이라고나 할까. 제 돈 내고 술 마셨는데도 경찰이 취했는지, 아닌지 여부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도 있게 된다고 하니 주당들은 겁을 먹을 것이 분명하다. 공공장소가 아닌 ‘가정’에서도 술을 마시기 껄끄러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조선시대의 ‘금주령’은 고위관리의 목을 칠 정도로 엄격했지만 예외가 있었다. 금주령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술을 마셔도 되는 관리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사간원의 ‘언관(言官)’들이었다. 언관들만은 살벌한 금주령 하에서도 음주가 허용되는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의 기개를 꺾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언론이 살아 있어야 임금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해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론에 대한 특별대우 덕분에 언관들은 목숨을 걸어가며 임금에게 직언을 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다. 언관들은 ‘인사고과’에서도 예외였다. 조선시대에는 1년에 2번씩 관리들에 대한 인사고과를 실시했다. 이 인사고과를 임금에게 보고, 승진 또는 좌천시켰던 것이다. 고과가 나쁠 경우 파직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관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언론을 이렇게 중요시했었다.
지금 정부는 국민을 끔찍하게 생각해주면서도 이런 점을 소홀히 하고 있다. 특정 언론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가끔 외국신문에까지 삿대질을 하고 있다. 외국신문이 비판적인 글을 보도하면 국내 언론이 잘못 보도한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신문이 할 일이 없어서 남의 나라 신문이나 베끼고 있겠는가.
정부는 특정 언론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특정 언론에게 ‘비난’을 퍼붓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