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Edgar Degas (佛,1834-1917)◈ Semiramis Building Babylon(1861)

설화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BC 10세기경 바빌로니아를 통치한
세미라미스 여왕 시대를 살았던 한 청년과 처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한마을에 사는 처녀 총각이 양가 부모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게 되자
죽음으로써 사랑을 증명하여 양가의 반목을 해소시킨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소재이다.
셰익스피어는 바로 이 소재를 가지고 불후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다.
[조각]William Wetmore Story(美,1819-1895) ◈Semiramis(1873)

세미라미스는 전설적인 바빌론의 여왕.
시리아의 여신 데르케트와 카유스트로스와의
사이에 태어났으나 곧 버려져 비둘기와 양치기에 의하여 키워졌다.
성장한 후에는 아름다운 용모로 아시리아왕 니누스의 신하인
온네스와 결혼하여 그녀의 지혜로 남편을 도왔으나,
그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어 그녀의 군략에 반한 니누스왕이
그녀를 온네스로부터 억지로 빼앗아 아내로 삼았다.
아들 니뉴아스를 낳았으나 왕이 얼마 후에 죽었기 때문에
그녀가 왕위를 잇고 오랫동안 바빌론을 지배하였다.
나중에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죽은 뒤 비둘기로 변신했다고 한다.
세미라미스 여왕이 통치하는 바빌로니아 안에서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청년은 피라모스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처녀는 티스베였다.
두 사람의 양친은 이웃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자주 내왕했다. 그리하여 이 친구 관계는
마침내 연애로 발전하였다. 두 남녀는 서로 결혼을 하고 싶어했으나,
그러나 부모들은 사이가 좋지 않아 두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부모들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두 남녀의 심중에
서로 같은 정도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몸짓이나 눈짓으로 서로 속삭였고,
남몰래 속삭이는 사랑인 만큼 그 불꽃은 더 강력하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두 집 사이의 벽에는 틈이 나 있었다.
벽을 만들 때 어떤 과실로 인해 생긴 것이다.
이제까지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이 연인들은 그 틈을 발견했다.
[그림]John William Waterhouse(英,1849-1917)◈Thisbe(1909)

구멍으로 사랑을 나누며...
사랑이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겠는가!
이 틈이 두 사람의 말의 통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달콤한 사람의 속삭임이 이 틈을 통해서 서로 오갔다.
피라모스는 벽 이쪽에, 그리고 티스베가 벽 저쪽에 대고 섰을 때,
두 사람의 입김은 뒤섞였다. 그들은 말했다.
이 구멍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달콤한 사랑의 말들이 이 구멍을 통하여 넘나들었다.
피라모스가 벽 이쪽에 서고, 티스베가 벽 저쪽에 서면
두 사람의 숨결은 하나같이 감미롭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이렇게 탄식했다
"무정한 벽이여!
어째서 우리 둘을 이렇게 갈라놓느냐?
그러나 우리는 너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사랑의 말에 목말라 있는 귀에
달콤한 사랑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다 네 덕분이니까."
두 사람은 벽 양쪽애서 각각 아렇게 속삭였다.
이윽고 밤이 되어 이별을 고해야 할 순간이 오면
티스베는 티스베 집쪽 벽, 피라모스는 피라모스 집쪽 벽에
자신들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 이상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벽화]Guido Reni(伊,1575-1642) ◈ Aurora (1614)
태양마차를 인도하여 밤의 어둠을 몰아 내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Io)
다음날 아침, 새벽의 여신 에오스(오로라)가 밤하늘의 별을 추방하고
태양이 풀 위에 내린 이슬을 녹일 때,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자기들의 무정한 운명을 한탄한 끝에 마침내 한 계책을 꾸몄다.
다음날밤 모든 가족들이 잠들었을 때 감시의 눈을 피해
집을 나와서 들판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을의 경계선 너머에 있는
니노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영묘(영묘)가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나무는 흰 뽕나무였고 시원한 샘 곁에 있었다. 모든 것이 합의된 후,
그들은 태양이 물 밑으로 내려가고 밤이 그 위에서 떠오르기를 고대하였다.
마침내 티스베는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집을 빠져나와 약속한 곳에서 약속한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저녁의 박명 속에 외로이 앉아 있으려니까 거기에 한 마리의 사자가 나타났다.
방금 무엇을 잡아먹었는지 입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물을 마시려고 샘을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을 보자 티스베는 달아나 바위 틈에 몸을 숨겼다.
[그림] Nicolas Poussin(佛,1594-1665)◈Strormy Landscape with Pyramus and Thisbe(1651)

