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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서 유래된 말들

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8. 12:45

 

 
 
 
옛 사람들은 술을 직접 언급하기를 꺼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술을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부르는데, 이 중에서 가장 술을 마음놓고 표현하지 못한 사람은 절에 있는 스님인지라, 이들은 술을 반야탕(般若湯)이라고 불렀다. 즉 만유의 실상을 증험한다는 뜻을 가진 반야(般若)라는 말에 슬그머니 떠먹는 국물을 뜻하는 탕(湯)을 붙여 만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음주를 금하기 때문에 중들이 몰래 마시면서 쓰는 말이다. 또 곡차라는 말도 한자로 穀茶, 曲茶, 茶 등으로 표기해 가면서 중들이 즐겨 쓰는 술에 대한 은어라고 볼 수 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점잖게 미록(美祿)이라고 불렀다. 즉 후한 봉록, 많은 봉급이라는 뜻으로 한서(漢書)의『식화지(食貨志)』에서 나오는 '술은 천하의 미록'이란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리고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에서 망우물(忘憂物) 혹은 차망우물(此忘憂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듯 술은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은근하게 하는 것이 그 맛과 멋을 더해주는지 모른다.
 
 
가난한 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술을 구하기 힘들어 물을 놓고 제사를 지냈고, 사정이 넉넉하더라도 정화수라하여 물을 떠놓고 소원을 비는 일이 많았는데, 밤에 물빛이 검게 보이므로 이를 현주(玄酒) 즉 '검은 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흔한 물이지만 특별한 용도로 쓰이는 영험한 물이라 생각하여 기어이 술로 표현한것이다.
 
술을 점잖은 말로 약주(藥酒)라고 하는데, 이 말은 조선시대부터 청주나 술의 높임말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본래 약주는 약효가 있는 약용주를 말한다. 그러나 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술을 약주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나라에 흉년이 들어 금주령을 내릴 때 높은 사람들이 몰래 청주를 마시면서 약용주를 마시는 척 했기 때문에, 점잖은 이가 마시는 술을 약주라 하고 더 나아가 청주를 약주라고한 것이다.
 
또 조선시대 서울의 약현(藥峴:지금의 중림동)에 서성(徐 , 1558-1631)의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가난하여 술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집의 청주가 매우 좋았고, 서성의 호가 약봉(藥峰)이며 또 약현(藥峴)에 살았기 때문에 청주를 약주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쩐지 먼저 소개한 약주의 유래가 더 인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금님이 술을 못 마시게 했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감춰둔 술을 마시면서 수염을 가다듬고 쓴 표정을 지으며 약을 먹는 척 했으니 꼭 몰래카메라를 보는 듯하다.
 
1. 고희
 
사람의 나이가 칠십이 되면 칠순이라고 큰 잔치를 벌린다. 이 칠십의 나이를 우리는 고희(古稀)라고 하는데, 이 말이 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두보(杜甫)의 시 『곡강이수기이(曲江二首其二)』 에서 '주체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즉 '술 외상값은 어차피 가는 곳마다 있는 것이지만, 인생 칠십은 옛부터 드문 일이다'라는 뜻이다. 현대에는 '고희'란 말만 보기 드문 나이에 달한 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지만, 술과 외상은 이렇듯 그 옛날부터 뿌리가 깊은 것으로 그 전통은 오늘날 룸살롱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외상 술을 안주는 술집은 인간지사를 무시하는 곳으로 술꾼들은 구태여 그쪽에 발을 들여놓을 필요가 없다.
 
2. 조강지처
 
흔히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조강(糟糠)'이란 술지게미와 쌀겨를 일컫는 말이다. 못살던 시절 부잣집에 가서 일하면서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와 벼를 도정하고 남은 쌀겨를 얻어다가 공부하는 남편을 먹여 살리던 그야말로 '어여쁠 것도 없이 사철 발 벗은 아내'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과거에 합격하더니 고생한 아내를 버리고 젊고 예쁜 각시를 새로 얻으니, 필시 본인보다는 동네사람이 더 분통이 터져 갖다 붙인 이야기일 것이다. 
 
