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여행의 흔적/여행사진앨범

[2009년 6월] 경주 북부권 옥산서원일원

인생멘토장인규 2009. 8. 8. 11:17

 

 ▶ 여행지 : 경주 북북권 옥산서원일원

▶ 여행일 : 2009.6.13

 (옥산서원-독락당-정혜사지십삼층석탑)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옥산서원(사적 제154호)

이 서원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을 제향하고 후진(後進)을 교육하기 위해 조선 선조(宣祖) 5년(1572)에 설립되었으며, 그 이듬해에 임금이 서원이름을 내렸다. 경내에는 사당인 체인묘, 강당인 구인당(求仁堂), 기숙사인 동재(東齋, 민구재, 敏求齋)와 서재(西齋, 암수재, 闇修齋), 무변루(無邊樓), 역락문(亦樂門), 어서각(御書閣) 장서각인 청분각(淸芬閣)과 회재 선생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건물 곳곳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석봉(石峯) 한호(韓濩),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의 명필이 쓴 현판들이 있다. 이 서원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각 건물들의 건축적 의미는 크지 않지만 공간적 배치방법이 돋보인다. 옥산서원에서 북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 회재의 별장이자 서재(書齋)였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독락당 (보물 제413호)

이 건물은 옥산서원(玉山書院) 뒤편에 있으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中宗) 11년(1516)에 세웠으며, 일명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한다. 낮은 단 위에 세워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이 건물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八作)지붕입니다. 대청은 3칸×2칸이고 나머지는 칸을 막아 1칸×2칸 온돌방으로 하였다. 건물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이 건물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서 대청에서 살창을 통해 앞 계곡의 냇물을 바라보게 하였다. 이는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空間構成)이며, 뒤쪽의 계정(溪亭) 또한 자연에 융화시키고자 한 의도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정혜사지십삼층석탑(국보 제40호)

이 석탑은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9m 높이로 13층의 몸돌을 올린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중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이다. 1층 탑 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탑의 1층 몸체에는 높이 131cm, 폭 166cm인 모서리 기둥이 있고,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이 있다. 2층부터는 너비와 높이가 갑작스럽게 줄어들었으며 몸체돌과 지붕돌이 같은 돌로 만들어져 있어 그 양식이 특이하다. 지붕은 경사가 느린데 모서리는 볼록하고 처마 층급 받침은 3단이다. 석탑 주변에는 주춧돌과 기왓장들이 흩어져 있고 정혜사지라 전한다.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경주시청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