도망가기로 하였으나
그런데 달아날 때 그녀는 쓰고 있던 베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자는 샘에서 물을 마시자 다시 숲 속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이키다 말고 땅 위에 떨어져 있는 베일을 보자,
피묻은 입으로 그것을 휘둘러 마침내 찢어 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피라모스는 떨어져 있는 너울과
땅바닥의 사자 발자국을 보고는 티스베가 자신을 기다리다
사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생각합니다.
"아, 가엾은 나의 티스베, 나 때문에 죽었구나.
나보다 오래 살아야 마땅한 그대가 나를 앞서 죽어갔구나.
그래, 나도 그대를 따르리.
그대를 이렇게 무서운 곳으로 오게 하고도
내 손으로 그대를 지켜 주지 못한 허물이 어찌 작다고 할 수 있으랴?
자, 사자여! 바위 틈에서 나와
이 죄많은 몸도 그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다오."
피라모스는 베일을 손에 들고 약속한장소로 가서
나무를 무수한 키스와 눈물로써 적셨다.
그는 말했다.
"나의 피로 너의 몸을 물들이리라."
그는 칼을 빼어 자기의 가슴을 찔렀다.
피가 상처로부터 샘솟듯 흘러내리자,
그것은 뽕나무의 하얀 열매를 붉게 물들게 했다.
피는 땅 위에 흘러 뿌리에 미치고 그 붉은 빛깔은
줄기를 타고 열매에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그때까지 티스베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연인을 실망시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조심조심 걸어 나왔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젊은이를 찾았다.
위험에서 벗어난 저 무서운 얘기를 빨리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한 장소로 왔으나,
뽕나무의 열매 색깔이 빨갛게 변한 것을 보고는
그곳이 약속한 장소일까 하고 의심했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빈사상태에 있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티스베는 깜짝 놀라 물러섰다. 전율이 그녀의 몸을 스쳤다.
그것은 마치 잔잔한 수면 위에 일진의 바람이 지나갈 때 일어나는 물결과 흡사했다.
그러나 티스베는 그 사람이 자기 연인임을 알자,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자기가슴을 마구 쳤다.
그리고 숨이 다 넘어가는 그를 얼싸안고 상처에
눈물을 쏟으며 싸늘한 입술에 수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부르짖었다.
"오, 나의 피라모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요?
피라모스. 당신의 티스베가 이렇게 부르고 있잖아요.
자 고개를 좀 들어 보아요."
[그림]Hans Baldung Grien (獨,1484-1545) ◈ Pyramus & Thisbe(1530)

죽음으로 하나되어...
피라모스는 티스베라는 이름에 잠깐 눈을 뜨고는
피에 물든 너울과 빈 칼집을 보았다.
티스베는 울부짖었다.
"자기 손으로 당신을 찌르셨군요.
그것도 나 때문에...... 이번만은 나도 당신만큼 용감할 수 있어요.
내 사랑도 당신의 사랑 못지않게 뜨거울 수 있어요.
나도 죽어서 당신 곁으로 가겠어요.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예요.
그러나 죽음도 당신 곁으로 가려는 나를 말릴 수는 없을 거예요.
아, 가엾은 부모님들이시여, 저희들의 애절한 소원을 용납하소서.
사랑과 죽음이 우리를 비로소 묶었으니 바라건대 한곳에 묻어주소서.
그리고 뽕나무여, 우리 죽음의 표적을 잊지 말고 기억해다오.
우리 둘이 흘린 피를 열매로 기억해다오."
말을 마친 티스베는 제 가슴을 칼로 찔렀다.
티스베의 양친도 딸의 소원을 받아들였고,
신들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 여겼다.
두 사람의 유해는 한 무덤에 묻혔다.
그이래 뽕나무는 오늘날까지 새빨간 열매를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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