3. 주전자(酒煎子)
 
 글자 그대로 술을 데우는 그릇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술을 데워서 많이 마셨고, 막걸리도 주로 주전자에서 따라 마셨고 주전자 단위로 한 되, 두 되 팔았기 때문에 술과 주전자는 바로 한 몸인데 요즈음 그 뜻이 바뀌어 주전자는 단순히 물을 담아서 끓이는 그릇이 되었다.
사물을 헤아리고 사정을 참작하여 잘 처리한다는 뜻의 짐작(斟酌)이란 말도 '술을 따라서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상대의 잔이 비었는지 어느 정도 마셨는지 잘 헤아린다는 뜻이다. 원래는 침작(斟酌)이라고 했지만 후에 짐작(斟酌)으로 바뀐 것이다.

4. 수작(酬酌)
 
주객이 서로 술을 권한다는 뜻에서,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으로 변하고, 다시 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게 된다. 옛날에는 주주객반(主酒客飯)이라고 해서 주인은 손에게 술을 권하고 손은 주인에게 밥을 권하는 예절로 손님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어서, 잔을 주고 받는 일을 하나의 예로서 행했던 것이다.

술을 권하는 맛으로 마신다는 우리의 정다운 주도는 행배(行杯) 혹은 행주(行酒)라는 것으로 잔에 술을 부어 돌린다는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행주는 한나라 유장(劉章)이 오태후(吳太后)에게 술을 올리는데서 비롯되었으며, 당나라 때는 초기부터 무신들이나 궁중의 연회에는 으례 이 행주가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권주잔은 반드시 비우고 되돌려 주는 반배(返杯)라는 화답도 따라야 한다. 요즈음은 B형 간염 어쩌고저쩌고 해서 이 풍습이 한 때 사라지나 싶었는데, 다시 술잔을 주고받는 일이 흔해지기는 했다. 참고로 알아 둘 것은 B형 간염은 술잔으로 절대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술집이름도 서양에서 온 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옛날부터 있었던 것도 많다. 포장마차는 미국 개척시대의 포장이 씌워진 마차를 이르는 말이 분명하지만, 길거리에 목로(술잔을 벌여 놓는 상)를 놓고 큰 막걸리 사발로 술을 먹던 우리의 목로주점의 전통을 이어오는 것이며, 스텐드 바도 분명히 외국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도 서서 술을 마신다해서 선술집이라 했던 곳이 있었다.

어느 때든 편하게 부담 없이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정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 보통의 술집은 술과 음식을 팔면서 사교장 역할을 했던 옛날 주막(酒幕)이라는 곳이 발전한 곳이다. 요즈음 크게 발전한 룸살롱이란 곳은 명칭만 영어일 뿐 우리 나라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술집 형태이다.

옛날부터 색주가(色酒家)라고 젊은 여자가 술상에 나와 앉아서 아양도 부리고 노래도 하며 술을 파는 집이 있었다. 본래 서울에는 여자가 나와 접대하는 술집이 없었으나, 세종 때 중국에 가는 사신들의 수행원을 위로하기 위하여 홍제원(弘濟院)에 집단으로 색주가가 생겼다고 한다. 또 내외주점(內外酒店)이라고 남녀 내외를 가리던 구한말에 과부가 하는 술집이 있었는 데, 문간방에 손님이 들면 과부는 중문을 열고 술상을 디밀어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팔뚝만 보게 했다하여 팔뚝집이라고도 했다는 곳인데, 나중에 색주가로 전락하여 그 풍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 위에 해방 후 미군을 상대로 여자를 두는 술집이 발전하여 오늘날 룸살롱이란 이름으로 기업 형태를 갖춘 술집이 된 것이다.

술은 음으로 양으로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크며, 그 전통의 형태는 다소 바뀔지언정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아직까지 이어오는 술과 관련된 단어를 살펴보면 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술 문화는 아직도 부탁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상대를 술통에 빠뜨려야 성공했다는 분위기이다.

이런 자리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해줘도 될 일을 안 해주면서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을 설득하느라 부어라 마셔라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안주 삼아서 술 그 자체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외국의 살롱이나 카페와 같이 술집이 대화나 토론의 장소로 이용이 되었더라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지 않았을까?

어느 사회든 술은 문화의 한 형태를 반영한다. 즉 음주문화가 그 사회의 문화수준을 가름한다고 볼 수 있다

2007-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